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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 어른 그리고 운명

by 피터팬의 소풍 2024. 9.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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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한라산

저의 장인 어른은 고향이 황해도 해주입니다. 13살 되던 해에 6/25 전쟁이 터져서 장인 어른의 부모님과 함께 남쪽 지방인 군산으로 피난을 오셨습니다. 북한의 동쪽이 고향인 분들은 대체로 부산이나 경상도 지방으로 정착을 하신분들이 많은 것 같고, 북한의 서쪽인 해주나 개성같은 곳이 고향인 분들은 남한의 서쪽 지방에 정착을 하신듯 합니다. 지금은 군산시에서 재해위험지역이라고 해서 깨끗히 정비를 해서 없어진 동네가 있습니다. 해망동 말랭이 동네와 월명동과 신흥등이 그랬습니다. 지금도 월명동 쪽에는 말랭이 동네가 있어서 관광지로 개발이 되었습니다. 예전에 해망동과 신흥동 일대는 북에서 내려온 실향민들이 정착한 분들이 많이 살았었습니다. 실향민 대부분이 그렇듯 매우 근검하고 작은 것 하나도 대충 넘어가는 법이 없었습니다. 저희 장인 어른도 집요할 정도로 꼼꼼하고 절약이 몸에 밴 분이었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아무것도 없이 타향살이를 시작하셨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없이 살아오셨습니다. 

 

장인 어른은 그 뒤로 군산에 정착해서 장모님을 만나 결혼도 하고 자녀 셋을 두었습니다. 가족들 모두가 피난을 와서 다섯 남매 형제들 모두 군산에 정착해서 살아오셨습니다. 경제적인 능력도 있으셔서 형제들을 거두고 자녀들도 남부럽지 않게 키우셨습니다. 남자 형제 셋은 동생들임에도 불구하고 먼저 영면에 드셨었습니다. 남은 여자 형제 둘과 아버님이 남았었는데, 지난주 장인 어른이 별세하셨습니다. 

 

3년 전까지만 해도 정정하셔서 군산의 등산 모임에서 산에도 자주 다니시고, 매일매일 군산 한 가운데에 있는 월명공원을 2시간 씩 돌으셨습니다. 그러다가 파킨스 병과 치매가 오셨고, 전형적인 치매 증상이 시작되었습니다. 가족들이 보기에는 정신적으로 과거와 현재를 왔다갔다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전쟁이 났다고 갑자기 짐을 꾸리시기도 하고, 빨리 떠나야 한다면서 집을 나서는 일도 잦았습니다. 급기야 지난해부터는 거동도 못하시더니 혼자서 몸을 가누지도 못하셨습니다. 

 

 

아직도 생각이 납니다. 휴일날 시간이 나면 장인 어른과 장모님을 모시고 여행을 다니던 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아쉬움과 불안한 생각에 조금이라도 움직이실 수 있을 때 근처 공원이라도 산책 하던 일, 평소 좋아하시던 식당에 가서 잡숫고 싶던 음식을 같이 먹던 일, 딸래미를 어릴 적에 자전거를 타고 시장에도 가고 공원에도 가던 기억 등등........

 

친어머니를 보내고 가슴이 무너지는 경험을 했지만, 같이 시간을 보낸 장인 어른도 마음이 아프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부디 편안한 곳에서 영면에 드시길...... 그리고 종교적인 믿음 대로 환생하시길.......  세상을 마음껏 날아다니는 멋진 새로 환생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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