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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소설 <댓글부대>줄거리와 감상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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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댓글부대>를 읽게 된 계기는 자칫 편협된 독서를 할 수 있을 것 같은 나 자신의 생각을 넓혀보고자 가입했던 독서 모임에서 회원들에게 추천을 받아 읽게 된 책입니다. 제주 4.3평화문화상을 받은 작품답게 우리 시대의 왜곡된 정보문화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4.3평화문화상을 수상했지만 이 책은 제주 4.3사태와는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필자가 추측하기로는 4.3과 같은 역사의 불행한 과거를 이 시대에 다른 이름으로 저질러지고 있지는 않는지 이 작품을 통해 우리 시대의 4.3 사태의 씨앗이 사회 한 구석에 피어올라오고 있지는 않는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주요 등장인물


삼궁, 01査10, 찻탓캇: 이 소설을 이끌어가는 익명의 팀-알렙이란 단체의 젊은 댓글조작원이며 삼총사. 소설에서도 철저히 이 익명으로 나오며 소설 전반적으로 이철수라는 사람한테 댓글조작이나 커뮤니티 등의 의뢰를 받아 공격대상이 되는 사람을 제거하거나 사회적인 절망에 빠지는 만들게 함.

이철수: 실질적인 의뢰인인 나이가 많은 ‘회장’이라고 부르는 남산의 노인이 있고, 그 노인의 지시에 따라 팀-알렙에게 댓글 작업 의뢰를 하고 실행하는 회장의 대리인.

임상진: K신문사의 기자. 찻탓캇과 녹취를 하면서 댓글부대의 진상을 밝히려 하지만, 이 마저도 이철수의 지시를 받은 팀-알렙의 철저한 계략. 결국에는 여론의 지탄의 대상이 되어 사회적으로 매장당함.


줄거리 요약


소설 대부분의 내용이 댓글부대의 시작과 진행과정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1세대 댓글부대로 시자되는 2012년 국정원이 운영한 댓글부대, 온라인 마케팅으로 불리우면서 사업자들에게 유리한 검색어 띄우기나 가짜 구매후기 올리기, 인터넷 사이버 강사들에 대한 악평이나 학원에게 청부 사이버공격, 학교 선생님의 가혹행위에 대한 청부를 받은 학교나 교육청의 홈페이지에 접속해 선생님을 퇴직하게 하는 댓글공격 그리고 대기업과 정치인들에게 의뢰를 받아 본격적인 댓글부대 활동을 하게됩니다. 그러면서 점차 팀-알렙의 정치계, 경제계, 교육계, 사회에서 인맥이 넓어지면서 영향력도 커져 갑니다. 그러면서 의뢰를 받은 이철수의 경쟁상대들에게는 철저하게 사회적 매장이 되도록 댓글작업을 수행합니다.

임상진 기자와 찻탓캇의 댓글부대의 폭로와 양심선언에 의한 녹취를 기반으로 이루어지면서 이야기는 진행됩니다. 대글부대원들은 결국에는 정치적인 여론 조작에까지 의뢰를 받아 교묘하게 커뮤니티 사이트, 기업임원들에 대한 사회적 매장을 합니다.
그렇게 인터넷을 오래할수록 점점 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게 돼. 확증 편향이라는 거야. TV보다 훨씬 나쁘지. TV는 적어도 기계적인 균형이라도 갖추려 하지. 시청자도 보고 싶은 뉴스만 골라볼 순 없고. 하지만 인터넷 커뮤니티들을 달라. 그런데 이 미디어는 어떤 신문 방송보다 더 왜곡된 세상을 보여주면서 아무런 심의를 받지도 않고 소송을 당하지도 않아. 커뮤니티 사이트들은 최악의 신문이나 방송사보다 더 민주주의를 해치지.(57p)

그런데 저희들(팀-알렙)의 목표는 그 사람들(평론가, 비평가, 인문학자 등)이 아니었어요. 그 사람들이 아니라 십대나 대학생들이었어요. 가만히 놔두면 그 사람들을 롤모델로 삼을 수도 있는 아이들. 그 사람들 생각에 설득이 될 수도 있었던 아이들.
이건 삼궁 표현인데요. 우리는 그 아이들한테 걔들이 두려워하는 걸 보여준 거예요. 자칫하다가는 그렇게 될 것만 같은 미래의 자신의 모습. ‘비겁한 낙오자’의 모습. 그 트라우마가 꽤 길거라고 삼궁은 주장했고, 저도 동의했어요. 단순히 그 강사들이 웃겨보이게 되는 문제가 아니에요. ‘우리 동영상을 본 애들은 그 강사들이 하는 말조차 거부하게 될거다. 그런 말을 자꾸 듣다보면 자기도 그런 신세가 될 거라고 생각할 테니까.’ 라고 삼궁은 말했어요.

하지만 댓글부대를 녹취하며 자료를 수집하고 1면 톱기사를 내지만, 이 또한 이철수의 지시를 받은 팀-알렙의 계략이었습니다. 임상진 기자도 사회적인 매장을 당하고, 진보 사이트에서는 자중지란이 일어나고 임상진 기사가 소속된 신문사 또한 신뢰에 큰 타격을 받게 됩니다.
그렇지만 일은 여기서만 끝난 게 아니었습니다. 의뢰를 받은 팀-알렙의 구성원 중 임상진과 폭로를 한 찻탓캇 또한 희생의 대상이었는데요. 이 모든 사실을 숨기기 위해 중국으로 단독 밀항을 시도하다가 밤바다 한 가운데에서 목에 졸려 타살을 당하게 됩니다. 이 사실 또한 다른 팀-알렙 조직원인 삼궁과 01査100은 모르고 있었습니다. 이철수는 이 조직원들도 나중에 충분히 이용하고 이용한 다음에 살려두지지 않을 생각이었습니다.

“그 글 잘 쓰던 친구한테서는 그 뒤로 혹시 무슨 연락 없었나? 찻탓캇이라는 친구, 중국에는 잘 갔나?”
이철수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삼궁에게 물었다.
“아직 연락을 못 받았습니다. 완전히 자리 잡기 전에는 잠수 타고 있기로 해서요. 그 친구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입은 진짜 무거운 녀석이거든요.”
삼궁이 대답했다. 이철수가 알았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철수는 이 삼궁이라는 젊은이가 정말로 마음에 들었다. 가능하면 몇 년 더 살려두고 싶었다.(239p)

전체 감상평


이 책을 간단한 감상평을 하자면 인터넷이 정치권력이나 사회 기득권 세력에 의해 악의적으로 이용되고 그들에 의해 이용되어진 하수인들이 용도 폐기되는 참혹한 이야기를 그린 소설입니다. 작가의 의도가 댓글부대의 활동이 주된 내용이지만 중간에 많은 부분에서 외설적인 내용은 성인인 필자가 보면서도 거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반적인 내용에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선전부장 요제프 괴벨스의 선전내용과 닮은 점이 많은 것도 이 소설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책 중간에도 최상위 사회 기득권층으로 나오는 남산 노인도 요제프 괴벨스에 대한 언급이 나오고, 저자 역시도 많은 부분을 괴벨스의 선전내용을 참고 했다고 합니다.
-요제프 괴벨스의 어록과 대중을 선동한 기록
1. 거짓말도 100번 하면 진실이 된다.
2. 대중의 증오는 분열을 부른다.
3. 청소년을 대상으로 사상교육.
4. 나치즘에 유리한 사회 분위기 조성.
5. 개인적인 생각의 통제.
6. 심한 여성 편력.
이러한 괴벨스의 선동 방법은 라디오에서 인터넷으로 바뀌어 더욱 치밀하고 날카롭게 대중을 파고들고 있습니다.

통신수단의 발전이란 게 예전이면 일반에게는 안부를 전하거나 전쟁에서 승리를 하기위한 중요한 매개체였는데요. 산업이 발전함에 따라 사회나 국가는 물론 각 개인에게도 통신을 넘어 삶의 영역의 중요한 도구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댓글부대라는 말이 언제부턴가 어제오늘 일이 아닌듯 누구나 정치, 경제, 사회에서 특정소수의 이익이나 의견을 대신해 주고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고 더욱 경각심을 갖게 되는 것은 비단 이 책이 소설이 아니라 지금의 현실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사실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인터넷의 순기능 역기능

인터넷의 장점이라고 말하면 수십 가지가 넘습니다. 장점이야 모두가 공감하는 것이자만, 이 책을 통해 본 역기능은 대중 다수가 특정 개인에게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는 댓글폭력이 아닌가 싶습니다. 분면 사회적인 공감대 안에서 잘못을 지적하고 처벌을 하는 것은 마땅하다고 생각되지만, 사법적인 영역이 아닌 인터넷 상에서 신상공개가 되고 그 사람이 다시 사회에 설 수 없게 만드는 것은 모두가 생각해 봐야할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익명성, 가상의 존재, 정치적으로 악용되는 수단, 드루킹, 가짜뉴스 등 최근 역기능으로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사실들이 이 책에서 표현되었습니다. 읽는 독자에게는 공공연한 사실이었지만, 아니기를 바랐던 내용들이 이 책을 보면서 지금 현재의 일이라고 명확한 확신을 갖게 되기도 했습니다. 소설이란 장르가 허구이지만 너무도 사실적인 이야기 전개와 묘사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요한 대목을 다시읽기도 했습니다.


-나도 피해자가 될 수 있고 가해자도 될 수 있다

책을 읽고 생각해봤습니다. 책에서는 정말 도덕적 가치관은 뒤로 하고 악의적으로 젊은 댓글부대원들을 이용하고 소모품처럼 버리지만, 작게는 필자 자신도 인터넷 댓글을 달면서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 않았나, 또 내 글로 인해 누군가가 상처를 입지는 않았는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언제라도 내 글을 통해 익명의 가해자가 꼬투리를 잡아 내가 쓴글을 매개로 또다른 피해자에게 사회적 매장을 당하지는 않는지 조심해댜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마무리

기술이 발전하고 사회가 발전하면서 각자의 영역에서 이해관계도 복잡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공동운명체’라는 공감대 형성이 중요해 보입니다. 누군가에게 이익과 명예가 있는 것은 그 사람뿐만 아니라 그밖의 사회 구성원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사회는 누군가가 또 다른 다수의 사람들을 지배하는 사회가 아니라 내가 아픈만큼 다른 사람의 아품도 공감할 줄 알고, 내 기쁨이 모두의 기쁨이 되고, 모두가 함께 살아가야하는 공감대가 있을 때, 그리고 서로에게 신뢰가 넘칠 때 사랑이 넘치고 활기 넘치는 사회가 될 것입니다. 어떤 이가 어떤 이를 이용하고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는 사회가 된다면 얼마나 비극적인 사회가 될까요.

애덤 스미스는 그의 책 <도덕감정론>에서 사랑받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사랑받는 사람이 되라고 했습니다. 인터넷이 아무리 발전한들 사람의 따뜻한 감정까지 갖지는 못할 것입니다. 부디 사회적 기득권층이든 사회적 약자이든 모두가 모여 우리사회의 고민이 무엇인지 한 발 물러서서 서로를 이야기하는 공간이 되는 인터넷의 좋은 기능이 더 커지기를 바라면서 이 글을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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