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독서

악의 평범성(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728x90
728x90

악의 평범성(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혹시 나치 독일 하면 무슨 생각이 드시나요?

무서움? 잔인함? 강인한 게르만 전사? 아우슈비츠? 아돌프 히들러? 불교문양의 하켄크로이츠? 각종 영화 주제가 된 제2차 세계대전 속의 독일군? 안네의 일기?

열거하다보니까 생각보다 많네요.

저는 나치 독일 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사람이 아돌프 히틀러지만, 그 휘하에 많은 지휘관들도 있었겠지요?

그런데 그 사람들이 히틀러처럼 야비하고 악마 같았을까요?


나치 독일이 유대인 학살 계획을 꾸밀 때 600만 명을 처리하기 위한 효율적인 시스템 구축과 운영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아돌프 아이히만은 아르헨티나에서 망명 생활을 하다가 1960년 이스라엘 모사드에 체포되어 예루살렘에서 재판을 받고 처형되었다. 아이히만을 연행한 모사드이 스파이는 나치 친위대 중령으로 유대인 학살계획을 주도하던 최고 권위자 아이히만이 냉철하고 건강한 게르만 전사의 모습을 하고 있을 것으로 상상했던 모양이지만 실제로 마주한 그는 무척 왜소하고 기가 약해 보이는 지극히 평범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재판은 기가 약해 보이는 이 인물이 저지른 수많은 죄들을 낱낱히 밝혀 나갔다.


미국의 정치학자이자 철학자인 한나 아렌트는 독일 출생이지만 유대인이었기 때문에 나치 정권을 피해 파리로 망명했다가 나중에 다시 미국으로 망명해 미국에서 시카고대학교 교수를 역임했습니다. 이 후 스탈리즘과 나치즘을 연구를 하기도 했는데요.


아이히만의 재판을 방청한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란 제목으로 책을 내게 됩니다. 특이할만한 게 이 책의 부제인데요. 부제는 '악의 평범성에에 관한 보고서'라고 붙였습니다. 누가 봐도 부제 자체가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상식과는 거리가 멀어보이지요? 짧은 제목이지만 악과 평범성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단어선택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아렌트가 의도한 것은 우리가 흔히 '악'에 대해 갖고 있는 인식, 즉 악은 평범한 것이 아니라 무언가 이상한 점이 있는 특별한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뒤흔드는 일이었다. 아렌트는 아이히만이 유대 민족에 대한 증오나 유럽 대륙에 대한 공격심이 아니라 그저 단순히 출세하기 위해서 자신에게 주어진 업무를 충실히 수행하고자 그 무서운 범죄를 저지른 경위를 방청하고 나서 최종적으로 이렇게 정의 했다.

"악이란 시스템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어떤 단어를 선택하고 그 단어가 어떤 체제나 조직 그리고 시스템 안에서 누군가에게는 평범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공포나 생존의 위협이 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아돌프 아이히만도 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의 한 장교로서 그저 자기일을 충실히 수행한 나치구성원 중 한 사람일 뿐이었으니까요. 요즘으로 말하면 회사나 정치 정당 속의 성실한 조직원이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 말은 이 글을 보는 우리도 어떤 시스템이나 조직에서 무비판적으로 그 시스템을 받아들이게 된다면 얼마든지 악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인류 역사상 어디에서도 유래를 찾아 볼 수 없는 악행은 그 잔인함에 어울릴 만한 괴물이 저지른 것이 아니라 생각하기를 멈추고 그저 시스템에 올라타 그것을 햄스터처럼 뱅글뱅글 돌리는데만 열심이었던 하급관리에 의해 일어났다는 주장은 당시 큰 충격을 주었다.


우리 사회도 많은 부분에서 민주화 되어서 여러계층에서 다양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데요. 가만 보면 우리 주변에 아이히만과 같은 사람들이 아직도 보이는 것 같아 안타깝기도  합니다. 또한 한 가지 생각만으로 조직이나 단체, 국가가 유지 된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다시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사회의 최소 조직인 가정도 마찬가지구요.


얼마전 전 지인과 저녁식사를 하게 되었는데요. 

그 지인의 중간 관리자가 직원들의 임금을 노동법에 맞지 않게 주고 있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노조가 없고 불합리한 임금지급방법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제가 들을 때 최소 3가지 정도 노동법 위반 사항이 있음), 이를 알고있는데 아직도 80년대식의 조직 운영방법을 하고 있는 관리자가 한심해 보였습니다. 최소한 악인이 되더라도 법은 지키면서 일을 하는 게 맞지 않을까요.

그런데 가만 보면 모든 회사 조직 운영체제가 불합리한 것 같지만 이렇게 돌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경영자보다는 하부 조직의 조직원이 그 시스템 안에서 충실한 역할을 수행해야 하므로써 자기의 능력을 인정받게 되는 것처럼, 누군가에게는 악인이 되는 것이지요.


주제에서 조금 멀어진 것 같은데요. 

평범한 사람이야말로 누구나 악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생각하기를 포기한 사람은 누구나 아이히만처럼 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 가능성에 관해 생각하는 것은 두려운 일이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그 가능성을 분명히 인식하고 사고하기를 멈추면 안된다고 아렌트는 호소합니다.  우리는 인간도 악마도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이 되느냐 악마가 되느냐는 시스템을 비판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능력에 달려있습니다. 


그래서 나와 다른 의견도 충분히 들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요즘 재테크 관련 책을 읽고 있는데, 여기에서도 성공한 투자가들이 가장 중요하게 듣는 말은 자기의 일방적인 생각보다는 비판적이고 거침없는 의견을 듣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런 분들도 자신이 놓친 중요한 정보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감사합니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