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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책 <인간의 자리> 간단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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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인간의 자리>는 인류학과 교수이자 정신과 전문의인 박한선님이 집필한 책입니다. 작가님의 이력이 특이한 것은 인류학과 정신과 전문의로서 전혀 관계가 없을 것 같은 두 학문을 전공했습니다. 이 책 역시도 작가님의 독특한 이력답게 인간의 다양한 행동과 마음 그리고 인간의 본질에 대하여 진화인류학이라는 관점에서 서술해 나갑니다. 

인간 정신의 본질을 이해하려면 도대체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까? 

사실 인간의 마음은 현재 지구상에만 무려 70억 개의 샘플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정체가 오리무중이다. 하지만 확실하게 장담할 수 있는 사실도 있다. 천상이나 혹은 지하에서 인간의 자리를 찾을 가능성은 없다. 인간의 자리는 동물의 왕국 어딘가에 있다.

긴 시공간적 진화사 속에서 행방이 묘연해진 '인간의 자리'를 누가 찾아낼 수 있을까? 인간의 우월성이라는 아름다운 편견을 깨고 용기를 내어 진실을 찾는 자가 그 영광을 차지할 것이다.

-서문 중에서-

위 서문이 이 책에서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주된 내용이 아닌가싶습니다. 개인적으로 독특한 주제와 어렵지 않게 쓴 내용 서술 그리고 참고로 인용된 소설이나 인용문들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조금 아쉬운 점이 있다면 결론이 조금 확실하게 전달이 되었다면 더욱 좋은 책이 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책의 내용 중 요즘 이슈가 될 만한 내용과 인상적인 부분을 몇 곳을 골라보았습니다.

 

왜 남에게 아이를 맡기는가

어떤 뻐꾸기는 절대 스스로 새끼를 키우지 않는다. 두견과에 속하는 141종의 뻐꾸기 중 무려 59종이 자신의 새끼를 남의 손에 맡긴다. 알을 다른 혹은 같은 종 다른 어미의 둥지에 낳는다. 양부모는 엉뚱한 알을 정성껏 부화시키고 나중에 열심히 먹이도 실어 나른다. 생물학자들은 이를 '탁란'이라고 한다. 정말 엉뚱해 보이지만 제법 오랜 기원을 가진 양육 본능이다.(51p)

자연의 세계에서 탁란은 흔하지 않지만 아주 드문 현상도 아니다. 조류 외에도 일부 어류나 곤충이 이러한 탁란을 한다. 그리고 더 넓게 보면 인간도 가끔 탁란을 한다.(52p)

책 본문에서는 이해하기 쉽도록 소설 <생인손>과 <발가락이 닮았다>의 일부 내용을 인용했습니다. 참고가 된 소설의 내용이 매운 인상적이어서 관심있는 분들은 읽어보셔도 좋을 듯합니다. 인간 역시도 자신의 환경에 따라 남의 가정에 자신의 아이를 맡기기도 하고, 자신의 핏줄이 아닌 줄 알면서도 정서적으로 어떻게든 친자식이라고 믿고 싶은 마음이었을까요? 이 책에서는 탁란의 여러가지 이유를 조건을 말하고 있지만 가장 공감이가는 것은 환경 내자원 공급이 주된 이유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게 새든 인간이든 큰 차이는 자원공급, 즉 먹는 것과 주거라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물새는 전체 조류의 2퍼센트에 불과하지만 탁란을 하는 물새는 거의 25퍼센트에 달한다. 물새는 산새보다 비정한 것일까? 그럴 리 없다. 둥지를 만들 적당한 곳이 부족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한국이 지난 수십 년간 그랬다. 거의 20만 명의 아이들이 전 세계로 '수출'되었다. 한국인이 특히 비정해서가 아니다. 아이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 그것뿐이었는지도 모른다.(63p)

우리의 정신적 본능은 확고한 유전적 기반을 가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비정한 악덕을 진화적 본성에 의한 필연적 결과로 간주할 수는 없다. 주어진 환경에 따라 '선한 본성이 될 수도', '악한 본성'이 될 수도 있다. (63p)

이 부분에서 필자는 여러가지 생각을 해봤습니다. 정말로 비정해서 입양을 보냈을가? 정말로 환경적 문제 때문에 입양을 보냈을까? 이 책에서 인간은 동물의 왕국 어딘가에 있다고 말합니다. 순수하게 생물학적으로 보면 이 말이 맞지만, 저는 조금 더 도덕적인 관점에서 생각하고 싶은 욕심이 생깁니다. 이러면 작가님이 말씀하신 대로 진화론적인 관점에서 인간의 우월성에 대한 편견이라고 생각하실까요? 

도덕적인 관점에서 보고 싶은 것은 그래도 인간은 본능보다는 생각할 수 있는 동물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동물처럼 자신들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환경에서 생리학적으로 출산을 한다면 자신의 새끼를 위해서 탁란이라는 선택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인간이란 존재는 최소한 자신이 처한 환경에 대해 미래를 생각할 수 있는 동물이기 때문에 탁란(해외 입양)되는 비정함은 막을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입양이 아니더라도 주위를 보면 돌도 지나지 않은 갓난 아이를 어린이 집에 맡기는 문제도 아이를 양육하는 부모라면 생각해 볼 문제가 아닌가싶습니다. 저의 멀지 않은 지인의 경우 태어난지 5개월이나 지났을까요? 어린이집에 맡기기에는 너무 어린것 같은데 어린이집에 보내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랬습니다. 그런데 엄마가 직장을 다니거나 생계문제로 일을 하고 있는 분도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아이를 맡기고 자신의 취미생활을 하는 것을 보고 '이래도 되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반대로 생각하면 어린이집에서는 한정된 보육 선생님이 여러면의 아이의 육아를 도맡아 하느 셈이 되니까 엄마가 해야할 육아를 탁란하는 것처럼 맡기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가족 간의 사랑과 유대관계를 형성해야 될 시기에 어린이집, 학원 등으로 아이를 정신없이 돌리는 문제는 아무리 경쟁이 심한 사회라고 해도 다른 대안은 없는지 생각해볼일이 아닐까싶습니다. 

 

형제자매가 사라지는 세상

 한국의 극단적인 출산율 저하는 우애보다 동기갈등이 심한 생태적 환경에서 일어나는 예방적인 차원의 선제적 동기살해라고 할 수 있을까? 우애를 통한 이득보다 동기갈등의 가능성을 더 우려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덕분에 동기갈등은 처음부터 없겠지만 그 대신 우애도 없다. 과연 우애 혹은 갈등은 출산의 결과일까? 원인일까? 혹은 둘 다일까?(81p)

저출산이 지속되면 다음 세대가 이끌 세상은 어떻게 될까? 다들 성격이 비슷해질까? 집단의 도전성과 창조성은 점점 떨어질까? 사회는 점점 보수적으로 변할까? 형제자매가 사라진 세상이라면 작은 우애도 큰 차별적 이득을 제공할 텐데, 그런면 어느 시점에 이르러 우리는 다시 자식을 많이 낳게 될까? 인류가 처음 겪는 일이다. 아직 아무도 답을 모른다.(82p)

얼마전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저를 포함해 회사 동료 세 가정이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저희 집은 저와 아내와 딸, 다른 동료 한 가정은 아내와 아들 그리고 또 다른 한 가정은 아내와 장성한 세 딸을 데리고 여행을 같이 다녀왔습니다. 저는 둘이라서 그래도 아이들을 잘 키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세 딸과 함께 온 가족을 보면서 부러웠던 것은 세상에 경제적 여유만 있는 게 행복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직 아들이 하나인 집은 계속해서 "아이들이 많아 좋겠다!"라는 말을 되내였습니다. 부모 앞에서 세 딸은 소소한 거라도 재잘거리며 놀면서 웃음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딸부잣집이지만 같이 하는 조그만 것들이 세상 모든 것을 가진 것 이상의 행복함이 느껴졌습니다. 

저의 큰딸도 몇 달전에 이야기를 나누면서 "젊은 사람들한테 힘든 세상, 젊은이들한테 절망적인 세상, 나는 결혼을 해도 애는 갖지 않을거야"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면서 저한테 물었습니다. "아빠는 다시 결혼해도 지금처럼 나와 동생같이 둘을 낳을거야?"라고요. 저는 잠시 고민을 했습니다. 찰나 고민을 했지만 대답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아빠가 결혼 초로 다시돌아간다면 네 동생 하나 더 낳을 수 있었을거야!"라고요. 큰딸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반대 의견이 아빠한테 나오니까 조금 의아해하는 것 같았습니다. 저 역시도 당시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시기는 아니었지만 자녀 하나는 외롭다고 생각했었고, 가능하다면 셋은 키우고 싶었습니다. 그런 생각의 기반에는 역시나 경제적으로 측량할 수 없는 행복의 가치가 아이들한테 있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젊은이들이 세상에 대해 절망적이고 희망이 보이지 않게 생각하게 만든 이 사회도 책임이 없지 않다고는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최근 프랑스에서 올림픽이 끝이 났는데요. 결과도 좋았지만, 좋은 결과만큼 선수들이 축하를 받고 환영받아야 마땅한 시간이었는데 그렇지 않은 것 같아서 안타까웠습니다. 특히 안세영 선수의 사태를 보면서 세대간 생각의 차이가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지금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안세영 선수와 협회를 통해 보는 것 같았습니다. 한 엘리트 선수의 우월적인 성적으로 먹고 사는 수십명의 기득권을 가진 협회. 저는 단순히 배드민턴 협회만의 문제로 보이지 않았습니다.안세영 선수는 자신이 목표로 한 금메달을 따기 위해 아픈 고통도 참고, 불합리한 관행도 참아가면서 7년이라는 긴 시간을 보냈습니다. 만약에 안세영 선수가 금메달을 따지 못하고, 불합리에 대한 불만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해봤습니다. 그런 상황을 가진 안세영 같은 젊은이가 우리 사회에 한둘일까요? 제 생각에는 대부분의 젊은이가 말못하는 안세영일거라 생각됩니다.  확장해서 보면 체육게 전체의 문제일수도 있고 우리나라 전체의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더욱이 안타까운 것은 기존 기득권 세력들이 만들어 놓은 시스템이 도무지 바뀌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더욱 더 암울하게 만듭니다.

 

답은 단순하다고 생각됩니다. 희망을 보이게 해주면 됩니다. 젊은이들한테 '젊으니까 청춘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열정페이'와 같은 가스라이팅을 하지말고 '젊으니까 희망을 주는 사회, 아프면 아프다고 힘들다고 불합리하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사회, 열정페이보다는 정당하게 일해서 충분한 수입을 보장'하면 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렇게 하면 자연스럽게 연애도 하고 집도 사고 결혼도 해도 출산문제도 해결이 될거라생각됩니다. 문제는 기존의 시스템을 유지하려는 기득권 세력에 있다고 생각됩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조금 내려놓고 함께 성장하는 사회 미래 세대에게 희망을 주는 어른들이 많아지기를 기대해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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