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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유홍준 교수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전체 감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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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전체 감상문)


저자: 유홍준



  몇해전 TV예능프로그램에서 우리 문화재를 소개하던 유홍준 교수님이 펴낸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입니다. 역사에 관심만 있을 뿐 문외한이나 다름없는 나에게는 그 프로그램에서 너무 알기 쉽게 문화유산을 설명하는 것을 보고, 최소한 문화유적지에 대한 관광을 가서 교수님 정도의 식견은 아니더라도 그 유적에 대한 상식 정도는 알고 있어야겠다는 마음은 항상 가지고 있었습니다. 읽고 나서는 학교 다닐 때 배웠던 주입식 역사 교육보다는 이런 현장학습을 통해 우리역사를 제대로 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미 나이가 들어버린 기성세대라 할지라도 우리의 조상과 역사의 뿌리는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다시 다음세대에게 넘겨주어야 할 소중한 국가적이고 정신적인 자산이기 때문입니다.

 

  유홍준 교수님은 1949년 서울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미학과를 졸업하고, 홍익대 대학원에서 미술사학을 전공하였습니다. 성균관대 대학원 동양철학과 박사과정의 미술평론부문으로 등단하여 미술평론가로 활동하며 민족미술협의회 공동대표를 역임하였습니다. 참여정부시절에는 제3대 문화재청장을 역임했고 이후 여러 대학에서 교수로 재임하였으며 최근에는 명지대학교에서 미술사학과 석과 교수로 재직했습니다. 저서로는 <80년대 미술의 현장과 작가들>외 다수가 있고 번역서로는 <회화의 역사>등 다수가 있습니다. 간단한 프로필만 봐도 상당한 엘리트코스를 밟은 최고의 지식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책 내용 살펴보

 

  책의 구성은 문화유산을 답사하면서 <시화평론>이라는 문화잡지에 연재한 글을 묶어서 쓴 글입니다. 크게 단원이나 챕터는 구성하지 않고 각 문화재를 답사하면서 사진과 글로 남겨서 이 책에서 단원 구분이 없이 책이 만들어 졌습니다. 원고가 미흡하고 설명이 빠진 부분을 보완해서 책을 썼다고 합니다. 이 모든 것이 교수로 재직 중이었기 때문에 강의를 위한 교수님의 열정이 있었기에 이런 책이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전 국토가 박물관이다.” 1987, 뉴욕 메트로폴리탄 뮤지움의 한 관계자가 내게 한국의 박물관실태를 물어왔을 때 내 대답의 요지는 그것이었다. 서구의 미술관들은 경쟁적으로 그 규모의 방대함을 자랑하고 있지만 그것은 제국주의 시대의 산물로 한결같이 이국문화의 포로수용소일 뿐, 낱낱 유물의 생명력은 벌써 잃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프랑스의 한 평론가는 명작들의 공동묘지라는 혹독한 자기비판을 하기에 이르렀다.(머리말)

  역사학자나 문화 유물 관련된 의식이 있는 지식인들의 유물이나 역사에 관한 깊은 생각을 엿볼 수가 있는 말이 아닌가싶습니다. 일반인들이라면 보통 관광 목적으로 서구 사회를 경험해 보게 되는데요. 일반인들은 말 그대로 관광과 함께 박물관 규모와 그 안의 관람품의 스치듯 지나가는 형식적인 감상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 일 것입니다. 하지만 유홍준과 유물에 관한 식견이 있는 지식인들은 그것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것보다 원래 제자리에 있어야 할 자리에 있을 때 그 유물의 역사적 가치를 알 수 있고, 그 고전적인 아름답고 멋스러움을 알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정치적, 시대적, 경제적인 선진국이라는 유럽과 미국의 관료사회도 문화유산에 대한 근본적인 존재이유는 망각한 채 그저 타국에서 탈취해온 유물을 으리으리하고 깨끗한 건물에 전시해 놓은 것입니다. 그것들은 선진국들의 전리품인 양 펼쳐놓고 죽은 채 잠들어 있는 망자와 같은 공동묘지의 유물이라고 표현한 것은 책을 처음 펼침과 동시에 가슴 아프게 다가옵니다. 더불어 학자로서 유홍준 교수님이 대형 박물관에 죽은 듯이 잠들어 있는 유물들을 어떻게 대하고 생각하는지 안타까운 마음이 내 마음속에도 깊숙히 전해져옵니다.

 

  우리나라는 참으로 좁은 땅덩이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같은 지역에서, 같은 혈통끼리, 같은 언어로, 같은 제도와 풍습을 지니면서, 같은 운명 공동체로서 그토록 오랜 역사를 엮어온 민족국가는 드물다. 길게는 7, 8천년, 줄여잡아도 3천년의 연륜을 헤아리게 된다.(머리말)

  누구나 알고 있는 우리의 역사이지만, 근래에 <, , >를 읽으면서 새삼 대한민국역사가 우리가 상식적으로만 생각했던 것보다 더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제라드 다이아몬드 교수는 <, , >를 통해 방대한 인류사적 연구를 통해 대한민국을 특별히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중국문화권에 영향이 긴 세월동안 이어져 왔지만, 그 긴 시간동안 좁은 땅에서 혈통, 언어, 제도, 풍습 그리고 독특한 한글을 만들어 지금까지 독특한 문화를 지키고 지금 현재에 이른 것은 지구상 어느나라와 비교해봐도 대단한 국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진정으로 역사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서구의 역사와 비할 게 못되는 훌륭한 문화와 역사를 가진 민족임을 다시한번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유홍준 교수님은 우리의 유물에 대해 이렇게 평가합니다.

  그 역사의 연륜이 좁은 땅덩이에 쌓이고 보니 우리는 국토의 어디를 가더라도 유형, 무형의 문화유산을 만나게 된다. 그것은 영광의 왕도에서 심심산골 하늘 아래 끝동네까지 아직도 생명을 잃지 않고 거기에 의연히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박물관 유리창에 진열된 유물들이란 어차피 고향을 떠나야만 했던 실향유물들의 보호처일 뿐 전 국토가 박물관인 것이다.(머리말)

 

  또한 유물들이 박물관에 전시되지 않고 왜 제자리에 있어야만 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많은 공감을 하게 합니다.

  모든 유물들은 제자리에 있을 때에만 온전히 제 빛을 발할 수 있다. 태백산맥 전체를 절집의 정원으로 끌어안은 부석사 가람배치의 장대한 기상과 그윽한 암곡동 계곡에서 쫓겨나 경주박물관 뒤뜰로 옮겨온 고선사탑의 애처로움은 국토박물관이라는 나의 표현에 정당성을 부여해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국토박물관의 참 모습과 참된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왔다. 외국을 관광하고 돌아오는 사람 중에는 대영박물관에 가보았더니 한국미술품이 너무 초라하더라는 식의 말을 아주 쉽게 해버리는 경우를 자주 만난다. 그러나 이 말을 정확한 표현으로 고친다면 대영박물관의 한국미술품 컬렉션은 별볼일 없더라라고 해야 옳다.

  사람들은 생래적으로 흔한 것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습성이 있다. 가식의 화려함에는 곧잘 현혹되면서도 평범하고 소박한 가운데 진실과 아름다움이 있음은 쉽게 놓쳐버린다. 게다가 세상의 관심이 아직도 남의 문화에 대한 대책 없는 선망과 모방에 쏠리다 보니 저 국토박물관의 유물이 말해주는 진실과 아름다움을 읽어내지 못하고 있다.(머리말)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은 학교를 다닐 때부터 수학여행이니 현장학습이니 체험학습을 통해 역사여행을 하기도 합니다. ‘지나고 보면 제대로 역사공부를 하고 문화재나 유물에 대한 충분한 지식을 가지고 학습을 하는 학생들이 얼마나 될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저 또한 막연히 학교학습을 떠나 여행을 간다는 가벼운 마음 때문에 사전 지식이 없이 친구들과 떠났었고, 성인이 되어서도 그 가벼운 내 역사에 대한 사고방식이 바뀌지는 않았습니다. 교수님의 일침에 저의 방정한 마음이 들켜버린 듯해서 읽는 동안 창피함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이 책이 2001년도 출판일로 되어 있는 걸로 보아 지금은 우리나라 국민들의 의식의 수준도 높아졌으리라고 생각되지만, 교수님의 이러한 생각은 앞으로의 많은 세대들도 같이 공감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그렇다고 하여 국토박물관의 유물에 대한 친절한 안내글이 세상에 있는 것도 아니다. 답사길에 문화재안내 표지판을 읽다 보면 저렇게 어려운 전문적 사항의 냉랭한 나열이 과연 관람자들에게 무슨 도움이 될지 의심스럽기만 하며, 문화재 전문가의 한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는 나 자신이 일반 대중에게 큰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는 죄책감 같은 것을 느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머리말)

  이것은 문화재에 대한 학자로서의 양심이라고 할까요? 그렇지만 나는 교수님만의 탓이라고 하기에는 아니다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모든 게 정보화 되어 마음만 먹으면 쉽게 무엇이든 알수가 있었지만, 20년 전만 해도 지금과는 달랐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또한 문화재를 관리하는 국가나 기관들에게도 일부의 책임은 있어 보입니다. 고전 문화재가 어느 지식인들의 영역인 것처럼, 또는 관료주의 사회의 관리 대상으로 생각했던 사람들이 있었기에 이렇게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안내글이 달린 것이 아닐까합니다. 크게 생각해 보면 누구의 책임이라고까지도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관람자도 지식이 없으면 없는 대로 관람 일정이 있었을테고, 그러면 사전에 충분히 관람 대상에 대한 공부도 할 수 있었을 테니까요. 그러면 굳이 안내판을 읽고 이해할 필요도 없고, 문화재 해설사들의 장황한 안내도 받을 필요도 없을 것이고요.

 

  그리고서 교수님이 왜 우리나라의 문화재가 국토박물관인지, 그러려면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한 조언도 하십니다.

  미술사를 전공으로 삼은 이후 내가 주위 사람들로부터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어떻게 하면 미술에 대한 안목을 갖출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이 막연한 물음에 대하여 내가 대답할 수 있는 최선의 묘책은 인간은 아는 만큼 느낄 뿐이며, 느낀 만큼 보인다는 것이었다. 예술을 비롯한 문화미란 아무런 노력 없이 획득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것을 아는 비결은 따로 없을까? 이에 대하여 나는 조선시대 한 문인의 글 속에서 훌륭한 모범답안을 구해둔 것이 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머리말)

  세상 모든 것이 그렇듯이 알면 지식이 되고, 지식이 되면 삶의 길눈이가 되고, 그러므로 인해서 인생을 더 알차게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합니다. 문화재 역시 우리가 너무 가까운 곳에서 보기도 하고 옆에 있음에도 소중한지 모르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지금은 귀중한 보물이 되어버린 고려청자이조백자같은 경우만 봐도 우리의 조상님들은 절제되고 단아한 아름다움을 만들어 냈지만, 정작 우리는 그것의 아름다움과 멋을 몰랐고 임진왜란 때나 한일합방을 전후하여 그 아름다움을 한 눈에 알아본 왜인들은 우리의 문화재를 몰수해 가서 지금은 우리는 흔히 볼 수 없는 귀중품이 되어 버렸습니다.

  교수님은 우리 문화재에 대한 사랑의 감정으로 문화유산을 답사하면서 국토박물관의 길눈이가 되어 동시대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 국토의 역사와 미학을 일상 속에 끌어안으며 살아가는 행복을 나누고자 한다고 싶다 말합니다이것이 진정한 지식인의 길이 아닐까싶습니다. 소중한 국가적, 역사적 자산을 모르는 일반인들에게 지식인의 눈이 아닌 일반인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남녀노소 우리의 문화재의 소중함을 느끼고 공유하는 것이 함께 나아가는 공동체의 길일 것입니다.

 

 

  이 책의 본문은 우리나라의 긴 역사와 함께한 사찰을 중심으로 작가인 유홍준 교수님이 답사기를 책으로 펴냈습니다. 그러므로 해남 강진의 무위사와 백련사를 시작으로 화려했던 우리나라 최대의 유적지인 경주 신라문화, 양양 낙산사, 문경 봉암사, 고창 선운사까지의 답사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간단한 독후감으로 모두를 소개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지만, 그 중 인상적인 곳 몇 곳만 소개해 보겠습니다. 이 속에도 교수님의 문화재를 보는 철학이 담겨져 있어서 이 또한 우리가 배우면 좋을 것 같습니다.

 

  백련사에 오르면 반드시 대웅전 기둥에 기대서서 강진만을 바라보든지, 스님의 용서를 받고 만경루에 올라 누마루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아야 절집의 참맛을 알게된다. 백련사 만경루가 답사객에게 불친절 하게 보일 정도로 가파른 비탈을 이용하여 세운 이유는 바로 만덕산 산자락에서 구강포로 이어지는 평온한 풍경을 끌어안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절집이건 서원이건 여염집이건 우리는 관객의 입장이 아니라 사용자의 입장에서 그 집을 살펴야 그 건축의 본뜻을 알게 된다. 그리고 바로 이 점, 남에게 으스대기 위하여 치장하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의 편의에 입각하여 배치할 줄 아는 당연한 슬기를 이 시대 우리는 마땅히 배워야 한다.(62~63p)

  우리가 진정 옛것을 통해 배움의 길에 이르는 방법은 다양하게 있지만, 이런 시각이야말로 화려함에 현혹되지 않고 많은 시간과 세월이 흘러 퇴색되고 볼품이 없을 지라도 사용자의 입장에서 건물이든 물건이든 그 효용의 가치를 알게 될 것입니다. 그 흔한 관광의 목적으로 여행을 다니기 때문에 그 속에 들어있는 옛 사람들의 많은 이야기와 생각을 읽지 못하고 스치듯 지나가고 마는 것이겠지요.

 

  교수님은 예산 수덕사와 가야산 주변을 답사하면서 답사의 의미와 목적에 대해서도 언급했습니다.

  답사를 다니는 일은 길을 떠나 내력 있는 곳을 찾아가는 일이다. 찾아가서 인간이 살았던 삶의 흔적을 더듬으며 그 옛날의 영광과 상처를 되새기고 나아가서 오늘의 나를 되물으면서 이웃을 생각하고 그 땅에 대한 사랑과 마음을 확인하는 일이다. 그런 답사를 올바로 가치있게 하자면 그 땅의 성격 즉 자연지리를 알아야 하고, 그 땅의 역사, 즉 역사지리를 알아야 하고, 그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의 내용 즉 인문지리를 알아야 한다. 이런 바탕에서 이루어지는 답사는 곧 문화지리라는 성격을 갖는다.(95p)

  답사를 통해 그 옛날 살았던 사람들을 통해 작게는 자기성찰을 하는 일이고, 크게는 국가의 존재까지도 생각해 볼 수 있는 문장이라고 생각됩니다. 세상이 평화로울 때 인간은 자기의 삶을 되돌아보고 반성해보기도 하고, 또 이런 역사와 문화유산을 통해 다시 나는 이 세상에서 누구인가?’라는 자문과 함께 자신의 정체성도 확인해 보는 기회가 되는 것 같습니다. 또한 국가적인 위기가 처했을 때는 그런 개인적인 정체성이 국가적인 정체성으로 나타나 모두가 국난을 극복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합니다. 바로 지금 우리가 코로나 사태로 위기를 맞기도 했으나 전 세계적인 모범대처로 칭찬을 받는 것처럼 말입니다.

 

수덕사의 대웅전-간결한 힘과 멋

  예산 수덕사는 아무리 망가졌어도 거기에 대웅전 건물이 건재하는 한 나는 수덕사를 무한대로 사랑한다. 이 대웅전 하나만을 보기 위하여 수덕사를 열 번 찾아온다 해도 그 수고로움이 아깝지 않다. 수덕사는 고려 충렬왕 34(1308)에 건립된 것으로, 현재까지 정확한 창건연대를 알고 있는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이다. 이를 기준으로 하여 건축가들은 부석사 무량수전, 안동 봉정사 극락전, 강릉 객사문 등 고려시대 건축의 양식과 편년을 고찰한다.

  고려시대 세운 목조건축이라! 말이 그렇지 나무로 만든 집이 700년 동안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에 차라리 숙연한 마음이 일어난다. 철근을 사용하면서도 길어봤자 100년도 못 가서 헐어버릴 집을 짓고 있는 이 시대의 짧은 눈과 경박한 시대정서에 대한 무언의 꾸짖음이 여기 있다.

  수덕사 대웅전 건축은 그 구조와 외형이 아주 단순하다. 화려하고 장식이 많아야 눈이 휘둥그레지는 현대인에게 이 단순성이 보여주는 간결한 것의 아름다움, 꼭 필요한 것 이외에는 아무런 수식이 가해지지 않은 필요미는 얼른 다가오지 않는다. 그러나 안정된 정서를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수덕사 대웅전의 저 간결미와 필요미가 연출한 정숙한 아름다움에 깊은 마음의 감동을 받게 될 것이다. 그것은 마치도 가벼운 밑화장만 한 중년의 미인을 만났을 때 느끼는 감정 같은 것이다.(99p)

  내가 지금 살고 있는 당진과 멀지 않은 곳에 수덕사가 있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런 깊은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에 나의 무지함을 자책해 봅니다. 앞서 교수님이 말한 것처럼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실감나게 들립니다. 그리고 간단히 옛 사찰과 현대건물을 비교하여 옛 목조 건축이 오래 보존되고 화려한 현대 건축물은 상대적으로 크게 평가절하가 되어버리네요. 또한 현대인들이 보지 못하는 옛것의 아름다움에 대해서도 다시한번 공감하게 됩니다.

  교수님은 수덕사 대웅전의 깊은 역사 이외에는 특별히 볼 것은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수덕사를 찾는 이유는 그곳에 얽혀있는 수많은 인간 이야기와 전설이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일반인들도 조금만 더 관심을 가지고 관람을 한다면 유적에 관한 가치를 한번 더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이기도 할 것입니다.

 

  다음으로 화려했던 신라문화에 대한 답사 내용으로 이어집니다. 그 중에서 가장 화려했던 진평왕과 선덕여왕 시절의 유물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신라문화권의 화려함은 그 시대 삼국을 통일했던 위용을 알 수 있었고, 특히 일반인인 내가 그 시대의 기술적 노하우를 알 수 있었던 것은 에밀레종이었습니다.

  77012월에 만들어진 에밀레종은 장중하고 맑은 소리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여느 종과 마찬가지로 종이컵을 뒤집어 놓은 형상 또는 대포알을 머리와 허리춤에서 자른 모습이지만 가운데 아래쪽이 불룩하게 부풀어 있으면서 끝마무리는 슬쩍 오므려 팽창감과 포만감을 주는 진장미를 유지하며, 동시에 종 어께어서 몸체를 지나 허리에서 마감하는 유려한 곡선을 드러낸다. 정중하면 유려하기 힘들고 유려하면서 정중하기 힘든 법이지만 에밀레종은 그 모두를 충족시켜준다. 그래서 나는 에밀레종을 보면서 감히 아름답다는 형용사를 쓰지 못한다. 그것은 거룩한 것이고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가장 위대한 형태와 소리를 지닌 신종이라고 생각하면서 나는 내가 보낼 수 있는 최대의 찬사와 경의를 여기에 보낸다.(175~176p)

  이보다 더 좋은 찬사와 경의가 또 있을까요? 저는 에밀레종을 보지는 못했지만, 미술사를 연구한 학자의 감탄이 글자 몇 개이지만 그 여운이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전해져 오는 것 같습니다또한 에밀레종을 박물관으로 옮겨 매달아야 하는데 종고리를 현대 기술로 만들지 못하여 그 옛날부터 사용해 온 쇠봉을 그대로 끼웠다고 합니다. 그 당시 포스코 관계자와 기계공학 전문가들이 22톤에 달하는 쇠봉을 만들었지만 휘어지고 말았다고 합니다. 결국에는 원래 에밀레종에 사용했던 쇠봉을 그대로 사용한다고 합니다. 1300년 전에 만든 종이 현대기술로도 만들지 못하는 것은 선뜻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는데 그것은 지금도 수수께끼로 남아있나 봅니다. 문화재를 연구하는 학자로서의 감탄의 시선도 대단하지만, 기술의 정점에 다다른 현대에서도 그 수수께끼 같은 기술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은 그 당시 기술의 위대함을 알게 해줍니다.

 

 

 

감상평

 

  대학자의 역사연구와 답사길에 대해 역사와 문화재에 대해 무지한 일반인의 한 사람으로써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는 말을 남기고 싶습니다. 이 짧은 글로 책의 내용을 다 소개하지는 못하지만 역사를 모두 알지는 못하더라도 이런 책을 옆에 두고 있는 것도 좋다고 생각되어집니다. 왜냐하면 한꺼번에 이 책을 다 읽지 못하더라도 옆에 두고서 역사기행, 또는 문화재에 연관된 관광을 갈 때 미리 예습을 하고 떠나면 좋은 책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교수님처럼 많은 역사지식과 문화재에 대한 안목을 갖고 있으면 더 없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힘든 분들은 유적지 관람을 할 때 좋은 교재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입니다정보화 사회가 되어 스마트폰으로 문화재 검색을 하면 금방 알 수 있는 지식이지만 책으로 전하는만큼 상세한 매개체도 없다고 생각됩니다.

  앞서도 말했지만, 역사를 제대로 아는 것도 자기 성찰의 기회가 될 수 있고 앞서 살았던 사람들을 통해 다시 미래를 설계할 수도 있기 때문이지요. 자라나는 청소년한테는 올바른 국가관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되며 더 나아가서 개인적으로 알차고 원대한 미래를 설계할 수 있습니다. 또한 국가라는 더 큰 공동체라는 의미의 구성원이라는 점에서는 요즘 같은 코로나나 국가적인 국난이 닥쳤을 때 슬기롭고 현명하게 극복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다른 국가들로부터 여러 가지 코로나 극복 사례로 칭찬을 받고 있지만, 난을 극복할 수 있는 원동력 중에서도 대한민국은 문맹 없는 교육과 오천년 국난극복의 역사의 힘이라고 생각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5천년의 역사를 이어온 자랑스러운 역사가 아니겠습니까. 이런 역사와 교육을 통해 모두가 현재에 처한 어려움을 극복하는 지혜를 배우고 혼자가 아닌 모두가 힘을 합치고 협력해야 모두가 국난을 극복할 수 있다는 점을 말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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