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벌
지은이: 도스토예프스키
장르: 고전 소설
조금은 어려워 보이는 이름의 고전 소설 <죄와 벌>을 읽었습니다. 소설이 출간 될 때가 아직 러시아에서 공산주의나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기 전이라는 점을 보면 그 당시 봉건적 왕권중심 사회에서 서민들의 삶은 하루하루가 전쟁 같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던 소설이었습니다.
지은이 도스토예프스키는 1821년 러시아 태생으로 군의관이던 아버지와 유복한 집안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가 매우 다혈질적이고 엄격하며 가족들에게 복종을 강요하는 편이어서 어렸을 때는 아버지를 매우 무서워하며 자란 탓에 성격은 매우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유년시절을 보냈다고 합니다. 다행히 어머니는 매우 인자한 여성으로 그녀로부터 읽기와 쓰기를 배웠다고 합니다. 그는 열세 살 때 학교에 입학하면서 학교 문학사 선생님의 영향으로 문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성장하면서 고전 문학을 탐독하며 문학에 뜻을 키워나갑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이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이 소설 <죄와 벌>은 그가 가장 곤궁했던 시절에 쓰여졌다고 합니다. 그 시기에 아내를 잃고, 절친했던 형 미하일을 떠나보냈고, 절친했던 친구까지 잃은 시기였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유족들의 막대한 부채를 떠안은 그는 쫓기듯 외유를 다녀야 했습니다. 그 와중에 집필한 <죄와 벌>이 세상에 나오게 됩니다.
등장인물
라스콜리니코프: 이 소설의 주인공. 가난으로 대학을 중퇴한 청년으로 비상한 머리를 가진 철저한 개인주의자. 자신이 설정한 사상과 이른에 따라 고리 대금업을 하는 노파 알료나를 죽임니다. 그 후 많은 고뇌 끝에 자수를 하고 시베리아 감옥으로 유형됩니다.
두냐: 라스콜리코프의 누이동생. 오빠를 닮아 영리하고 기품이 있는 아름다운 아가씨.
라주미힌: 라스콜리코프의 친구. 착한 사람으로 마지막까지 친구의 가족을 돌본다. 후에 두냐와 결혼을 함.
루쥔: 두냐의 약혼자. 야심이 만만한 현직 변호사이지만, 진실성이 없는 야비한 사람.
알료나: 피도 눈물도 없는 악덕 고리 대금업 노파. 동생 리자벨와 함께 라스콜리니코프에게 살해됨.
포르피리: 두뇌가 명석한 예심 판사.
마르멜라도프: 퇴역 관리. 알코올 중독자이며 그의 가족은 가난에 허덕입니다. 마차에 깔려 죽음.
카테리나 이바노브나: 마르멜라도프의 후처. 세 아이를 데리고 가난과 병고에 시달려 반미치광이가 됨.
소냐: 마르멜라도프의 딸. 가난한 가족을 돕기 위해 매춘부가 되지만 신앙생활을 하는 순진한 소녀. 라스콜리니코프에게 신앙을 갖게 함. 후에 라스콜리코프의 연인이 되어 시베리아까지 따라가서 유형생활을 도움.
스비드리가일로프: 두냐가 가정교사로 일하던 가정집의 주인으로 두냐에게 집적댐. 야비한 사람으로 후회나 고통없이 자신을 위해서는 몇 사람쯤 짓밟고 일어섬. 마지막까지 두냐에게 청혼을 하지만 거절당하고 별다른 감회나 공포 없이 권총 자살을 함.
줄거리
빈곤해서 방세도 못 내고 대학을 중퇴한 라스콜리니코프는 한 가지 무서운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자주 가던 전당포 노파인 알료나를 살해한다는 계획입니다. 알료나는 피도 눈물도 없는 악덕 고리대금 업자인데요. 라스코리니코프의 생각에는 가난한 사람들의 고혈을 빨아먹는 기생충 같은 존재로 생각합니다. 때문에 그녀를 죽여서 그녀가 가진 돈을 세상 사람들에게 이롭게 쓰면 되고, 그것이 세상을 더 이롭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라스콜리니코프는 그 일을 결행할지 말지를 고심하고 있던 중에 술집에 들어갑니다. 그곳에서 마르멜라도프라는 하급관리를 만납니다. 그는 제대로 일도 하지 못하며 매일 술에 취해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술에 취해 가슴아파하는 이유는 가난 때문에 어린 자녀들이 매일 배고픔과 생활고에 시달리며, 그의 큰딸 소냐는 그의 가족을 위해 매춘을 한다는 슬픈 가정사를 듣게 됩니다.
다음날 숙소로 돌아와서 어머니로부터 편지를 받습니다. 편지의 내용은 누이동생 두냐가 가정교사로 있던 부잣집 농장주 스비드리가일로프가 집적대는 바람에 곤경에 처했지만 그것을 잘 극복하고 지금은 루쥔이라는 변호사와 약혼을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라스콜리니코프는 루쥔이 마흔이 넘은 나이인데다가 자신이 부자이기 때문에 가난한 자신의 여동생이 가난한 집과 자신의 대학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약혼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여동생이 루쥔과 결혼하는 것을 절대로 허락하지 않겠다고 다짐합니다.
그리고 바로 자신이 계획하고 있던 ‘그 일’을 실행해 옮깁니다. 바로 전당포 노파인 알료나를 살해하게 됩니다. 또 알료나를 살해하고 그녀의 동생이 나타나자 증거를 없애기 위해 그녀의 동생도 같이 우발적인 살인을 하게 됩니다. 알료나의 방에 건물 문지기들이 노크를 하며 현장을 방문하지만 라스콜리니코프는 잠깐의 틈을 타서 운좋게 현장을 빠져나가게 됩니다.
다음날 그는 경찰서로부터 출두요구를 받게 됩니다. 알료나를 살해한 라스콜리니코프는 살인용의자로 출두를 하는 것으로 알고 출두를 하는데 다행히 단순한 행정문제였습니다. 그러나 경찰서에 있는 동안 알료나에 대한 살인 사건의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그리고는 라스콜리니코프는 기절을 하게 됩니다. 그는 정신이 돌아온 후 집에 돌아가 알료나의 집에서 가져온 물건을 숨깁니다. 증거를 없애기 위해서입니다.
그 다음날 그의 친구 라주미힌이 집에 방문합니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심신이 허약한데다가 열병이 생겨 정신이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 때 두냐와 약혼을 했다는 루쥔이 라스콜리니코프를 찾아오지만, 라스콜리니코프는 면박을 주며 그를 쫓아버립니다.
그는 라주미힌도 돌려보내고 다시 거리로 나옵니다. 그 때 지난번 술집에서 만난 하급관리인 마르멜라도프가 마차에 치여 있는 것을 발견하고 경찰과 함께 집에 데려가서 치료를 합니다. 그곳에서 그는 마르멜라도프의 가족과 그의 큰딸인 소냐를 처음 보게 됩니다. 하지만 하급관리는 바로 숨을 거두게 됩니다. 그것을 본 라스콜리니코프는 어머니가 보내준 생활비 전액을 마르멜라도프의 아내에게 장례비로 쓰라고 전해줍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자 어머니와 두냐가 집에 와 있었습니다. 집에는 라주미힌도 같이 와 있었습니다. 그는 어머니와 두냐를 반갑게 맞이하기는커녕 냉대를 하고, 두냐와 루쥔과의 결혼을 강하게 반대한다는 뜻을 밝힙니다. 한편 같이 있던 라주미힌은 두냐에게 첫눈에 반하게 됩니다.
다음날 라스콜리코프는 라주미힌과 함께 예심판사인 포르피리를 찾아갑니다. 전당포 노파에게 맡겼던 자신의 물건을 찾으러 간 것입니다. 포르피리는 라스콜리니코프가 경찰서에서 노파살인사건의 얘기를 듣고 기절한 것으로 그를 의심하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범죄에 관한 논쟁을 벌이게 됩니다. 포르피리는 과거에 대학에서 라스콜리니코프가 범죄 논문을 쓴 것을 가지고 라스콜리니코프를 더욱 의심하며 자기의 논리를 펼칩니다. 결국 노련한 포르피리에게 라스콜리니코프가 말려들게 됩니다.
매우 흥분한 상태로 집에 돌아온 라스콜리니코프에게 불청객이 찾아옵니다. 두냐에게 집적거린 옛날 농장주 스비드리가일로프였습니다. 그는 다시 두냐를 만나고 싶다며 라스콜리니코프에게 도움을 청하지만 단칼에 거절당합니다.
다음날 어머니와 두냐 그리고 루쥔과 함께 만나게 됩니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두냐와 루쥔의 약혼은 깨지게 됩니다. 왜냐하면 루쥔이 순수하게 두냐를 사랑하지 않고, 가난한 여자를 자신의 아내로 맞이하면 고마운 마음이 생겨 자신에게 충실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켜버렸기 때문입니다.
라스콜리니코프는 바로 소냐의 집으로 향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바로 알료나의 살인범임을 밝힙니다. 하지만 자신은 그녀를 살해한 것이 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자신의 신념을 말합니다. 나폴레옹을 예로 들며 그도 유럽을 정벌하기위해 많은 사람들을 죽였지만 결국에는 많은 사람들한테 존경을 받고 더 많은 사람들을 이롭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도 많은 돈을 가지고 있으면서 인정을 베풀지 않은 노파를 죽여서 그녀가 가지고 있는 재산을 더 많은 사람들이 이롭게 된다면 그것은 죄가 되지 않는다는 자신만의 신념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소냐는 살인은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 될 수가 없다며 자수를 권고합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옆방에 묵고 있던 스비드리가일로프가 엿듣습니다.
다음날 라스콜리니코프는 예심판사 포르피리를 찾아갑니다. 그를 범죄자라고 생각하는 포르피리는 교묘하게 라스콜리니코프를 몰고 갑니다. 그 때 갑자기 니콜라이라는 사람이 살인범이라며 나타나는 바람에 풀려나게 됩니다.
한편 파혼당한 루쥔은 두냐에 대한 욕심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는 소냐를 불러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위로를 하다가 그녀 몰래 소냐의 주머니에 거액의 돈을 넣습니다. 그리고 소냐의 아버지 장례식에서 그녀가 그의 방에서 도둑질을 했다며 소냐를 모함합니다. 루쥔의 계략은 도둑질한 소냐를 자기가 관대하게 용서를 하면 다시 두냐가 자기를 받아줄 것이라는 속셈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소냐에게 몰래 돈을 넣는 것을 본 룸메이트가 사람들 앞에서 사실을 폭로하면서 루쥔은 망신을 당하며 물러나게 됩니다.
라스콜리니코프의 살인 사실을 알게 된 스비드리가일로프는 그것을 이용해 다시 두냐에게 접근합니다. 이 사실을 숨기는 대신 자신과 두냐의 가족과 함께 멀리 떠나자는 제안을 두냐에게 하지만 두냐는 완강하게 거부를 합니다. 결국 스비드리가이로프는 소냐의 불쌍한 가정사정을 동정하고 자신의 재산을 소냐에게 남겨주고 권총으로 자신의 머리를 쏴서 자살하고 맙니다.
그리고 라스콜리니코프는 깊은 고민 끝에 자수를 하게 되고 시베리아로 유형되게 됩니다. 죄는 정상참작이 되어서 7년 동안의 형을 살게 됩니다. 그곳에 소냐도 같이 따라가서 감옥 밖에서 한 달에 한 번씩 면회를 하며 가족들한테 소식을 전해 줍니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유형지에서 자신의 죄를 참회를 하고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다는 내용으로 끝마칩니다.
감상평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길고 중간 중간에 같은 인물임에도 다른 이름으로 나와서 읽기가 쉽지 않았고, 배경의 내용이 자주 바뀌기 때문에 읽었던 앞의 내용을 다시 살펴보면서 읽은 조금은 어려운 소설이었습니다. 더하자면 라스콜리니코프의 심리상태도 정신병적으로 복잡했기 때문에 조금 더 쉽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소설 속에서 얘기하는 죄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작게는 라스콜리코프가 생각하는 빈자들의 죄, 그리고 우리가 사회 통념적으로 생각하는 죄에 관한 것입니다.
먼저 우리 사회가 생각하는 통념적인 죄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규범으로 정해놓은 법규가 있고 그 안에서 지켜져야 하는 최소한의 규칙 등이 있습니다. 또 그것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매너나 동양적으로 보면 예절 같은 것이 있겠지요. 결국에는 우리 사회가 적절히 돌아가기 위해서는 누군가 아니면 우리 구성원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규범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반대로 생각하면 그 규범이나 법의 범위 밖을 벗어나면 죄가 되는데요. 소설 속의 내용처럼 누군가에게는 평범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절실해서 죄를 범할 수밖에 없고 어쩔 수 없는 현실에 부딪히게 될 때는 법을 위반 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소설 속의 라스콜리니코프도 고향을 떠나 대학에 진학했지만 방세도 내지 못하고 대학 학자금도 모자라 더 이상 학업을 진행하지 못해 중퇴를 합니다. 그리고 퇴역관리를 보면서 법은 정해져 있지만 더 이상 가난한 사람들한테는 법을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빈곤하고 하루하루를 연명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바로 이런 것들을 보면 부자들이 법을 만든다는 ‘황금률’이 생각납니다. 일상의 편안함과 안락함을 즐기는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법규의 테두리에서 생기는 빈자들의 전쟁터라고 하면 맞을까요? 부자들도 살면서 정신적인 고통이 없을 수는 없으나 최소한 빈자들이 먹을 게 없어 빵을 훔치고 배고품을 달래기 위해 죄를 저지르는 것까지는 생각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얼마전 뉴스에서도 아빠와 아들이 배고품을 참지 못하고 마트에서 먹을 것을 훔치다가 발각되었다고 합니다. 다행히 좋음 마음을 가진 경찰관과 이웃들의 도움을 받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 눈에 보여지는 극히 일부의 사람들이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빈자들의 고통 속에서 살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다음으로 라스콜리니처럼 생각하는 빈자들의 죄에 대해서 생각해 봅니다. 그것은 사회적인 통념으로 만들어 놓은 법규에서 벗어난 행위를 할 때 만들어지는 죄에 반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사회적인 부자들이 생각하고 만들어놓은 것이 법이라고 하면, 반대로 빈자들이 생각하는 법이라면 라스콜리니코프같은 신념이라고 해야 될 것입니다.
소설 속의 라스콜리니코프는 가난을 직접 부딪히며 세상을 살아갑니다. 자신도 법학도 이기 때문에 현실 속의 법도 잘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하루를 살아가기에는 빈자들의 생활은 전쟁과 같습니다. 그래서 자신은 전당포에 자기의 물건을 맡기면서 전당포 주인이 많은 돈을 가지고 있으면서 세상 사람들에게 인정을 베풀지 않는 기생충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라스콜리니코프는 그녀를 살해하게 되고 그녀의 물건들을 훔치게 됩니다. 하지만 그녀를 살해한 것은 현실세계에서는 죄가 되지만, 그녀의 물건으로 많은 세상 사람들이 유익하게 된다면 살인을 했더라도 죄가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라스콜리니코프가 말하는 나폴레옹처럼 말입니다.
이 부분은 21세기를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깊이 생각해봐야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많은 부분에서 정부의 복지정책이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법이 있더라도 하루 살기 힘든 사람들이라면 법이나 죄를 생각할까요? 그리고 자신의 희생을 통해서 세상이 변한다면 자신의 희생은 기껏 내던지겠다는 사람이 있다면 이 또한 사회적인 문제가 될 것입니다. 그것은 사회가 정해놓은 법을 놓고 생각하면 범죄가 될 수 있는 것이지요.
<호밀밭의 파수꾼>의 주인공 홀든이 라스콜리니코프처럼 성장하면서 가치관이 이상한 쪽으로 형성되었다면 아마 홀든도 라스콜리니코프와 같이 ‘사회적인 규범과 법규에 반하는 행동을 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작가가 제시하는 ‘순수’와 ‘죄’에 대한 주제만 다를 뿐입니다. 이 모든 게 아직 정신적으로 사회적으로 기성세대들이 가져야할 과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어느 사회나 문제점이 있기 마련이지만, 이런 소설을 통해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 다양한 시각으로 접근해서 젊은이들의 진취적이고 이성적인 가치관을 길러주는 게 이 소설을 통해서 작가가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카라마조프의 형제보다 먼저 읽은 소설인데 더 늦게 올렸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