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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읽는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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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인간


이 책 <읽는 인간>은 천재적인 재능과 후천적인 노력이 한 인간의 인생 전체를 어떻게 성장시켜 주는지 잘 보여주는 자서전 형식의 글입니다. 독서의 수많은 장점이 있지만 선천적인 재능이 없더라도 부모의 역할을 통해 후천적으로 책을 가까이 하는 습관을 길러 줄 수 있다고 생각되는데요. 그 효과 역시도 유아나 어릴적에 길러주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우리가 어른이 되면서 글과 멀어지는 것은 어릴적 놀이와 독서가 분리되어서 활자에 대한 강한 거부감이 생기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독서를 놀이처럼 생각하는 습관을 길러준다면, 100세 인생 중 10살 정도까지 부모가 아이와 독서를 함께 해준다고 했을 때 90년을 살아갈 인생의 기초자산을 만들어주는 것이지요.(본문 내용) 
어릴적 독서습관은 이 책의 저자처럼 문학 분야 뿐만 아니라 다른 전문분야를 탐구하고 연구하는데도 엄청난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독후감이 길기 때문에 시간이 없어신 분들은 굵은 글만 읽고 자신의 생각과 비교해 보세요.


지은이: 오에 겐자부로

옮긴이: 정수윤

 

  책을 읽다보니 요즘에 나오는 유튜브 콘텐츠나 SNS콘텐츠도 자연스럽게 눈이 가게 되었습니다. 여러 콘텐츠를 접하다보면 내가 아직도 부족함을 느끼고 또 다양하게 독서를 하고 계신분들을 만나게 됩니다. 다독자나 독서로 얻는 콘텐츠를 제작하는 분들을 보면서 내가 독서로 얻는 것은 무엇인가, 조금 더 발전적인 독서를 할 수는 없을까 같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연관된 주제로 다른 책을 찾아보는 것을 확장 독서라고 하는데, 지난번 읽은 책 <독서의 기술>과 연관되어 <읽는 인간>을 읽게 되었습니다.

 

 

저자소개

 

  오에 겐자부로: 저자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세계적인 소설가입니다. 1935년 일본의 에히메 현에서 태어나 54년 도쿄 대학에 입학해 불문학을 전공했습니다. 대학 재학 중이던 1957<도쿄 대학 신문>에 게재된 단편 <기묘한 일>로 평론가들의 호평을 받으며 데뷔했습니다. 그 후 <사육>으로 아쿠타가와상을, <개인적인 체험>으로 신초사 문학상을, <만엔원년의 풋볼>로 다니자키 준이치로오상까지 받으며 국제적 명성을 얻기 시작했고 199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합니다.

  이 책 <읽는 인간>은 저자가 평생에 걸쳐 읽어온 보물 같은 책들을 회고했습니다. 노벨상에 빛나는 노작가가 어렸을때부터 읽었던 고전과 시집등 수많은 책들을 소개합니다. 그리고 그 책들이 어떻게 작가의 인생을 만들어 왔으며, 어떻게 그의 작품에 투영되었는지를 섬세하고 치밀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책의 제목이 쓰는 인간이 아닌 게 흥미롭습니다. 왜냐하면 작가 자신이 수많은 작품을 남기 작가이고 그로 인해 여러 문학상과 노벨상까지 받은 이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저자는 쓰기 전에 자기를 문학적으로 성장하고 완성시킨 것은 아마도 책을 읽는 독서가 그를 완벽한 읽는 인간으로 성장시켰기 때문이 아닌가싶습니다.

 

 

책 내용 살펴보기

 

  책의 모든 내용이 노작가가 인생을 정리하면서 지난 인생에서 자신이 읽은 책들에 대한 회고와 이별을 고하면서 시작됩니다.

  저의 책 <책이여, 안녕!>의 제목은 러시아의 소설가 나보코프가 발표한 대표작 <선물>에서 인용한 구절입니다. 책 속 주인공은 영원히 살지만(작중에서는 죽는다고 해도), 책을 쓴 작가는 죽습니다. 죽기 전 자기가 쓴 책에게 이별을 고하게 되지요.(9p)

  저자는 자신 쓴 많은 책과도 이별을 고하지만, 자신을 위대한 소설가로 이끌어준 책들에 대해서도 이별을 고한다는 말을 합니다. 인류가 지식을 전달하고 문명을 발전시켜 온 배경에는 문자라는 지식전달 수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느 위대한 사람도 수명을 연장시킬 수는 없지만, 문자를 통해 지식은 영원히 후대 사람들에게 전달이 되고 또 발전됩니다. 저자의 인생과 함께 해 온 책들과 이별하는 안타까움이 녹아있는 글이지만, 담담하게 인생을 뒤돌아보고 인생의 마지막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자세가 그의 문학적 삶과 생각에 더해져 전해져 옵니다.

  저자에게 책은 그 어떤 것과 바꿀 수 없는 보물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세상에 많은 물질적으로 계산되는 금은 보화가 있지만, 자신의 정신을 채우는 계산할 수 없는 무한한 지식과 생각은 어떤 보물과도 바꿀 수 없는 지적재산이지요.

 

이런 문장을 쓸 수만 있다면.

  저자는 소년 시절에 깊이 감명을 받고 인상깊었던 시나 소설을 노작가가 된 후에도 보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소년시절에 읽었던 <포 시집><랭보 시집>을 보면 일본에 없던 문체를 보면서 자신도 이러한 문체로 만드는 공상도 하게 됩니다. 꿈을 갖고 성장시키는 계기가 된 것이지요. 이런 영향으로 저자는 프랑스문학에 빠져들고 불문학과에 진학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또한 여러 작품을 중에서도 <J. 알프레드 프루프록의 연가>를 읽고서 시적인 표현과 번역에도 눈을 뜨게 됩니다.

 

  어디 한번 가보자, 그대와 나,/ 수술대 위에 올라 마취주사를 맞은 환자와 같이/ 하늘 가득 황혼이 밀려올 즈음./ 가보자, 버려져 인적 없는 마을을 지나/ 불안에 떠는 밤이면 밤마다, 중얼중얼 혼잣말이 새어나오는/ 하룻밤 묵은 여인숙의 후미진 구석방,/ 굴 껍질과 톱밥 흩어진 술집 거리,/ 어쩐지 빠져나갈 길 없는 난문에 말려들 듯해/ 장황한 토론처럼/ (어디까지 계속될까) 아득한 거리를 빠져나와~/ “그래서 뭐?” 따위의 질문은 하지 말아줘,/ 자 어디 한번 찾아 나서볼까.(29)

  이렇게 시작하는 시를 읽고, 또다시 번개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포는 너무도 높고 먼 곳에 있었지만, 이런 문체, 이런 스타일로 표현할 수만 있다면 살아 있는 지금 이 순간의 나를 표현하고 싶다. 비로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엘리엇 시집을 반년쯤 꾸준히 읽었습니다.(30p)

  이게 저자가 고교시절에 시를 보고 느낀 저자의 감정입니다. 감수성이 예민한 시절이기도 하지만, 아무나 같은 글을 보고 이렇게 감명을 받지는 않을 것입니다. 똑같은 음악을 듣고서도 개개인의 감정과 울림이 다르듯이 문학도 그 글을 읽는 이의 감정과 수준에 따라서 다르게 느껴지나 봅니다. 저자는 이런 문자로 표현하고 쓴 글에 대해서 받아들일 수 있는 개인적 소양과 재능이 어려서부터 예민하게 받아들여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문학적 소양이 없는 필자는 저자만큼의 감흥은 없지만, 이런 감정을 느낄만한 훈련을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이 시집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시와 문학 작품을 접하면서 문학적인 재능을 키워간 것으로 보입니다. 작품들이 대체로 유럽의 시와 문학작품들이 많아서 최초 글을 쓴 작가의 감정과 의도를 최대한 일본사람들의 정서에 맞게 번역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깨닫게 되는 시기였습니다. 서양의 문화와 정서가 다르기 때문에 같은 단어라도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감정들 때문에 문학작품 같은 경우는 번역가의 역량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책을 읽는 저로서도 서양 작품에 대한 번역의 중요성을 알기 때문에 많은 공감을 하게 됩니다.

 

재독, 치열한 읽기 훈련.

  책 한권을 읽을 때, 우리는 언어의 라비린스 즉 미로를 헤매듯 독서하는 경우가 종종 있지요. 하지만 한 번 더 읽을 때는 방향성을 지닌 탐구가 됩니다. 무언가를 찾아 나서서 그것을 손에 넣고자 하는 행위로 전환되지요. 그것이 한 번 더 읽는 까닭입니다.(38p)

  독서의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다독을 하고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다가 읽기 때문에 번거로운 방법이지만 필사까지 하면서 책을 일주일에 한권을 읽고 있는데요. 저자 같은 경우는 다독보다는 책을 깊이 있게 이해하려는 훈련과 노력을 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책에서도 많은 시를 읽은 내용이 나오는데요. 마음에 드는 시나 문학 작품이 있으면 재독을 하는 것 뿐만 아니라 원본을 찾아서 진정한 작가의 메세지는 물론 감성까지 읽어 내려고 노력했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그러한 다른 문명의 문학가들의 감성을 최대한 훼손하지 않고 일본인들의 감성에 맞게 다시 번역한 번역본도 읽어 보았구요. 거기서 그치지 않고 그 작품을 분석하거나 작가의 의도를 알기위한 평전도 빠짐없이 찾아 읽어서 작품에 대한 깊은 이해를 하려고 했습니다. 이 정도면 청소년기 때부터 문학에 대한 심취를 넘어서 연구를 하는 경지가 아닌가 싶습니다. 저자는 실제로 문학에 관심이 있는 청년들이라면 책이나 원문을 읽는 것 뿐만 아니라 작가의 연구서까지 읽는 것을 권장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청소년기에 문학을 독학으로 공부하면서 학교근처의 헌책방을 뒤져가면서까지 관련서적을 찾아 읽었다고 합나다.

  다독으로 전문분야의 책 20권 정도 읽으면 준전문가가 된다고 하는데요. 저자가 독서를 하는 방법이 더 깊이 있는 지식을 자신의 정신에 완전히 녹아나게 하는 학문탐구와 지적완성을 이루는데 큰 영향을 주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책을 읽다보면 여러 가지 장르와 전문분야가 우리 주변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데요. 특히 문학 분야에 관심이 많다면 저자와 같은 독서방법이 최고의 학습방법이 되지 않을까도 생각됩니다.

 

독서는 나 자신을 발견하는 것.

  책을 읽음으로써 책을 쓴 인간의 정신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한 인간이 생각한다는 건 그 정신이 어떻게 작용한다는 것이지 알 수 있어요.. 이를 통해 사람은 발견을 합니다. 지금 내가 얼마나 중요한 문제를 맞닥뜨리고 있는지 깨닫고, 결국은 진정한 나 자신과 만나는 것이 가능해지지요.

  글을 쓰는 사람 안에 이러한 마음의 움직임, 정신의 움직임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고 우리는 그곳에 발을 들였다, 이 사람이 중요한 것을 발견했다고 쓸 때 나도 글쓴이의 옆에서 그의 마음이, 그의 정신이, 둘도 없이 소중한 무언가를 발견하는 순간에 함께하고 있으며 그와 보조를 맞춰 전체적인 정신의 움직임을 경험하고 있다고 사이드는 말하고 싶은 겁니다.(50p)

  우리 주변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생로병사를 함에 있어서 자기의 생활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같은 생활을 반복하며 평생을 보내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그 속에서도 뭔가를 이루어내고 자신이 원하는 성취를 함으로써 세상에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도 하는데요. 그 분들이 대다수가 한 번 사는 인생에 있어서 단순하게 살다가는 무미건조한 인생을 보내고 싶지 않다는 내면에 인생의 목표가 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그 단조로움의 일상을 조금이라도 벗어나서 다른 사람의 생각을 나의 것으로 깊이 있게 전환시키는 가장 쉬운 방법이 독서일 것입니다. 실제로 세계적으로 성장한 글로벌기업의 리더들도 지독한 독서가들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책을 읽음으로써 세상에서 나 자신의 위치와 지식수준을 파악할 수 있는 계기가 되고 그걸 알게 된다면 더 높은 지식의 영역을 성취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자 역시도 문학이라는 장르에 일찍 심취하여 세상속에 속한 ''를 발견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해서 더 많은 문학적 소양을 쌓게 되고 세계적인 소설가로 성장하고 노벨상을 받는 결과로 나타났습니다.

 

소설가가 인간을 보는 법.

  이렇듯 외국어 책을 읽는 것과 일본어 소설을 쓰는 것이(완전히 다른 행위처럼 보이지만) 본질적으로 서로에게 여운을 남깁니다. 어떤 소설의 근본적인 톤, 음악으로 보자면 선율같은 것이 떠오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문체'라고 부릅니다. 소설의 스타일이란 바로 이런것을 말하며 'grief'라는 작은 단어 하나에서 문장으로 이어서 작품 전체로 전개됩니다. 나아가 한 사람의 소설가가 지닌 인간을 바라보는 견해, 사고방식, 소설가로서 뿐만 아니라 인간 본연의 자세와도 이어지는 것이죠. 그것이 '문체'이며 결국 우리는 이것을 읽어내기 위해 소설을 읽고 소설로 쓰기도 하는 것입니다.(82p)

  음악이나 미술을 통해 사람의 감정 또는 자연의 미묘한 변화를 읽어내어 선율이나 미술작품으로 표현해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음악만 보더라도 고전음악부터, 현대음악으로 나누어지고 다시 서양음악과 동양음악 그리고 다시 세분화되어 락, 발라드, 브루스, 메탈음악과 같이 장르가 나누어지기도 합니다. 가만 보면 모두가 청취하는 소비자가 존재하기 때문에 만들어지는 것인 만큼 취향도 다양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문학가들과 예술가들이 특별한 것은 이런 각각의 취향과 감성을 자기 자신의 작품에 자기만의 표현방법으로 고스란히 녹여낼 수 있다는 것이겠지요. 세상에 작품으로 나오면서 공감을 하고 이건 내 이야기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은 그만큼 문학가들이 예술가들이 평소에 세상 속을 살아가는 인간들의 입장에서 많은 고민을 했다는 흔적이 아닐까싶습니다. 그것이 소설가는 글을 통해 문체로 표현이 되고 음악가는 선율이나 톤으로 표현이 되는 것일 겁니다.

 

배우기, 외우기, 깨닫기.

  저는 이 세 가지 단어의 연결고리가 참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실제로 무슨 책을 읽든지 '배우기, 외우기, 깨닫기'를 원칙으로 삼았습니다. 문학 책을 읽으면서도 특히 시가 어렵다고 느낄 때면 우선 그걸 외우기로 했습니다. 이토 시즈오의 어려운 시 역시 이해하기 힘든 부분을 한 줄 한 줄 외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생활 속에서 반복적으로 시를 중얼거리는 동안,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그 의미를 자력으로 깨닫게 된 것이죠.(184p)

  이런 식으로 나이를 먹으며 시 한편을 계속 읽어나가다 보면 어느날 그 시를 읽는 방법이 변했음을 깨닫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는 그게 자기 내면의 깊이가 깊어졌다는 뜻이라고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도 저는 제게 소중한 시를 말하자면 언어의 자산으로 지니면서 가끔씩 반복해 읽기도 합니다.(193p)

  이 모든 것을 독학으로 혼자 공부했다는 게 놀랍습니다. 이제 책읽기를 시작한지 얼마되지않은 저의 생각으로는 대단한 집중력을 가지고 평생을 살아오신 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종교에 구원이나 성불같은 것이 있다면 문학자에게 진정한 득도의 경지에 혼자서 오른 사람이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현직에서 문학을 공부하고 연구하는 유능한 학자분들도 계시겠지만, 책을 읽으면서 세상의 이치를 알고 그것을 다시 자기만의 자산으로 만든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거기에 더해져 순수함이 저자의 작품을 더 빛나게 해준게 아닌가싶습니다.

  그리고 이 글에서 평생을 독서와 글쓰기로 살아온 노작가의 겸손함이 보이기도 합니다. 이 정도의 연륜과 저술활동 그에 따른 수많은 수상경력을 가지고 있으면 거만하거나 매너리즘에 빠져서 인간적인 헛점이 보일만도 한데, 노년이 되어서도 흔들리지 않는 기품에 놀라움과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책을 읽고 쓰는 과정에서 항상 수많은 책속의 인물들과 작품의 작가를 통해 항상 자신을 돌아보며 성찰을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지성인의 태도를 배우다.

  제가 천황에게 직접 받는 문화훈장을 거부한 것은 저도 어린시절 전쟁중에 받은 국가주의 교육의 무시무시한 기억을 잊을 수 없는 인간으로서 자연스러운 마음이었습니다. 교장으로부터 "천황 페하가 죽으라고 분부하면 어떻게 하겠나?" 라는 질문을 받고 "죽겠습니다. 할복하고 죽겠습니다." 라는 대답이 조금이라도 늦어지면 얻어맞았던 기억이지요. 우익의 선전용 차가 부르짖는 것처럼 "일본이라는 나라, 일본이라는 동포를 경멸한다."는 의도 따위는 전혀 없습니다.(207p)

  이런게 진정한 지직인의 마음가짐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이 유기적으로 살아있음에 인간도 있을 수 있고, 인간도 주변의 초복, 동물들 그리고 ''가 아닌 다른 존재가 있어야 생존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 될 수 있고 존재감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어느 누구의 잘못된 판단으로 남의 나라를 침략해서 사람들을 죽이고 정복하는 것은 공존의 근본적인 생각을 망각한 무지한 행동이라고밖에 볼 수 없겠지요 이 세상은 나 혼자만 존재할 수도 없고, 하나의 나라만 존재할 수 없고, 수많은 인종과 민족들을 단 하나의 생각으로 통일한다는 생각자체가 어리석은 발상입니다.

  아직도 일본 우익의 한반도 침략에 대한 사과도 없고 오히려 속국인양 떠들어대는 것은 역사 앞에서 부끄러운 줄 모르고 전쟁 피해자 앞에서 다시 한번 만행을 저리르겠다는 마음을 가슴 한켠에 가지고 있다는 뜻이겠지요. 부디 일본의 지식인들의 따뜻한 인류애가 일본 우익들의 마음을 돌리는 마중물이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그것만이 이 세상을 함께 잘 살수 있고, 후대 사람들이 피를 흘리지 않는 선조들의 유산이 될 것입니다.

 

전체 감상

 

  이 책은 독서 방법의 지도법이라기보다 어린 시절 독서를 통해 문학에 눈을 뜨고 어떻게 인생을 살아왔고 어떻게 인생이 변해가는 지를 보는 한편의 자서전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독서방법, 독서가 한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 우리가 현실에 생각해보는 독서가 유아부터 장년기까지 미치는 영향까지도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책이었습니다.

  앞서 읽었던 <독서의 기술>은 전반적인 독서에 대한 이해와 지식확장 그리고 생활 속의 독서를 통해서 자기계발을 하는 것이라면, 이 책 <읽는 인간>은 목적을 가지고 독서를 했다기보다는 어릴적 작가의 지적 호기심으로 시작한 독서가 한 인간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볼 수 있는 책이었습니다. 사람을 인성을 이야기할 때 선천적, 후천적 영향을 많이 따지기도 하는데요.

  보통 일반인들도 독서가 좋다는 인식은 모두가 알지만 실천하기는 쉽지가 않습니다. 특히 유아기 때부터 독서습관을 만들어주면 그 효과는 우리가 아는 것보다 많은 능력이 몸에 자연스럽게 익혀져 평생 학습의 튼튼한 기초가 만들어지게 되는데요. 그 효과가 부모의 역할로 후천적으로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면, 이 책의 저저 오에 겐자부로는 선천적으로 글을 보는 감성이 남달리 뛰어났고 거기에 더해 후천적 노력이 더해지는 최고의 문학 천재가 탄생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저자소개에서 알 수 있듯이 처음부터 문학을 전공한 게 아니고 순수하게 프랑스 문학에 매료되어 불문학을 전공한 것도 한 가지 작품을 보더라도 그 감성이 남달랐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독서가 딱히 읽는 방법이나 올바른 독서라는 게 정해져 있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어떤 독서가들은 다독을 하면서 많은 전문분야의 책들을 탐독해서 다양한 지식을 쌓기도 합니다. 반면 오에 겐자부로는 자기만의 독특한 책 읽기로 인생을 살았고, 다시 쓰는 영역에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노벨상을 수상하기까지 했습니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단순히 읽고 느끼는 책읽기를 넘어서 한 작품에 빠져들면 그 작품에 대한 평전과 연구서까지 두루 살펴보면서 한 작품, 한 분야에 대해서 그 어떤 연구자들보다 깊이 내면세계를 파고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독서를 함에 있어서 어떤 선택을 하든 책을 읽는다는 것은 우리에게 많은 영향을 끼칩니다. 단순히 지식의 확장, 생각의 확장을 넘어서 또 다른 내 삶의 일부가 될 수도 있지만, 그래도 독서가 가장 큰 영향력을 주는 시기는 유아기와 유년시절이 아닌가 싶습니다. 특히 요즘처럼 영상매체나 스마트기기가 일반화 되어있고 온갖 재미있는 것들이 넘쳐나는 시기에 독서를 하기란 쉽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어린 시절에 만들어 놓은 독서습관은 모든 학문이 문자를 통해 전달이 되어서 활자에 대한 거부감이 없어지고, 학습 성취도를 향상시키며, 지식의 확장, 생각의 확장, 상상력의 극대화, 기억력의 활성화 등 수많은 긍정적인 효과가 있습니다. 요즘에는 아이들을 학원으로 돌리며 밤늦게까지 입시경쟁에 내몰리게 되는데요. 필자가 아는 지인의 같은 경우는 별다른 학원을 보내지 않고서 어릴 때 해준 독서습관으로 자기주도학습을 자연스럽게 몸에 익힌 덕분에 큰 돈 들이지 않고 대학까지 진학시킨 경우도 있습니다.

  부모들이 아이 앞에서 무심코 TV를 보거나 스마트폰에 빠져 있을 때 아이도 자연스럽게 영상기기에 빠져들어 재미있는 것을 찾는 습관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집니다. 그러나 부모님의 약간의 변화가 아이의 인생전체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책을 가까이 하게 된다면, 부모가 아이에게 주는 인생 최대의 선물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이가 태어나 10년 정도만 독서습관을 만들어 준다면 아이가 100세를 살아간다고 봤을 때, 자그마치 90년 동안 살아갈 수 있는 인생의 토대를 마련해주는 셈이지요.

  모두가 똑같이 성공을 하지 못하는 것은 자신의 의지의 문제도 있지만, 좋은 정보를 접하는 것도 있습니다. 스마트 시대에 좋은 정보를 접하고, 그것을 나에게 맞게 필터링하고 유용하게 실천해 옮기는 것도 스마트기기에 매몰되지 않고, 자기주도적으로 기술발전과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갈 수 있는 기초자산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그 기본 바탕에 독서가 있음을 많은 분들이 공감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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