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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발 하라리의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요약, 전체 감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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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전체의 내용은 21세기에 다가올 인류의 위기는 기술적, 환경적인 요인이고 그 위기를 극복하는 것은 결국엔 인류 구성원 각 개인이라고 설파하고 있습니다. 지금 현재 우리 인류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오늘날 우리가 직면할 최대의 도전과 선택은 무엇인가? 그리고 사라지는 일자리와 기술변화에 대응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유발 하라리는 이런 질문에 우리가 지나온 역사를 통해 민족, 종교의 진실과 허구를 이야기하며 진정으로 우리가 가져야하는 정체성의 실체에 대해서 이 책을 통해 이야기합니다.

  다소 개인과 동떨어진 포괄적인 내용으로 생각될지 모르는 주제이지만, 다가올 미래인류 또는 각 개인이 맞닦뜨려할 내용으로 보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를 준비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겠지요. 따라서 인류나 개인이나 고도로 발전된 기술이 준비가 된다면 유토피아가 될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한 다면 디스토피아를 맞이 할 수도 있다는 내용입니다.

  이 책은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의 업그레이 된 후속작으로 봐도 될 것 같습니다. 

 

  내용이 길기 때문에 시간이 없으신 분들은 굵은 글만 읽어보세요. 

  책은 크게 1부에서 5부까지의 목차로 구성되어 있으며 인류가 맞닥뜨린 신의 영역을 넘어서는 21세기 과학기술혁명시대에 대한 통찰과 변화되어 갈 미래와 인류와의 관계, 그 속에서 개인인 는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정체성에 대해서 생각하게 합니다.

 

1부 기술적 도전

2부 정치적 도전

3부 절망과 희망

4부 진실

5부 회복탄력성

 

 

서론

  먼저 서문에 이 책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내용을 간단히 소개하고 있습니다. 요즘 우리가 가장 많이 듣는 말들이 있습니다. 4차 산업혁명, 인공지능, 자동화, 자율주행, 빅데이터, 알고리즘 등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본 이야기입니다. 유발 하라리는 자신이 역사학자이지만 젊은 학자로서 미래에 대한 탐구와 학습도 놀라울 정도로 박식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가진 역사지식을 바탕으로 앞으로 벌어질 인류가 단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미래와 정치적 사회적 영향과 그에 대응해 우리가 배워야 할 것과 당장 무엇을 해야할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초점은 시사 현안과 인간 사회가 당면한 미래에 있다. 바로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최대의 도전과 선택은 무엇인가? 우리는 무엇에 관심을 가져야 할까? 우리 아이들에는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9p)

 

 

1부 기술적 도전

 

  조금이라도 4차 산업혁명에 관한 지식을 접한 분들은 아시겠지만, 그 영향력은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의 것이 될 것이라고 많은 학자들과 경제인들이 말하고 있습니다. 유발 하라리 또한 신을 능가하는 기술이 우리 인류에게 미칠 영향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기술 혁명은 조만간 수십억 인간을 고용시장에서 몰아내고 막대한 규모의 새로운 무용(無用)계급을 만들어 낼지 모른다. 이는 현존하는 이데올로기는 모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는 사회적, 정치적 격변으로 이어질 것이다. 기술과 이데올로기에 관한 모든 이야기는 대단히 추상적이고 멀게 들릴 수 있다. 하지만 대량실직혹은 개인실업이라는 배우 현실적인 전망 앞에서는 아무도 무관심한 상태로 있을 수 없다.(42p)

  이러한 4차 산업혁명의 변화에 대해 아직 시기상조 생각하시는 분들이 아직도 많습니다. 하지만 당장 자율주행자동차가 코앞에 와 있고, 사물인터넷과 인공지능이 기술적으로 연결이 된다면 당장 운전직에 종사하는 사람들부터 실업자가 됩니다. 또한 최근 신규 공장을 건설하는 곳은 많은 곳이 자동화로 설비가 구축되기 때문에 해당 지역 부동산 업자들은 생각보다 적은 유입인구에 당황하기도 합니다. 더 무서운 것은 시간이 갈수록 기술은 빠르게 발전되어 인간의 생명기술까지 발전되고 정보기술과 합해지다면, 한 국가나 단체의 리더가 사회 구성원 각각의 생각이나 감정까지도 통제하는 세상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시기상조라고 말하는 분들은 아직도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어 보입니다.

  최근 대한민국도 대선을 앞두고 여러 정치인들이 서로가 자신의 정책에 대해 희망적인 메세지만 대중들에게 던져주는데요.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력이 있는 정치인들조차 지금 세상이 어떻게 변해가는지 전혀 감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자신이 영향력있는 리더라고 생각된다면 시기상조라는 말을 앵무새처럼 떠들지 말고, 한 번쯤은 미래산업에 대해 알아보고 지식인들의 소리를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조만간 권위는 다시 이동할지도 모른다. 이번에는 인간에게서 알고리즘으로 말이다. 과거의 신적 권위를 종교적 신화로 정당화한 것처럼 인간의 권위를 정당화 한 것을 자유주의 이야기였다. 따라서 다가오는 기술혁명은 빅데이터 알고리즘의 권위를 정당화하는 과정에서 바로 개인의 자유라는 기반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85p)

  조지오웰의 소설 <1984>을 보면 빅 브라더라가 지켜보고 있다.”라는 말이 자주 나옵니다. 도시의 거리, , 심지어는 공원이나 숲에서도 주인공이 속한 오세아니라라는 국가 전체 구성원의 행동 하나하나 얼굴 표정까지 감시합니다. 조지 오웰을 고도로 발전된 세상에서 통제된 인간 구성원의 삶을 이야기 하고 있는데요.

  유발 하라리 또한 미래 기술은 각 개인의 감정, 욕망, 선택까지도 데이터에 의존하게 된다면 자유주의의 근본인 인간의 자유또한 통제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국가의 기관이나 단체의 리더가 인간의 마음까지 해킹해서 조작하는 기술을 얻게 된다면 더 이상 자유는 자유가 아닌 통제된 자유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통제된 자유는 더 이상 자유가 아닌 셈이지요.

  그 예는 지금도 조금씩 우리가 가지고 있는 스마트폰을 통해 내 정보가 누군가에게 상품이 되어 가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유튜브 속 알고리즘으로 내가 검색한 데이터로 원하는 영상을 보여주고, 내가 검색한 상품에 대한 관련 상품 또한 알고리즘을 통해 각 어플 광고에 띄워 주기도 합니다. 그것뿐인가요? 음식점을 가면 맛은 어땠는지, 여행지에 가면 관련시설이나 만족도는 어땠는지에 대한 알고리즘이 우리를 따라다닙니다.

 

  위험은 살인 기계에 국한 되지 않는다. 감시체계도 똑같이 위험하다. 선한 정부의 손안에만 있다면야 감시 알고리즘은 인류에게 최선의 선물이 될 수 도 있다. 하지만 동일한 빅데이터 알고리즘이 빅브라더의 힘으로 사용될 수도 잇다. 그럴경우 모든 개인이 끊임없이 관찰당하는 오웰적인 감시체제에서 살게 될 수도 있다.(111p)

  쉽게 생각해서 중국 공산당이나 북한의 김정은 체제에서 위와 같은 기술적 통제가 가능하다면 각 개인의 삶은 어떠할까요. 상상만해도 무서운 세상이 아닐까싶습니다. 그렇다고 민주국가에서도 그러한 독제체게가 없으리라고는 지나온 역사를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정치인이든 비도덕적이고 자기 개인의 우월주의적인 정치이념을 가진 사람이라면 중국이나 북한과도 다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민주주의는 근본적으로 새로운 형태로 재탄생 해야 될거라 생각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은 국가나 기업에 의해 디지털 독재안에서 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빅테이터 알고리즘은 자유를 없앨 수 있는 것과 같이 유례없는 최고의 불평등 사회를 만들 수도 있다. 모든 부와 권력은 극소수 엘리트 손에 집중되는 반면, 대다수 사람들은 착취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보다 훨씬 나쁜 처지에 놓일 수 있다. 바로 사회와의 관련성을 잃는 것이다.(122p)

  다시 말해 기술적 독점과, 데이터의 독점, 경제적 독점을 할 수 있는 상위 계층은 자신들만의 문명 내부로 모여들면서 자신들만의 영역을 구축하고, 그들로부터 소외된 하층민들, 즉 야만인들로 전락한 사람들은 격리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 또한 생명기술과 생체기술의 독점은 기술적으로 우성 유전자와 결합한 슈퍼휴면의 탄생과 같은 인간인데도 다른 종으로 분류 될 수 있다는 무서운 가정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이를 규제하고 통제 할 수 있을까요.

  데이터 소유를 어떻게 규제할 것인가? 이것이야말로 우리시대의 가장 중요한 정치적 질문일 수도 있다. 이 질문에 조만간 답하지 못하면 우리의 사회정치적 시스템은 붕괴할 수도 있다. 사람들은 이미 다가오는 대변동을 감지하고 있다. 전 세계 시민들이 10년 전만 해도 불가항력으로 보였던 자유주의 이야기에 대한 믿음을 잃어가는 이유도 아마 이 때문일 것이다.(134p)

  누구도 쉽게 해결책을 찾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다만 이 주제에 대해서는 사회 구성원을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력 있는 정치인들이 더 귀담아 들어야 할 이야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 문제는 학자가 문제를 제시했지만, 결국은 현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인류가 같이 해결해 나가야 할 문제로 보입니다.

 

 

 

2부 정치적 도전

 

  정보기술과 생명기술의 융합은 핵심적인 근대 가치인 자유와 평등을 위협한다. 기술적 도전을 해결하려면 지구 차원의 협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민족주의와 종교, 문화가 인류를 적대적인 진영들로 나누고 지구차원의 협력을 대단히 어렵게 만든다.

  2부에서는 분명히 전 지구적인 협력이 필요한데도 정작 세계는 종교, 문화, 민족, 이데올로기적인 갈등으로 쉽게 해결 되기 어렵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현 시대에 각 이념들이 갖고 있는 문제는 무엇이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대통합의 방법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는 섹터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기술적 대변혁에 대한 전 인류의 대타협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는데요. 그렇지만 세계 각 민족, 종교는 서로의 우월성을 주장하며 전 지구적 협력은 어렵다고 주장합니다.

  문제는 선의의 애국심이 국수주의적 초민족주의로 변질될 때 일어난다. 내 민족은 독특하다-사실 모든 민족이 그렇다-고 믿는 차원을 넘어, 내 민족은 다른 어떤 민족보다 우월하고, 내 모든 충성을 바쳐야 할 대상이며, 그 외에는 다른 누구에게도 내가 져야 할 중요한 의무는 없다고 느끼기 시작할 수 있다. 이것은 폭력적 갈등의 비옥한 토양이 된다. 세대를 거치면서 민족주의에 쏟아진 기본 요지는 그것이 전쟁으로 나아갔다는 점이다.(175p)

  저자는 이 글에서 모든 인간이 더블어 살 수 있는 세계를 만들것인가, 아니면 암흑시대로 빠져들 것인가?’라고 묻고 있습니다. 분명 해결책은 있어보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아보입니다. 우선 당장 우리 주변국인 중국과 일본을 포함한 강대국들을 보더라도 유발 하라리가 생각하는 유토피아는 멀어보이기만 합니다.

  중국은 타국의 문화에 대해 자국의 것이라고 주장하는가 하면, 일본은 역사적 사실이 분명한데도 전범국이 아니고 전쟁피해국인것처럼 역사를 왜곡하고 있습니다. 더하여 주변국의 영토까지 자신들의 땅이라며 억지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근래에는 미국의 아프카니스탄 철수로 인한 탈레반의 점령과 미얀마 사태, 푸틴의 독재와 시리아 내전 등 민족적, 종교적 우월감을 내세운 민족주의자들로 인해 끊임없는 분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어느 한 지도자의 자칫 오판으로 인한 전쟁의 위험 또한 도사리고 있습니다. 또한 인간의 탐욕으로 인한 산업혁명 과정에서 수많은 화석연료 사용으로 생태학적으로도 엄청난 양의 쓰레기와 독성물질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이는 수만년 동안 형성된 섬세한 생태학적 균형을 우리가 무수히 많은 방식으로 파괴했다는 사실조차 우리는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최근의 기후변화는 직접적으로 인류의 삶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강대국이라고 자평하는 지도자들은 자국의 이익에 반하면 직접적인 위협을 눈으로 확인하는데도 애써 외면하고 자신들과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유발 하라리는 근래 가장 큰 인류의 재앙이었던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보다 더한 재앙이 다른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인류는 이제 최소한 그런 적수 셋 -핵 전쟁, 기후변화, 기술적 파괴-을 앞에 두고 있다 이런 공동의 위협에도 인류가 특정한 민족주의적 충성을 다른 모든 것 위에 두기로 한다면 결과는 1914년과 1939년보다 훨씬 나쁠 수 있다.(194p)

 

 

 

3부 절망과 희망

 

  우리 앞의 도전들은 전례 없는 것이고 서로의 견해차도 극심하지만, 인류는 그것을 전화위복으로 삼을 수 있다. 우리의 두려움을 잘 제어하고 자신들의 견해에 좀 더 겸허할 수만 있다면.

 

  앞서 기술적 도전과 민족적, 종교적 우월주의는 인류의 미래를 위협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잘못된 인간의 어리석은 오판은 전쟁과 조그만한 분쟁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인류는 자신들의 조그만 아집과 교만을 잠재우고 전 인류가 같이 미래를 안정적으로 설계를 한다면 평화적인 미래는 분명 존재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어리석음을 치유하는 한 가지 해법이 있다면 그것은 겸허함이다. 민족과 종교, 문화간의 긴장이 악화되는 원인은 나의 민족, 나의 종교, 나의 문화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하며, 따라서 나의 이익이 다른 누구의 이익이나 전체인류의 이익보다 앞서야 한다는 자만심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우리는 민족과 종교와 문화가 세계에서 차지하는 실제 위치를 보다 현실적이면서도 겸허하게 만들 수 있을까?(270p)

  세상 모든 지도자들이나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삶과 경험에 비추어 자신의 가치관을 세우고 자기 우월적 사고방식이 내재되어 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게 어릴 적부터 영재나 수재로 자라났다면 더욱 다른 사람과 타협하기는 싫어하며 자기 우월주의적 사고에 빠지게 된다면 더욱 문제가 될 수 있는데요. 이런 사람일수록 굳건한 자기신념을 꺽지 못하고 겸허해지기란 쉽지 않을 것입니다. 더 나아가 민족적으로 우월감으로 다른 민족이나 종교를 탄압하는데도 도덕적 문제의식이 없기 때문에 아무런 죄의식 없이 오판을 할 수도 있겠지요.

  사람이 겸허함을 갖는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세상은 언제나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이 있을 수 있고, 내가 내 민족의 우월성이 있는 만큼 상대 민족의 우월성도 동시에 존재한다는 생각을 인정할 때 만들어진다고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나만의 신념이 때로는 다른 사람이나 다른 민족한테는 자신만과 무지로 보일 수 있다는 생각이 중요해 보입니다.

  그래서 유발 하라리는 자신의 자존심과 신념을 내세우기보다 자신의 무지를 인정해 보라고 권고합니다.

  우리는 지금 생명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시기를 맞고 있다. 이런 때 나는 개인적으로 자신의 무오류성을 주장하는 사람보다 무지를 인정하는 사람을 더 신뢰할 것이다. 만약 자신의 종교나 이데올로기나 세계관이 세계를 이끌기를 바란다면 내가 던지고 싶은 첫 번째 질문은 이것이다. “당신의 종교, 이데올로기, 세계관이 저지른 가장 큰 실수는 무엇이었나요? 무엇을 잘못했지요?” 아무런 심각한 잘못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나는 당신을 신뢰하지 않을 것이다.(322p)

  최소한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심사숙고 해봐야 할 질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꼭 리더가 아니더라도 한 개인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 자신에게 질문을 해봐도 좋은 질문입니다. 역사 속에서 오판으로 인한 전쟁도 내전도 어쩌면 어느 한 사람의 아집과 어리석음 때문일수도 있으니까요.

 

 

 

4부 진실

 

  지금 세계가 직면한 난제들 때문에 혼란스러움과 무력감을 느낀다면 상황을 제대로 보고 있는 것이다. 세계가 굴러가는 과정은 이제 어느 한 개인이 이해하기에는 너무 복잡해졌다. 세계에 관한 진실을 알고 선전물과 거짓 정보의 희생자가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4부에서는 변화하고 있는 세계에서 우리는 무엇이 진실이고 그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많이 알고 있다고는 하지만 정작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는 어제의 지식은 무용지물이 되고 미래에 대해서는 무지가 됩니다. 정의 또한 과거와 다르게 세상이 바뀌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변합니다.

 

무지

우리는 우리가 꽤 많이 안다고 생각한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아는 게 미미한대도 다른 사람의 머리속에 든 지식을 마치 자신의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세계는 나날이 복잡해지고 있는 반면, 사람들은 세상이 돌아가는 상황에 자신이 얼마나 무지한지 깨닫지 못하고 있다.(326P)

  근래 필자는 조그만 투자를 하면서 재미있는 일이 있었습니다. 꽤 괜찮은 투자처가 있어서 지인에게 알려줬더니 그 투자처에 대해서 알아본 모양입니다. 얼마지나지 않아 지인은 투자이야기를 하면서 필자보다 더 많이 안다고 이야기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뒤로 필자는 관련된 이야기를 더 이상 꺼내지 않았는데요. 그 뒤 지켜본 결과 예전에 자신이 알던 조그만 지식과 주변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자신이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안 것이 투자지식의 전부였습니다. 필자 주변의 한 가지 예이긴 하지만 다른 주변 사람들을 둘러보아도 전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다가 세상은 점점 복잡해지고 오늘 알던 지식이 내일은 역사 속 지식이 되고, 새로운 기술로 인해 다시 무지의 세계로 나가게 되는 것을 하루가 다르게 실감하고 있습니다. 상황이 이런데도 왜 사람들은 자신이 꽤 많이 안다고 생각할까요?

 

  사람들이 자신의 무지를 헤아리는 경우가 드문 이유는 자신과 같은 생각을 가진 친구들로 가득한 반향실과 자기의견을 강화해주는 뉴스피드 안에만 갇혀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믿음은 계속해서 공고해질 뿐 도전받은 일이 거의 없다.(327p)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이유로 확증편향에 빠지지 않나 싶습니다. 더구나 요즘은 스마트폰으로 누구나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일수가 있고, 자신이 원하는 정보는 언제든지 듣고 볼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편향적 믿음은 자신의 울타리 안에 갇힌 무지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잘못된 믿음으로 이루어진 무지는 집단사고로 이어져 불가피하게 진실을 왜곡하기도 합니다.

 

  거대한 권력은 불가피하게 진실을 왜곡한다. 권력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기보다 바꾸는 데 관심이 있다. 손에 망치를 들고 있으면 모든 것이 못처럼 보인다. 수중에 거대한 권력이 있으면 모든 것이 나를 부르는 것만 같다. 어찌어찌해서 당신 자신은 이런 충동을 이겨낸다 해도 주변 사람들이 당신을 가만두지 않는다. 이들은 당신 수중에 망치가 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상기 시킨다.(330p)

  안타깝지만 현실이 그러해보입니다. 그래서 권력자들은 권력의 달콤함과 안일함에 빠져 진정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외면할 때도 있고, 자신의 국민이라는 이름의 집단을 이용해 자신의 탐욕을 채우기도 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정도만 다를뿐이지 어떤 정치 정당이나 정치인도 같습니다. 그래서 권력의 그늘아래 진실은 왜곡되고 허울뿐인 허위 진실이 집단의 눈과 귀를 흐리게 만드는 것을 현실세계에서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도덕과 정의 또한 집단사고와 권력의 그늘아래서 왜곡되거나 소외 될 수 있다고 설파합니다.

  쓰라린 진실은 이제 세계가 우리 수렵채집인의 뇌로 이해하기에는 너무나 복잡해졌다는 사실입니다.

  글로벌 엘리트들은 대화를 주도한다. 그러다보니 그들의 관점은 놓칠수가 없다. 반면에 소외된 집단들은 대개 말이 없다. 그러다보면 그들의 존재마저 잊기 쉽다. 이 모든 게 고의적인 악의가 아니라 순전히 무지에서 생기는 일이다.(340p)

  이 말이 무섭게 들리는 것은 소외된 집단이 기술적, 정치적으로 무용, 무관해지는 것 뿐 아니라 권력을 가지고 있거나 사회적 엘리트들도 어쩌면 자기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고통을 공감하지 못하는 무지에 빠지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정치 엘리트와 권력집단은 자신들만의 매너리즘이나 변화하는 시대에 맞지 않는 신념에 빠져 정작 같은 현생을 살아가야 할 또 다른 집단에 대한 소외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그 또한 무지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유발 하라리는 호모 사피엔스 종으로서 인간은 진실보다 힘을 선호한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세계를 이해하려고 애쓰기보다는 통제하려는 데 훨씬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입니다. 그러면 통제하가 쉬워질 거라는 기대 때문입니다. 따라서 진실이 지배하고 신화는 무시되는 사회를 꿈꾼다면 호모 사피엔스에게서 기대할 것은 거의 없다고 말합니다.

 

 

5부 회복의 탄력성

 

  혼미의 시대 어떻게 살아갈까? 옛 이야기들은 무너지고 그것을 대신할 새 이야기는 아직 등장하지 않았는데.

  지금까지 인류는 전례없는 혁명기에 들어 섰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아는 지식, 상식, 이야기들은 모두 무너져 내리고 있는 반면, 그것들을 대신할 새로운 이야기는 아직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전에 없던 변혁과 불확실성의 미래에 우리 자신과 아이들을 어떻게 대비시켜야 할까를 생각해 봅니다.

 

  옛 말에 무사안일이란 말이 있습니다. 그리고 시대적으로 안정기라고 대표할 수 있는 말 태평성대가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과거에는 내 주변에 전쟁이나 극심한 빈곤에 시달리지 않는 시대라면 이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지난 시대에서 보면 개인들은 정치에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아도 되는 게 태평성대가 이어지는 좋은 시대라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대변혁의 시대에는 그러한 시대적 매너리즘은 시간이 갈수록 소외계층으로 빠지고 권력자들이나 기득권층들의 무관심과 무지로 더욱 그 격차는 심하게 벌어질거란 확인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미래세대는 어떤 준비를 해야하고 어떻게 나를 재설계 해야 할까요?

 

  그런 세계에서도 살아남고 번성하기 위해서는 강한 정신적 탄력성과 풍부한 감정적 균형감이 필요할 것이다. 반복해서 지금 자신이 잘 아는 것 중에서도 어떤 것은 버리고, 그전에는 자신이 몰랐던 것도 편안히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398p)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은 이 변화의 시대에서 자기사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를 인식하는 사람은 극히 소수입니다. 주변을 보아도 스마트폰에 얼굴을 묻고 콘텐츠 회사에서 제공하는 게임과 영상물에 취해 잠자는 시간을 빼고 종일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개인도 문제지만 한 나라의 수장이 되겠다는 분들도 자꾸만 시기상조란 말만 되뇌이고 빠르게 변하는 기술적 변화는 감지하지 못하는 듯 보입니다.

  상황이 어찌됐든 이런 상황을 빨리 인식하는 게 중요하고, 위기가 감지 된다면 무엇이든 나를 시대적 환경에 맞게 객관화하고 변화하는 기술적 환경에도 어렵다고 애써 외면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배우고 익히는 게 개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생존 전략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래 글에서는 더 없이 급박해진 시간이 우리를 더욱 긴장하게 만듭니다.

  너 자신을 알라. 수천년 동안 철학자들과 선구자들은 사람들에게 자신을 알라고 촉구했다. 하지만 이 조언은 21세기에 와서 더없이 다급해 진 것이 되었다. 노자나 소크라테스 시대와 달리 지금 우리 앞에는 위협적인 경쟁자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코카콜라와 아마존, 바이두, 정부 모두 우리를 해킹하기 위해 서로 경쟁하고 있다. 이들의 해킹 대상은 스마트폰도, 컴퓨터도 은행계좌도 아니다. 사실인즉 우리는 지금 인간을 해킹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401p)

  이 얼마나 무서운 세상일까요. 소크라테스는 수천년 전에 세상사람들의 무지를 알리기 위해 세상을 살았지만, 21세기 유발 하라리는 단순히 무지를 아는 것을 떠나 생존의 영역에서 자기 자신을 알라는 충고를 하고 있습니다. 기술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지만 같은 칼이라도 어떤 사람이 잡느냐에 따라 틀리고,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또 달라집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우리가 하나같이 스마트폰에 얼굴을 묻고 있는 상황은 우리가 기술을 통제하는 것인지, 기술이 우리를 통제하는 것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고 이를 냉정하게 판단해서 기술적인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해 애쓰는 것이 지금 시점에서 올바른 판단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어떤 거대한 이야기에 직면했을 때, 그리고 그것이 실체인지 상상인지 알고 싶다면 핵심 질문 중의 하나는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고통을 느낄 수 있는지 묻는 것이다.(464p)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종교인 기독교의 십계명, 불교의 오계를 보면 살인하지 말고, 도둑지하지 말며, 성적인 부정을 저지르지 말고, 남을 속이지 말고, 술에 취하지 말라는 율법이 있습니다. 유발 하라리는 현실에서 허구와 실체를 이야기 할 때 무엇이 진실인가를 생각할 때 각 종교마다도 자기합리와와 확증편향으로 자신이 아닌 타인의 고통은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고 역사를 통해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유럽의 신대륙 정복의 시대를 보면, 기독교 율법중의 하나인 십계명에도 살인을 하지 말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그런데 신대륙에 도착한 정복자들은 아메리카 원주민의 호의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살육을 저지르고 보물들을 빼앗아 가며 원주민 지도자들을 살해했습니다. 또한 그들의 땅을 빼앗아 지금은 세계 최고의 강대국이 되어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불교가 대륙 전반에 전파 된 아시아에서도 같은 불교국가를 침범하여 유럽 정복자들과 같이 살육과 강간, 보물을 빼앗아갔음을 역사를 통해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 역시 종교 자체는 좋으나 종교에 담긴 진실을 왜곡하고 자기 합리와나 인지부조화로 자신들 외에 다른 사람의 진실과 고통을 외면한다면 우리 인류가 가져야할 공통의 가치관과 정체성은 허구에 불과함을 알 수 있습니다.

 

  유발 하라리는 오늘날에도 수많은 곳에서 자신들이 속한 구성원들의 눈을 속이기 위해 지금도 이러한 독단적인 리더의 행태는 곳곳에서 발생되고 있다고 하며, 그들의 경계하라고 충고합니다.

  그러니 정치인들이 신비로운 용어로 이야기하기 시작할 때는 늘 경계해야한다. 그들은 이해하기 힘든 거창한 말 속에 숨기는 방법으로 고통을 위장하고 변명하려 들지 모른다. 특히 다음 네 단어를 조심해야 한다. 희생, 영원, 순수, 구원. 이 중 어떤 단어라도 듣게 되면 경보음을 울려야 한다. “그들의 희생이 영원한 우리 민족의 순수함을 구원할 것이라는 말을 지도자가 상습적으로 해대는 나라에 살고 있다면 각오해야 한다. 정신을 온전히 보존하려면 그런 지도자의 주문은 늘 현실의 용어로 바꿔 이해해야 한다. 즉 병사는 고뇌 속에서 울고, 여성은 얻어 맞고 야만적인 취급을 당하며, 아이는 두려움 속에 떨게 될 것이라는 뜻으로 말이다.(466p)

 

 

 

전체 감상평

 

  우선 책 전체의 내용은 21세기에 다가올 인류의 위기는 기술적, 환경적인 요인이고 그 위기를 극복하는 것은 결국엔 인류 구성원 각 개인이라고 설파하고 있습니다. 지금 현재 우리 인류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오늘날 우리가 직면할 최대의 도전과 선택은 무엇인가? 그리고 사라지는 일자리와 기술변화에 대응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유발 하라리는 이런 질문에 우리가 지나온 역사를 통해 민족, 종교의 진실과 허구를 이야기하며 진정으로 우리가 가져야하는 정체성의 실체에 대해서 이 책을 통해 이야기합니다.

  조금이라도 미래산업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대체로 두 개의 의견으로 나뉩니다. 하나는 자동화와 인공지능으로 인해 사람이 노동을 통한 일자리는 점점 줄어들어 잉여인간이 남아 돌 것이라는 주장과, 새로운 기술 발전으로 인해 인류는 그에 적응하고 지나온 과거보다 높은 수준의 생활과 번영을 누릴 것으로 예측하는 주장입니다.

  아직 4차 산업혁명의 초입단계이긴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전자의 의견이 힘이 실리는 듯 보입니다. 당장에 주변에 신설 공장들은 자동화가 되어서 건설되고 있고, 기존에 가동중인 공장들도 자동화가 되고 있어 기존에 인력들도 남아도는 상황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갈수록 우리가 전문직이라고 생각했던 판사, 회계사, 의사, 작곡가 심지어는 소설가의 영역까지도 인공지능이 인간의 창조력까지 넘어서 일자리를 파괴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수십년 후 먼 미래의 일이 아닌 당장 지금도 자동화가 시작되고 있고, 5년 뒤부터는 단순노동이나 자동차 운전같은 영역부터 현실화가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가 지금은 누구나 느낄 수 없는 정도로 일반화 되지 않아서 미래 산업에 관해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어느 정도 위협이 될지는 같이 공감하지 못하기 때문에 위기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심지어는 국가의 지도자가 되겠다는 정치인들까지도 시기상조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쉽게도 이 책에서 유발 하라리는 우리에 명확한 미래에 대한 비전은 제시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다가올 미래의 기술과 환경적 변화는 인간에게 결코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생존의 관점에서 미래를 바라본다면 무엇인가는 해야 되고 그것은 자시 자신의 실체를 제대로 탐구하고, 자기 자신의 고통이 있으면 타인의 고통도 공감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주제가 명상으로 책을 마무리 하고 있는데요.

  우주와 삶의 의미, 자신의 정체성에 관한 진실을 알고 싶은가. 가장 좋은 출발점은 먼저 고통을 관찰하고 그것이 무엇인지 탐구하는 것이다.(466p)

  다소 주제와 동떨어진 이야기 같지만 사라진 일자리는 미래세대에게는 우리가 살아가는 공동체에서 무용(無用)과 무관(無觀)한 인간이 된다면 인간이 살아감에 갖는 철학적 주제를 생각하게 된다고 합니다. ‘나는 이 세상에서 무엇이고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원론적인 주제로 돌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저자는 이 문제에 대한 분명한 답은 모든 인류가 공통적인 가치관이나 정체성을 가지고 함께 해결해 나가야 할 거라고 주장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민족적, 종교적, 문화적 우월감으로 인한 분쟁과 전쟁 때문이지요.

  민족적으로는 각 민족의 신화에서 보면 알 수 있듯이 각 민족마다 인류 탄생의 원조는 자신들의 조상이라고 주장하며, 종교적으로는 어떤 종교가 되었든 자신들의 신이 이 세상의 절대자나 유일신이라고 주장하며 선교를 하거나 교화를 합니다. 저자는 이 문제들의 근원을 찾아가다보면 모든 게 자신들의 단체나 구성원을 이끌어가기 위한 실체없는 허구라고 주장합니다.

  유발 하라리는 또한 이런 논쟁을 피하고자 자신의 나라 대부분 사람들이 갖고 있는 종교 유대교를 중심으로 설명을 합니다. 유대교 또한 자신들이 이 세상의 유일신이며 유대교로 인해 다른 종교가 파생되어 갔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저자는 이 또한 허구일 뿐이며 진실을 왜곡해서 자신들의 인지부조화로 인한 확증편향적 심리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책에서 우리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공통의 해결책은 제시하지 못합니다. 다소 아쉽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민족적, 종교적으로 어느 지도자가 되었든 그 사람 자체도 개인일 뿐이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렇게 생각했을 때 한 개인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깊은 성찰이 필요하고, 내가 겪는 고통 또한 내가 아닌 타인도 똑같이 느낀다는 것을 공감하는 것이 미래 인류에게는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개인의 작은 힘이 모여 또 세상을 바꿀수도 있겠지요. 그런 점에서 이 책에서 제시하는 겸허함이라는 말이 더 크게 다가옵니다.

  저자는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고 겸손해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어느 지도자나 권력자가 되었든 단체를 이끌기 위해서는 리더이기 전에 개인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저자가 말하는 자신의 무지를 인정한 것이란 말이 더 강하게 다가옵니다. 생각해보면 자신의 무지로 인해 타인이 고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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