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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독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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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 카뮈의 <페스트>


코로나 사태가 길어지면서 이제는 방역생활이 일상이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그래서 페스트의 내용도 우리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되는데요. 그럼에도 이 소설을 통해 우리가 재앙을 대하는 자세와 누군가의 죽음을 통해 한 사람의 삶과 인류의 존재의미를 생각해 봅니다.

감상문이 짧지 않지만 고전소설 한 권을 짧게 읽는다고 읽어 주세요. 그리고 과거 알베르 카뮈가 생각하는 재앙과 우리가 현실에서 겪고 있는 치료되지 않는 재앙에 대해 생각해 보세요.

장르: 고전소설

지은이: 알베르 카뮈

 

 

등장인물

베르나르 리외: 이 소설의 주인공이자 서술자로 등장함. 직업은 의사이고 아내가 병으로 시 외각으로 요양을 보낸 상태에서도 끝까지 의사로서의 책임을 다하려고 함.

장 타루: 스페인 무용수로 오랑에 머물다가 페스트가 창궐하는 것을 보고 보건대를 만들어서 리외를 포함한 주변 사람들과 페스트에 맞서게 됨. 오랑시에 머물면서 일기를 쓰듯 메모하며 일상을 기록하고 페스트가 창궐하기 시작하자 자신 주변의 상황의 모든 것을 기록함.

파늘루 신부: 페스트 창궐이 인간이 신에게 대항한 결과로 심판받는 결과라고 주장하며 신에게 반성할 기회라고 설교하며 회계하라고 함. 타루의 보건대에 합류하게 되고 신부 역시 페스트로 사망하게 됨.

그랑: 오랑시의 비정규직 공무원으로 페스트의 감염자 확인 및 사망자를 집계하고 보건대를 돕게 됨.

랑베르: 프랑스의 기자로서 오랑 시에 취재차 왔다가 페스트로 도시가 봉쇄 되면서 어쩔 수 없이 주저않게 됨. 그러나 자신은 오랑 사람이 아니므로 폐쇠되 오랑을 탈출하려고 함. 그러나 탈출 순간에 마음이 변하여 보건대를 돕게 됨.

코타르: 시의 경계지역에서 물자를 밀거래하는 암거래상으로 페스트로 혼란한 틈을 타서 자기 이득을 취하는 사람. 랑베르의 탈출을 돕기도 하지만 페스트가 물러가면서 돈을 벌지 못하게 디자 총을 난사하면서 사람들을 다치게 하고 체포됨.

 

 

페스트: 소설을 이해하기 위해 페스트에 대한 자료를 정리해 보았습니다.

  페스트는 14세기부터 17세기까지 유럽에서 유행한 전염성 질병입니다. 환자들의 피부가 검은색으로 변한다고 해서 흑사병이라고도 불리기도 했습니다. 전염성이 매우 강하고 빠르게 나타나 감염 후 열흘 이내 증상이 나타나고 곧바로 죽음으로 이어지게 하는 무서운 질병입니다. 또한 환자나 사망한 사람들의 모습 또한 매우 끔찍해서 유럽 전체를 공포로 몰아넣었습니다. 페스트가 창궐한 300여년 동안 유럽의 인구는 4분의 1이라는 엄청난 인명피해를 입게 됩니다.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병의 원인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전염경로도 알지 못했고, 치료 방법 또한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많은 유럽인들은 기독교와 천주교를 중심으로 한 종교를 믿고 있었는데, 페스트 창궐로 인해 더 이상 신이 인간을 지켜주지 못한다는 사고가 퍼져서 종교에 대한 세계관이 깨지게 되기도 합니다.

 

 

줄거리

 

  이야기는 1940년 어느날 알제리의 도시 오랑을 중심으로 시작됩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이자 의사인 리외는 어느날 병원 층계에 피를 토하고 죽어있는 쥐를 발견하게 됩니다. 병원 문앞을 나서며 수위인 미셜 영감에게 쥐를 치워 달라고 하지만, 미셜 영감은 병원에 쥐가 있을 리가 없다면서 누군가의 장난으로 생각합니다. 처음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쥐의 죽음은 오랑시 곳곳에서 대량의 사체가 발견되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페스트의 전조 현상으로 도시 전체에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누군가의 장난으로 시작인 것으로 생각한 미셜 영감은 죽은 쥐를 여러 마리를 손에 들고 리외에게 병원은 청결하게 유지관리가 된다고 말하지만 자신이 리외 앞에서 페스트로 죽는 첫 번째 희생자가 되고 맙니다. 같은 시기에 리외의 주변 사람들도 죽어 나가기 시작합니다.

어느날 리외에게 랑베르라는 프랑스 기자가 찾아와 오랑시의 낙후된 위생 상태를 취재하는데, 리외는 쥐들이 떼죽음을 취재나 하라면서 돌려보냅니다. 또한 오랑시의 공무원인 그랑이 찾아와 코타르라는 남자가 목을 매어 자살하려고 하는 것을 발견하고 리외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또 다른 한 남자 장 타루는 스페인 무용수로서 오랑에 와 있는데 일상 전체를 자신의 메모장에 기록을 합니다.

 

  상황의 심각성을 알게 된 리외는 시 당국에 긴급회의를 소집할 것을 요청하지만, 시가 혼란에 빠질 것을 염려한 시 당국은 미온적인 대처를 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시당국 관계자들은 병이 점점 퍼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사망하게 되자 도시를 폐쇠하기에 이르게 됩니다. 전형적인 탁상행적과 매너리즘에 빠진 공무원을 볼 수 있습니다. 초기 대응에 실패하는 행정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의 조치에 시민들은 불안함과 우울함에 빠져들기 시작하고 도시는 정적이 감돌기 시작합니다.

  도시가 페쇠되자 기자 랑베르는 자신이 오랑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이라고 하면서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파리로 돌아가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도시 봉쇄를 하게 된 직접적인 역할을 하게 된 리외가 사유서를 써 주면 봉쇄된 도시를 나갈 수 있을 거라고 요청합니다. 하지만 리외는 자신의 직무상의 문제와 법률상의 문제는 별개의 문제라고 말하고 랑베르를 돌려 보냅니다. 랑베르는 결국 봉쇄된 도시에서 시를 통제하고 있는 경비원들과 내통을 하며 암거래를 하고 있는 코타르와 접촉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경비원들을 포섭해서 도시를 탈출할 기회를 엿보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여러 가지 문제로 탈출계획은 지연되게 됩니다.

  한편 랑베르와 같은 호텔에 묵고 있는 장 타루라는 사람이 리외를 찾아와 자원봉사자들을 모아 페스트에 대항하는 보건대를 조직해서 리외를 돕겠다고 합니다. 당연히 리외는 흔쾌히 승낙을 하며 자신도 보건대의 일원이 됩니다. 또 다른 곳 성당에서는 파늘루 신부가 페스트로 불안에 떠는 신도들에게 페스트는 세상의 타락과 신의 믿음에 대한 심판이라고 설교를 하며 사람들을 설교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설교로만 페스트가 진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안 신도들은 더욱 불안에 떨게 됩니다. 결국 파늘루 신부도 보건대에 합류하여 페스트와 맞서게 됩니다. 여름이이 되고 날씨가 더워지자 페스트는 더욱 기승을 부리게 됩니다. 오랑을 빠져 나가려고 애를 쓰던 랑베르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자 그도 보건대에 합류합니다.

  8월과 9월이 지나도 페스트는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오랑 시민들은 무기력의 상태에 빠지는 패닉 상태가 됩니다. 그로 인해 페스트와 싸우는 의료진도 극심한 피로감에 쌓이게 되고 지쳐만 갑니다. 계속된 사람들의 감염 소식이나, 사망소식에도 사람들은 무감각해져가고 이상한 예언설이나 헛소문까지 퍼지게 됩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도 이익을 취하고 있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페스트가 창궐하기 전에 목을 매어 자살하려고 한 코타르입니다. 페스트로 인해 사법 행정력이 무뎌진 틈을 타서 그는 암거래로 높은 이익을 취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는 랑베르와의 대화를 통해 자신은 페스트가 창궐한 지금이 더 살기 좋다고 말하기까지 합니다. 페스트로 인해 사법 행정력이 암거래까지 통제하지 못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랑베르가 보건대 활동을 제안하기도 하지만, 자신은 보건대 같은 활동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고 합니다.

  보건대 활동을 하면서도 기회만 되면 오랑을 빠져 나가려던 랑베르는 마침내 기회가 찾아옵니다. 이제 몸만 빠져나가면 되는 결정적인 기회가 왔지만, 작별인사로 리외와 대화를 하던 중 혼자서 오랑을 빠져나가는 것은 옳지 않다고 판단하고 오랑에 남아 보건대와 함께 페스트와 싸우겠다고 합니다. 자신의 애인과의 사랑도 중요하지만, 자신도 이곳 오랑의 일원이고 더 많은 사람들과 사랑을 나누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느날 리외와 안면이 있던 오랑시의 수사검사인 오통의 어린 아들이 페스트로 사망하게 됩니다. 이 모습을 지켜본 파늘루 신부와 리외는 질병이 신의 경계가 맞느냐며 언쟁을 벌입니다. 파늘루 신부도 곧 보건대에 합류하고 신도들에게 끝까지 페스트와 싸워야 한다고 설교를 하지만, 그도 곧 페스트에 걸려 사망하고 맙니다. 이 부분이 신을 믿던 사람들이 다른 세계관을 갖는 결정정인 역할을 하게 됩니다.

 

  어느날 보건대의 리더라고 할 수 있는 리외와 타루는 시 외각에 있는 수용소를 둘러보고 해수욕을 하며 마음속의 이야기를 나눕니다. 이 자리에서 장 타루는 자신의 집과 성장과정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타루에게 아버지는 검사라는 직업과 평범하며 아들에게 다정한 사람이고 어머니는 자상하신 분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아버지는 타루에게 자기 직업을 보여주고 어떤 일을 하는지 법정에 데려와 그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검사인 아버지는 불쌍하고 불안해하는 죄인에게 사형 선고를 받게 하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아 집을 가출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인간 사회이 죄에 대한 법의 심판을 한다고는 하지만 타루의 눈에는 아버지가 또 다른 살인자로 보인 것입니다.

  얼마 후 시 공무원인 그랑마져도 페스트에 걸리지만 다행히 사망에까지는 이르지 않습니다. 겨울이 다가오면서 페스트의 기세도 서서히 누그러들고 떼죽음을 당하고 자취를 감췄던 쥐들이 다시 눈에 띄기 시작합니다. 사망자들이 줄게 되면서 시민들은 다시 활기를 되찾아갑니다. 한편 페스트 창궐로 이득을 취하던 코타르는 우울해 하면서 자신의 집에서 총을 난사하다가 이웃들을 다치게 하고 체포됩니다. 전염병이 누그러지고 사람들은 활기를 되찾지만 안타깝게도 리외의 절친인 타루는 페스트에 걸려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같은 시기에 다른 도시에서 요양 중이던 리외의 아내도 끝내 사망했다는 소식을 전해 받게 됩니다.

 

  사람들은 페스트가 종료됐다고 축제를 하지만, 페스트의 종식을 바라보는 리외는 언제고 페스트와 같은 질병이 다시 발생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감상평

 

  책을 읽고서 전염성이 강하고 폐사율이 높은 질병이 지금의 코로나19와 너무 많이 닮은 상황이라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다른 점이라면 페스트가 10일 이내로 치사률이 더 높아 정말 사랑하고 건강한 가족들을 단 며칠 만에 운명을 달리해야하는 안타까운 상황을 보았습니다. 소설속의 수사검사 오통씨의 아들이 엄마와 아빠가 지켜보는 가운데 격리되어야 했고, 아들의 죽음마저 직접보지 못하고 의사를 통해서 전해 들어야만 했던 부모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요.

 

  전반적으로 상황의 이해는 지금과 너무 닮아 있어서 따로 상황의 정황보다 독자로서 느낀점을 정리해보는 게 좋을 듯 합니다. 네 가지로 정리하면 오랑 시민들의 페스트에 대한 단합된 저항, <이방인>에서처럼 본인의 죽음이 아닌 3자가 바라본 죽음의 의미, 리외를 통해 본 페스트의 의미, 그리고 페스트처럼 재앙이 왔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자세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첫 번째, 오랑 시민들의 페스트에 대한 단합된 저항. 평범했던 각자의 일상의 사람들이 페스트의 창궐로 인해 오랑시가 혼란과 공황 상태를 거치면서 각자가 아니라 모두가 페스트에 대한 대응을 합니다. 처음에는 리외가 시 공무원인 그랑으로 질병에 대한 대응을 시작하고 다시 오랑시 관계자들과 회합을 통해 페스트에 대한 대책을 논의하기 시작합니다. 이 때 보여준 오랑시장의 우유부단함은 지난 정부 메르스 사태 때 보여준 안일하고 우유부단함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 했습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개개인이 우리 사회를 보여주는 각계각층의 대표인물로 묘사되는 듯하는 것도 흥미로웠습니다. 페스트에 직접적으로 대응해야하는 의료계의 대표 인물 리외, 시 공무원의 대표적인 인물 그랑, 언론사를 대표하는 랑베르 기자, 종교계를 대표하는 파늘루 신부, 스페인의 무용수로서 보건대를 조직하는 문화계의 대표 장 타루 그리고 혼란의 틈을 타서 자기 이익을 챙기는 기업이나 상인을 대표하는 코타르까지 인물설정이 작가의 역량을 보여주는 듯 합니다.

  등장인물 중 예외적인 인물인 코타르는 페스트가 창궐해서 혼란해진 틈을 타서 암거래를 하면서 자기이익을 챙기는 인물로 묘사됩니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페스트에 대항하고 있는데 코타르 만큼은 반대로 행동하고 있다는 점이지요. 저는 이 인물을 볼 때 요즘 잘못된 종교관으로 혼란의 틈을 타서 사회를 어지럽히고 있는 종교단체 지도자가 생각났습니다. 종교와는 아무 관계가 없는 인물이지만, 사회가 혼란한 틈을 타서 자신의 이익과 목적을 달성하려는 의도만 보였기 때문입니다. 종교인이 생각난 것은 종교도 결국은 세상 사람들과 삶을 같이 하고 같은 한 세상을 살아가는 인류임을 생각할 때, 그 순수한 목적이 더 빛을 밝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종교단체의 독단적인 행동은 종교행사를 넘어 정치적, 금전적 이해관계에 깊게 관여했다고 볼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순수한 목적과 신앙심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종교인들에게도 큰 민폐가 아닌가 싶습니다. 최소한 이 소설속의 파늘루 신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 모두에게 존경받고 신뢰받는 종교인의 행동이 아닐까싶습니다.

  또 하나 주목해 볼 것은 각자의 페스트가 창궐하기 전에는 평범했던 이해관계에 따라 각자의 직업과 직분에 충실하지만 결국에는 모든 것을 초월해서 각자의 위치에 선 사람들이 하나의 목표를 위해 힘을 합친다는 것입니다. 상황이 다르긴 하지만 알베르카뮈의 앞선 작품 <이방인>에서 볼 수 있듯이 매너리즘에 빠진 판사, 검사, 언론인이 뫼르소에 대한 죄의 본질을 따지지 않고, 각자의 역할에만 충실했습니다. 자칫 이 소설 <페스트>에서도 각자의 역할에 충실 하는 의사, 신부, 언론인이 될 수도 있었지만, 페스트의 위기 앞에서 하나로 모여지고, 나 혼자보다는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서 모두가 힘을 모아 대응해 나가는 과정은 현재의 성실한 대한민국의 평범지만 단합된 국민들을 보는 듯 했습니다.

  현재 우리인류는 코로나 사태 속에서 작게는 각 개인의 이해관계, 크게 보면 어떤 조직과 조직의 이해관계 또는 국가와 국가의 이해관계에서 많은 대립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코로나 사태가 그 국면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시험대라고도 생각되는데요. 이런 위기 상황이 길어지다 보니까 극단적으로 개인주의가 생겨나고, 국가는 서로의 이익을 위해 무역전쟁도 불사하고 있습니다. 자칫 지도자들의 잘못된 판단이 국가 간 전쟁으로 이어지는 불행한 사태가 올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개인이나 국가나 이 세상은 모두가 같이 살아가야한다는 공동운명체라는 공감대가 형성이 되기를 간절히 바래봅니다.

 

  두 번째, 이 소설 역시도 삶과 죽음에 대해서 깊게 생각하게 합니다. 사람의 삶이란 누구에게나 소중하고 고귀한 것입니다. 그러나 수많은 죽음을 보는 리외는 그 죽음들 앞에서도 적응이 되지 않는 자신의 마음을 밝히기도 합니다. 또한 장 타루는 자신의 성장기에 보았던 검사인 아버지가 사형 선고를 내리는 재판장을 목격하고 심한 충격을 받고 삶의 전환기를 맞이하기도 합니다.

  죽기를 거부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아시나요? 어떤 여자가 죽는 순간에 안 돼!’라고 외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어요? 나는 있습니다. 그때 나는 깨달았어요. 죽음에 익숙해질 수는 없다는 것을요. 그때는 나도 젊어서 내가 세계의 질서 자체를 혐오한다고 생각했지요. 그 후에 한층 더 겸허해지긴 했습니다. 다만, 사람이 죽는 모습을 보는 것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더군요.(153p)

  그래서 리외는 페스트의 수많은 죽음 앞에서도 사람들한테 냉정해 보이지만, 죽음 하나하나가 의사로서의 본분을 잃어버리지 않는 중요한 사명감 같은 것으로 자리 잡지 않았나 싶습니다.

  또한 장 타루는 자신의 어린 시절의 아버지와의 관계를 회상하면서 죽음에 대한 충격적인 과거를 리외와의 대화에서 토로를 합니다. 평소 검사인 아버지는 타루에게 언제나 자상하고 친절한 아버지였고, 철도여행잡지를 보며 여행계획을 세우는 자상한 분이었습니다. 어느날 아버지는 자신이 일하는 자신의 훌륭한 모습을 보여주겠다며 재판장으로 타루를 데려와서 재판장면을 보게 한 것입니다. 아버지의 의도는 아들도 자신의 길로 꿈을 키우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타루는 재판장에서 한 사람의 겁먹어 불안해하는 사형수를 목격하고 아버지는 이 사람에게 사형을 언도하는 또 다른 살인을 목격하게 된 것이지요.

  붉은 법복을 입은 아버지는 호인도 아니고 다정한 사람도 아닌 다른 사람으로 변해 있었어요. 아버지의 입에서는 굉장한 말들이 우글거리고 있다가 뱀처럼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죠. 나는 아버지가 사회의 이름으로 그 남자의 죽음을 요구하고 심지어 목을 자르라고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사실 아버지는 단지 이렇게 말했을 뿐이에요. “이 사람의 머리는 떨어져야 합니다.”(289p)

  청소년기의 장 타루는 아버지가 방법만 다를 뿐 또 다른 방법으로 살인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에 충격을 받습니다. 타루는 이 재판을 목격하고 타루의 아버지는 더 이상 자상하고 다정한 아버지가 아니었습니다. 피의자가 죄가 사실인지 아닌지를 떠나서 평소의 다른 아버지의 다른 모습과 사형을 받는 불안한 죄수의 모습이 가치관에 큰 혼란을 가져오고 결국에는 가출을 하고 맙니다. 결국 죽음에 대한 많은 생각과 방황 끝에 무용수로서 삶을 살게 됩니다. 그래서 타루는 소설 마지막에 테스트에 걸려 죽을 때에도 담담하게 죽음을 받아들입니다.

  카뮈의 전작인<이방인>에서는 주관적인 시점에서 죽음을 생각하고 죽음 끝에서 진정한 삶의 의미를 깨닫습니다. 페스트에서는 죽음은 서술자나 등장인물이 3인칭 시점에서 바라본 죽음을 묘사합니다. 이 소설에서도 카뮈의 삶에 대한 가치관이 중요하게 묘사되는 듯합니다. 어떤 이유로든 전쟁이나 재앙 속에서의 수많은 죽음이나, 죄를 지은 죄인한테 사형을 당하는 죄수나 인간의 판단으로 죽음이 정의 되지 않는다는 게 이 소설이 주는 삶과 죽음의 메시지가 아닌가 싶습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다른 사람의 생명을 쉽게 빼앗는 것은 생각해 볼 일입니다. 그게 내손이든 법의 심판이든 전쟁의 명령에 의한 것이든요.

 

  세 번째, 리외를 통해 본 페스트의 의미. 소설 마지막에 봄을 맞이 하며 페스트도 물러갑니다. 그리고 오랑시민들은 드디어 페스트가 물러갔다며 환호를 하고 축제를 합니다. 그러나 의사 리외 만큼은 또 다른 재앙으로 위협받게 될 것을 알고 있습니다.

  도시에서 올라오는 환희 회침을 실제로 들으며, 리외는 그러한 환희가 여전히 위협받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기쁨에 젖어 있는 군중은 모르고 있지만, 책에서 확인할 수 있는 사실, 즉 페스트균은 결코 죽거나 소멸되지 않으며, 수십년 동안 내복에 잠복해 있고 방이나 지하실, 트렁크, 손수건, 낡은 서류 속에서 참을성 있게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그는 알고 있었다. 또한 인간들에게 불행한 교훈을 주기 위해 페스트가 쥐들을 다시 깨우고, 그 쥐들은 어느 행복한 도시로 보내 죽게 할 날이 오리라는 사실도 그는 알고 있었다.260p)

  결국 알베르 카뮈의 소설 속 리외의 예상은 정확히 맞고 있다는 사실이 소름이 끼칠 정도입니다. 근래 우리 인류도 신종플루, 사스, 메르스, 코로나와 같은 질병과 각종 동물들의 질병들이 우리의 평화로운 일상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거기에다가 올해는 코로나 뿐만 아니라 과거 유래가 없는 기후변화로 긴 장마를 보냈고, 세계 이곳저곳에서 태풍, 허리케인, 산불과 엄청난 벌레떼들의 습격이 인간의 삶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 뿐만이 아니라 바다의 환경오염도 어마어마한 수준으로 인간이 통제하기 힘든 지경까지 갔다는 소식도 심심치 않게 들려옵니다.

  이 모든 게 누구의 잘못일까요. <, , >의 제라드 다이아몬드 교수님이 지적했듯이 모든 인류의 질병은 야생동물을 가축화하며 인간들과 공생하면서 발생했다고 합니다. 또한 인간들의 탐욕으로 다른 민족들을 침략하고 땅과 재물을 빼앗고, 수많은 생명들이 사라져갔습니다.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모든 게 인간의 탐욕 때문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기후학자들이나 과학자들은 이미 지구의 기후변화는 인간의 통제수준을 넘는 수준까지 왔다고 합니다. 하지만 인간들의 탐욕은 지금도 그칠 줄을 모르는 것 같습니다. 이 소설이 출간된지 70년이 넘었지만, 카뮈는 이 소설을 통해 많은 그칠줄 모르는 인간의 탐욕을 비판하는 것 같습니다이 세상은 나만 잘 살면 되고 다른 사람이 죽어나가도 나만 살면 되는 게 아니라, 모두가 함께 살아가야할 세상입니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재앙이 왔을 때 우리는 각자가 어떤 대처를 해야 하는가입니다. 소설 속에서 페쇠된 오랑시에 갇힌 기자 랑베르가 의사 리외에게 도시를 벗어날 수 있게 도움을 요청하며 리외가 영웅놀이를 한다고 말합니다. 리외는 거절하며 랑베르에게 말합니다.

  “당신 말이 옳아요. 랑베르. 절대적으로 옳아요. 당신이 지금 하려는 일은 나는 결코 막지 않을 거예요. 당신이 하려는 일은 내가 봐도 정당하고 좋은 일이니까요. 하지만 이것만은 말해주고 싶어요. 이 모든 것이 영웅주의와는 아무상관이 없어요. 이건 성실성의 문제예요. 비웃을지 모르지만 페스트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성실성입니다.”

  “성실성이 뭔가요?” 랑베르가 갑자기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일반적인 의미에서는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나를 예로 들면 성실성은 내 직분을 완수하는 거예요.”(194p)

  저는 이 소설에서 가장 의미 있는 내용 중의 한 구절이라고 생각하는 성실성입니다. 랑베르는 재앙의 상황에서 그 자리를 벗어나려하고 리외는 끝까지 남아 자신의 직분을 완수하려 합니다. 이 소설에서 평범한 한 사람의 의사이지만 리외가 제일 멋지게 표현된 부분이 아닌가싶습니다. 치료제가 없는 페스트에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지만 묵묵히 자기의 자리를 지키며 본분에 충실하는 것이 너무 인상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리외가 보여준 성실성이야말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도 본받아야 되는 정신이 아닐까싶습니다. 두려움과 공포는 미래를 예측하기 어려워서 일수도, 눈에 보이지 않아서 일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깊은 어둠이라도 다음날 해는 뜨지요. 코로나 또한 길게 우리의 일상을 위협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극복되리라 생각합니다.

  외국의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여러 히어로들이 등장해서 국가를 구하고 사람들을 구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진정한 영웅은 우리 일상에서, 그리고 지금과  같은 코로나 같은 위기 상황에서 자기의 직분을 다하고 있는 의료관계자들을 비롯해서 관계 기관과 그 지시에 묵묵히 따르는 국민들을 볼 때 이 역시 우리와 함께 운명을 같이하는 영웅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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