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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좋은 글

사람의 노력은 하늘을 이긴다(순자, 좋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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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한옥마을 가을풍경

이 포스팅은 책 <나를 망치는 것은 나 자신 뿐이다>에서 인용했습니다.


<대자연의 운행 법칙은 현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폭군 때문에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살고 죽는 것은 운명이고, 부자와 가난은 하늘이 내린다." 이것은 숙명론의 핵심이다. 인류가 처음 사회를 형성할 당시는 생산능력과 인식 수준이 낙후하여 자연계의 법칙에 대해서도 거의 알지 못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하늘'과 '운명'을 매우 두려워했다.
그리고 곧이어 강력한 통치 집단이 나타나면서 숙명론은 일종의 정신적인 아편으로 이용되었다. 숙명론은 역대 수많은 제왕들에 의해 계승되어 발전되었고, 마침내 통치자들은 스스로 하늘의 아들, 즉 '천자'라 칭하기에 이르렀다. 그들은 스스로 모든 복과 부귀를 누릴 운명을 타고 났다고 여겼다. 그리고 이것을 피지배계급 사람들의 머릿속에 주입시켰다. 이러한 숙명론은 게으른 사람들과 노력하지 않고 실패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위안 거리가 되기도 했다.

전주 한옥마을 가을 풍경

전국 시대의 대사상가 순자는 바로 이 숙명론에 반기를 들고 강하게 비판한 선각자였다. 순자는 <천론>에서 이렇게 말했다.
"대자연에는 정해진 운행 법칙이 있지만, 이것은 요임금이 현군이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걸임금이 폭군이기 때문에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또한 순자는 태양과 달, 사계의 변화, 홍수와 가뭄 등의 자연 현상에 대해서 상세히 설명하고, 세상의 평화와 혼란이 하늘에 달려 있다는 '치란재천治亂在天' 사상을 강하게 비판했다. ~중략~ 순자는 세상의 평화와 혼란은 하늘이 좌우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노력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누구나 부지런히 농사를 지으면서 아끼고 절약하면 하늘도 그를 가난하게 만들 수 없다."
"누구나 보양에 힘쓰고 부지런히 신체를 단련하면 하늘도 그를 병들게 할 수 없다."
"누구나 정해진 규칙과 순서에 따라 일을 처리하고 실수하지 않으면 하늘도 그를 곤경에 빠뜨릴 수 없다."
"하늘을 숭배하고 연모하기보다 물자를 비축하고 힘을 모아 하늘을 제압하는 것이 낫다."
"하늘에 순종하고 하늘을 찬양하기보다 하늘의 법칙을 정확히 파악하고 이용하는 것이 낫다."
"좋은 시기를 바라고 기다리기보다 절기에 적응하고 이용하는 것이 낫다."
"만물이 하늘의 힘으로 자라도록 내버려두기보다 우리의 능력을 발휘하여 상황을 개선시키는 것이 낫다."

"만물을 자신에게만 우리하게 사용하기보다 합리적으로 이용하여 만물이 지닌 참뜻을 잃지 않게 해야 한다."
"만물의 생장 원리에 감탄하기보다 만물의 생장 법칙을 정확히 아는 것이 낫다. 그러므로 노력을 하지 않고 오직 하늘의 은총만을 바라는 것은 자연의 본성에 위배되는 것이다."

-운명은 하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운명이란 바로 닭장 속에 떨어진 매 알과 같은 것이다. 자신이 매인줄도 모르고 스스로를 닭이라 여기고 평범하고 무료하게 살아가는 별 볼 일 없는 삶을 선택할 수도 있고, 꿈을 현실로 바꾸는 노력으로 결국에는 매가 되어 힘찬 날개짓으로 찬란한 인생을 선택할 수도 있다.

-고전의 지혜: 하늘에는 정해진 절기의 순서가 있고, 땅에는 만물의 기반이 있다. 인간에게는 다스림의 방법이 있으므로 자연과 서로 조화를 이룰 수 있다. 그러므로 자연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방법을 버리고, 자연의 은충만을 기대하는 인간은 정말 어리석은 자이다.


위 글은 순자가 지금으로부터 이천 년 전에 남긴 글이라고 합니다. 이천 년 전에 하늘의 신이나 절대자를 숭배하지 않고 오로지 사람의 의지만이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 있었다는 현명한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가 놀랍습니다. 어느 국가나 사회 또는 단체를 봐도 그 나름대로 문화를 기반으로 한 가치관이나 세계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서양의 경우를 봐도 17세기 경에 기존의 교회가 발표한 신학적 믿음을 깨기 전에는 오로지 신과 하늘만 숭배했었습니다. 그 전에는 아무리 신뢰성 있는 과학적 발표를 하더라도 신을 위배한다는 믿음이 더 강했기 때문에 교회의 교리를 벗어나면 그 사람이 구교도든 신교도든 굴욕은 물론 세금, 추방, 고문, 죽음까지 처벌받아야 했었습니다. 그게 불과 300년 전 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을 감안하면, 순자의 '숙명론'에 대한 반박은 정말로 위대하다고만 생각됩니다.

현세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옆에 인생을 살아가는 '진리'가 있음에도, 안락함과 편안함에 젖어 애써 외면하고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인간의 노력으로 또는 개인의 노력으로 거대한 인생의 성공까지는 아닐 수도 있습니다. 지금의 시간을 더욱 알차게 보내고 그리고 요행이나 행운을 바라기보다 조그만 시간이라도 금같이 여기고 살아간다면, 지나온 과거나 인생이 더욱 충만해지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대로 살고 시간이 가는대로 안락하게 살아간다면 지나온 인생은 후회만 남을 뿐이고, 생의 마지막에는 가을바람이 지나간 후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는 것처럼 처량한 신세가 되기 쉽겠지요.

책을 읽으면서 좋은 글 이웃님들과 공유해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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