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류시화
독서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도서관에 가서 책을 고르는 게 쉽지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눈에 들어오는 게 제목이 시적이고 아름다워서 일단 잃어보자 하고 들고 나왔습니다. 책장을 몇 장 넘기고서 읽기 시작하고서는 나의 선택이 나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내용이 지루하지도 않고 읽은 내가 현장에 가 있는 것처럼 현장감도 있고 재미도 있었습니다. 한 가지 더하자면 웃픈 이야기 같은데도, 이야기 끝에는 항상 여운이 남아 실속도 있고, 배움도 있었습니다.
이 책은 작가 류시화 님이 인도 여행을 하면서 쓴 여행일기를 모아 쓴 산문집입니다. 생각하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인도라는 나라 자체도 우리에게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신비로움도 있지만, 우리가 근래 접하는 언론보도에는 그리 긍정적인 내용의 뉴스가 많지 않아 나에게는 여행 기피 대상국 정도로 인식되어있습니다. 하지만 작가님은 인도 여행을 하면서 나름대로 성취도 이루고 삶에 대한 깨달음도 얻은 것 같습니다. 물론 인도에서 모든 여행이 쉽고 즐거웠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승려, 택시운전사, 거지, 호텔 주인, 버스 승객, 회사원 등 길거리나 여행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귀족 하고는 거리가 먼 평민 이하 사람들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루 끼니를 걱정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눈앞에서 사기를 치고, 어떤 승려는 차비가 없어 천년 전부터 당신과 나는 만나기로 되어있다면서 억지로 차비를 내라는 등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작가님은 멘털붕괴가 되는 일이 잦았다고 합니다.
40페이지에 나오는 ‘어느 문명인의 실종’의 내용도 재미있고 글 끄트머리에는 여러 가지 생각하게 만듭니다. 요약하자면 작가님이 인도여행 중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열흘 가까이 물만 먹고 지내다가 너무 배가 고파 안 되겠다 싶어 허겁지겁 이것저것 먹고서 버스여행을 시작합니다. 그런데 너무 안먹다 먹은 것도 그렇고 입에 맞지 않는 음식을 너무 많이 먹는 바람에 배가 뒤틀릴 정도로 심하게 배탈이 난 것입니다.
버스안에는 승려, 인도아저씨, 아줌마 처녀, 소매치기, 아이들 할 것 없이 꽉 찬 버스였는데 하필 허허벌판을 달리고 있었습니다. 마지못해 버스를 세우고 일을 치러야 되는데 들판 한가운데에는 팔뚝만 한 마른나무 하나뿐이었고 작가님은 안절부절 은페물을 찾으러 이리 저러 헤매였습니다. 버스 안 많은 사람들은 이방인 하나가 왜 저리 안절부절 대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표정으로 바라보았고, 마른나무 뒤에서 작가님은 간신히 일을 치렀다고 한다.. 그야말로 광야에 홀로 앉아 볼일을 보는 문명인, 상상만 해도 재미있지 않습니까?
작가님은 일을 보고 차에 느긋하게 앉아 옆사람들이 듣도록 “인도인들은 왜 화장실을 이용하지 않는지. 왜 들판이나 철둑길에 마구 볼일을 봐서 더럽기 짝이 없다면서 화장실을 지으면 깨끗한 나라가 되지 않겠느냐고”말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인도인들의 대답이 더 재미있습니다. 세 사람이 말했는데 그중에 한 사람이 말하기를 “자연 속에서 자연적인 일을 처러하는데 뭐가 나쁘다는 겁니까? 왜 당신들 외국인들은 성냥갑만 한 공간 속에 숨어 냄새를 맡아가며 똥 위에 똥을 누고 있지요? 우린 아침마다 대자연 속에 앉아 바람과 구름을 바라보며 볼일을 봅니다. 그것이 우리에겐 최고의 명상이지요.”이 글 처음에 작가님이 용변을 보기 위해 은페물을 찾는 것이 너무 적나라하게 글로 써 놔서 내가 배가 아픈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책을 읽는 데 너무 킥킥대며 정신이 팔려있으니까 옆에 계신 동료분이 '저 친구 실성한 것처럼 왜 저래?' 하는 표정이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인도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사람들 입장에서는 당연하고 일상적인 일인데, 한 외국인이 용변을 보려고 안절부절못하는 것도 이해가 안 갔을 것이고 화장실을 이용하는 것 자체가 문명인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은 것입니다. 이 글 전체를 읽고 나서 웃음보다는 한 번 더 문명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두 번째 인도인은 문명이라고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고서 그것들로 인해 모든 자연적인 것들이 파괴된다고 말한다. 강은 더 더러워지고 나무들은 더 없어졌다고 말입니다. 다른 한 사람은 무엇으로 자신을 가려야만 문명인이라고 생각하는 자체가 이해가 안 된다고 말합니다. 어쩌면 이 사람들 생각도 존중을 해 주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문명의 이기심 때문에 자연이 파괴되고 문명인이라는 이기심 때문에 또 다른 문화에 대해서 미개인 취급하는 생각 자체가 또 다른 이기심이 아닌가 싶습니다. 알고 보면 자연에서는 모두가 그냥 한 인간이고 동물일 뿐이고 한 세상에 태어나 같은 시간을 보내는 미물 일 수도 있는데 말입니다.
인상적인 내용 한 가지만 더 소개합니다
본문 47페이지 ‘세 가지 만트라’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그대에게 세 가지 만트라를 전수시켜주기 위해서 왔다. 이 세 가지 만트라를 기억한다면 그대는 다른 누구도 스승으로 섬길 필요가 없다. 그대의 가장 완벽한 스승은 그대 자신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첫째 만트라는 이것이다. 너 자신에게 정직하라. 세상 모든 사람과 타협할지라도 너 자신과 타협하지는 말라. 그러면 누구도 그대를 지배하지 못할 것이다. 둘째 만트라는 이것이다. 기쁜 일이나 슬픈 일이 찾아오면 그것들 또한 머지않아 사라질 것임을 명심하라. 어떤 것도 영원하지 않음을 기억하라. 그러면 어떤 일이 일어난다 해도 넌 마음의 평화를 잃지 않을 것이다. 셋째 만트라는 이것이다. 누가 너에게 도움을 청하러 오거든 신이 도와줄 것이라고 말하지 말라. 마치 신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네가 나서서 도우라.”
간단한 세 가지 문장이지만 내 안에 스승을 찾는 법도 있고, 세상에 나한테 엄격하고 몸으로 행동하는 데에는 주저하지 말라는 내용으로 다가옵니다. 예전에 학교 다닐 적에 고사성어 같은 걸로 교육을 받고 윤리나 인문교육을 받을 때가 생각났습니다. 중국이나 인도나 말이나 문자, 생활습관 등 여러 가지가 문화적으로 다르지만 인간사는 만사는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고사성어에도 비슷한 가르침이 많고 모든 세상 이치는 본인으로부터 시작하고 세상 사람과 나는 철저하게 예를 지키고 나를 엄격히 다루라는 인간세상의 기본지침 같은 것 말입니다.
지금까지 이 책의 일부 내용이었습니다. 더 많이 소개하고 싶지만, 아직 읽어보지 않은 분들을 위해 여백을 남깁니다. 책을 빌릴 때만 해도 류시화 님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 봤더니, 인도 네팔 등 히말라야 지역을 여행하는 인도 마니아라고 하시눈 분도 있네요. 프로필을 보고, 책을 읽고서 생각나는 분들이 있습니다. 방랑시인 김삿갓, 괴짜 작가 이외수. 또는 인도의 이방인 순례자, 성자가 되고 싶은 이방인, 작가가 아니었다면 이 분은 승려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개인적인 생각도 해 봅니다. 책 첫부분에 여행 갈 행선지를 찾지 못하자 지도를 펼쳐놓고 눈을 감아 연필로 콕 찍어 행선지를 정하는 것도 참 괴짜시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류시화 작가님 때문에 작가님에 대한 마니아도 생겼지만, 작가님의 영향으로 인도 여행을 하는 마니아도 많이 생겼다고 합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아직은 인도는 여행하기에 그리 좋은 나라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남자라면 상관이 없겠지만 여자분들이라면 조심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아직은 치안이 좋은 나라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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