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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 솔뫼성지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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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 솔뫼성지 방문


어제 자전거 라이딩 길에 방문한 솔뫼성지를 소개합니다.
한국 천주교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 신부의 탄생지로 '소나무가 뫼를 이루고 있다'하여 솔뫼성지로 이름 지어진 곳입니다.
1784년 조선에 천주교가 처음 들어온 후 김대건 신부의 증조부인 김진후, 작은 할아버지 김한현, 아버지 김제준 그리고 김대건 신부까지 4대가 살았던 곳입니다. 

조선의 성리학을 기반으로 한 유교사상이 지배적이었던 시대에 서구 국가의 침략적 식민지 정책에 따라 서양문물도 함께 들어오던 시기였습니다. 당시 천주교는 조선에서 서학으로 불리우며, 동학의 창설에도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창설 초기에는 조선 내에서 큰 위협이 되지 않았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정치적 위협을 느낀 대원군은 천주교를 서구국가의  식민지 침략적 접근이 외세의 무력적 도전으로 간주하여 병인박해로 이어지는 우리나라 최대의 종교적 탄압으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당진에 솔뫼성지를 방문 하신다면 이러한 천주교 박해와 관련하여 대원군의 아버지인 <남연군 묘>와 병인박해로 인해 8000여명의 천주교 신도들이 순교한 장소인 서산<해미 읍성>에 방문하셔도 좋습니다. 
천주교와 관련하여 내포문화재를 살펴보면 많은 곳에 천주교 성지가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다음 백과 <대한민국 구석구석>인용
"솔뫼"는 충청도에서 제일 좋은땅 "내포"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으며, '소나무가 우거진 작은 동산'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곳에서 1821년 8월 21일 한국 최초의 사제이신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이 탄생하셨으며 박해를 피해 할아버지 김택현을 따라 용인 한덕동(현 골배마실)으로 이사갈 때인 일곱살까지 사셨다. 뿐만 아니라 김대건 신부님의 증조부 김진후(1814년 순교), 종조부 김한현(1816년 순교), 부친 김제준(1839년 순교) 그리고 김대건 신부님(1846년 순교)에 이르기까지 4대의 순교자가 살던 곳이다.

김대건 신부는 골배마실에서 신학생으로 간택되어 마카오로 유학을 가 1845년 상해 김가항 성당에서 페레올 주교로부터 사제로 서품돼 그 해 10월 귀국한다. 귀국 후 용인 일대에서 사목을 하다가 1846년 9월 국문 효수형을 받고 새남터에서 26세의 나이로 순교하셨다. 그리고 1984년 5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한국 방문때 성인 품위에 오르게 되었다. 솔뫼 성지의 소나무 그늘 아래에는 김대건 신부 동상을 비롯하여 기념탑이 세워져 있으며, 아래쪽으로는 개인과 단체 100여명이 피정을 할 수 있는 피정의 집이 있다. 또, 최근에 김대건 신부와 솔뫼성지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는 기념관과 김대건 신부의 유해가 모셔져 있는 기념과 성당을 신축하여 운영하고 있다.

회사에서 자전거로 30여킬로미터를 달려 솔뫼성지에 도착했습니다. 

여름이라서 꽃도 예쁘게 가꾸어져 있네요.


자동차로 방문하시는 분들은 입구에 주차장이 넓게 갖추어져 있어서 무료로 편하게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몇해전 프란체스코 교황의 방문 기념으로 김대건 신부와 아이들이 손을 잡고 있는 모습이 방문객을 반겨줍니다.


왠지 엄숙하고 성스러워 보이는 솔뫼성지 입구입니다. 

안에서 미사같은 예배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해야겠지요?

따로 홈페이지가 마련되어 있어서 미사를 참여하시는 분들은 참고 하시면 되겠습니다.

오전 7시하고 11시에 미사가 있습니다.

저는 천주교 신자는 아니지만 돌아가신 어머니가 신자이셔서 그리 멀게 느껴지는 종교는 아닙니다.


처음 방문하시는 분들을 위해 이렇게 안내문도 곳곳에 설치되어 있습니다.

솔뫼성지 홈페이지 인용

날씨가 좋은 날은 야외에서 미사도 하고 공연도 하나 봅니다.


곳곳에 예수님의 십자가 에서 순교하는 과정을 나타내는 상이 있습니다.


한편에는 김대건 신부님의 생가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보존 상태가 비교적 깔끔합니다.


소나무 숲으로 향하는 잔디가 정말 깔끔하게 가꾸어져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잔디 밟는 것조차 조심스럽습니다. 그냥 보기만하고 지나갑니다.


소나무 숲 사이로 나 있는 십자가 길입니다.

소나무도 마치 분재를 해 놓은듯 잘 가꾸어져 있네요.


기념성당 및 기념관입니다.

저는 외부인이 출입이 안되는 줄 알고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다녀와서 검색해보니 실내도 관람할 수 있도록 해놓았네요.

사전지식부족이 아쉬웠습니다. 다음 방문할 때는 이곳도 들어가 봐야겠네요.


나오는 길에 김대건 신부님 상 앞에서 가볍게 목례를 하고 방문을 마무리합니다.


충남 지역에 천주교 성지를 표시한 지도입니다.

솔뫼 성지는 천주교 신자이신 분들이 많이 방문하실 것으로 예상됩니다. 

지도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단순히 종교적인 성지를 떠나 역사적으로도 많은 관련이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솔뫼성지와 관련하여 역사를 살펴보면 서구 열강들의 적대적 식민지 정책에 따라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로 이어지는 역사적 의미도 깊기 때문에 같이 공부하고 방문하셔도 좋은 유적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솔뫼성지와 같은 유적지를 방문하면서 느끼는 저의 생각입니다.

대원군이 서구세력과 마찰을 최소화 하고 서구사상과 문물을 받아들여더라면 이후 역사가 '어떻게 달라졌을까'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근본적으로 수백년 동안 이어온 유교사상 때문에 쉽게 생각이 바뀌었을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지만 조선 말기에 가장 아쉬운 역사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 역사가 민비와의 대립과 동학으로 이어지고 경술국치까지 이어지지 않았나 하는 안타까운 생각을 해 봅니다. 


마지막으로 주차장 옆에 마련된 로컬푸드 매장과 지역상품 매장을 올려봅니다.


이상으로 솔뫼성지 포스팅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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