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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전체감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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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수천년 전 고대 로마의 철학자이자 국가 지도자의 내적 성찰을 공유해 보세요. 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전혀 어색하지 않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책입니다. 바쁘신 분들은 굵은 글만 읽어보세요.


  명상록의 책 내용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일반인들이 생활 속에서 자기반성과 성찰을 통해 세상을 대하는 법에 잘 나와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책은 저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에 대한 자세한 소개나 이력이 나와 있지 않아서 인터넷 검색을 통해 어떤 사람이었는지 찾아보았습니다. 검색하던 중에 고대 로마의 철학자이며 황제가 된 정치가이기도 한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철학적 기초가 된 스토아 철학에 대해서도 연이은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책의 내용이 길지 않아서 읽는 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내용 자체가 수천 년이 흐른 지난 현재에도 큰 가르침과 깨달음을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자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왜 이런 명작을 후세에 남기게 되었는지 사상적 배경에 관심이 커져서 검색하고 관련 자료를 찾아 읽는 데만 2시간이 넘게 지났습니다.

 

 

저자소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121년에 태어나 180년까지 생을 살다간 고대 로마의 철학자이자 청치가입니다. 집안은 명문가이지만 왕족출신은 아니었고 어려서부터 매일 밤늦게까지 공부에 매달리고 여러 가지 운동과 사냥으로 신체를 단련하는데도 열심인 소년이었습니다. 그래서 황제에 의해 눈에 띄어 왕가에 들어가게 되고 스토아 철학의 가르침에 따라 엄격하고 절제된 생활을 이어갑니다.

  왕가의 엘리트 코스를 밟고 황제가 된 철학자 아우렐리우스는 수많은 전쟁과 반란, 그 속에서 발생한 패스트까지 겪으면서 그의 명작 <명상록>이 탄생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책의 제목이 명상록이 아닌 나 자신을 훈계함이란 제목으로 붙여졌습니다. 그만큼 남에게 보여주기 위함이 아닌 철저하게 자기 자신을 반성하고 성찰하는 목적이 컷다고 볼 수 있습니다. 동양 고사성어의 수신제가치국평천하를 자신의 생애에 실제로 이룬 서양 철학자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현실 세계의 정치 지도자들의 필독서가 되었고 몇 번을 읽어도 모자람이 없을 만큼 일반인들에게도 큰 울림을 주고 있는 책이기도 합니다.

  책을 심도 있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스토아철학에 관한 설명도 필요한데 서두가 너무 길어지기 때문에 이 감상문 끝에 간단히 참고 하도록 하겠습니다.

 

 

책 내용 살펴보기

 

  책의 내용이 간결하게 쓰여 있어서 필자의 미사여구가 필요 없다는 생각에 책의 본문을 그대로 인용했습니다. 간단하게는 한두 줄, 길게는 한 쪽이나 두 쪽을 차지하는 글 중에서 간추렸습니다.

 

예절바른 행동과 격렬한 감정을 억제하는 법을 배우라.

남을 이해할 줄 아는 넓은 마음을 가져라. 항상 잔인한 말과 행동을 경계하고 악한 행위뿐 아니라 그런 언행을 불러일으키는 악한 마음조차도 삼가라.

경기장에서 한쪽 편을 일방적으로 응원하거나 일원이 되지 말라.

힘든 일을 피하지 말 것이며 욕망을 줄이고, 원하는 것을 스스로 노력하여 성취하되 남의 일에 간섭하지 말며, 남을 비방하는 소리에도 귀 기울이지 말라.(9p)

 

시간이 없다거나 쓸데없이 일 핑계를 대어 주위 사람들에 대한 의무를 져버리거나 우정과 교제를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친구가 잘못했을 때 무심히 내버려두지 말고 그 본래의 성품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울 것이며, 늘 스승을 존경하라.(10p)

 

주위에서 일어나는 온갖 복잡한 일로 마음이 혼란스럽다면 조용한 사색의 시간을 가져라. 차근차근 명상하고 초조감을 없애라. 또 다른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대비하라. 많은 일을 하느라 지쳐있는 그대는 지금 어떤 노력도 어떠한 목표도 세울 수 없다. 이처럼 어리석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다른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몰라도 된다. 그렇다고 그대가 불행해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대 자신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면 불행해진다.(11p)

 

그대가 3천년 혹은 3만년을 산다 해도 잃는 것은 결국 순간의 삶이며, 그대가 잃는 삶 이외의 다른 삶을 얻을 수는 없다. 그것은 긴 인생이든 짧은 인생이든 마찬가지이다. 지금 우리를 스쳐 지나가는 이 순간은 모든 사람이 소유하는 것이지만, 잊혀지는 것은 늘 순간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무기력한 인간을 깨우치고 인도할 힘은 어디에 있는가?

그대의 정신과 영혼 속에 신성을 간직하고 그것을 모독하거나 매치는 일 없이 욕망과 쾌락을 초월하여 행동하고 거짓과 위선을 행하지 말며, 행동이나 말에 흔들림이 없게 하라. 모든 정해진 운명을 자각하고 죽음이란 모든 생물이 본래 생겨난 곳으로 돌아가는 것에 불과한 것임을 인정하고 받아들여라.(13p)


형체를 이루는 인간의 몸은 영혼의 우월함에 비교할 수 없다. 영혼은 지혜이며 이성이고 신성이지만, 육신은 흙이며 부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욕망과 쾌락에 괴로워하지 말고, 시기와 질투, 경쟁심을 없애라. 언제든 얼굴 붉히지 않을 일들만 생각하라. 부끄럽지 않게 말하고 행동하라. 그리하여 지고의 것을 추구하기로 마음먹는다면 그대는 그야말로 신의 사제요, 종복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쾌락에 의해 더럽혀지지 않고, 어떤 고통에도 무너지는 일 없이 자신의 본성을 유지할 수 있는 내면의 힘을 가졌기 때문이다.(14p)

 

정신을 꾸준히 단련하고 깨끗하게 하라. 그러면 그대의 정신 속에는 부패나 부정, 상처 따위는 있을 수 없다. 운명은 그런 인간의 생명을 완성하기도 전에 회수하지 않는다. 그것은 연극배우가 연기를 다 끝내지도 못한 채 무대를 내려가는 것과는 다르다. 그대의 마음속에 추호의 비굴함이나 허식도 없어야 하며, 남에게 의지하지도 말 것이며 남을 멀리하지도 말라. 그러면 누구에게 비난을 살 일도, 숨을 곳을 찾을 필요도 없다.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는 능력을 존중하라. 그대의 이성은 그러한 능력이 있어야만 인간의 이상적인 본성을 거스르는 관념을 막을 수 있다. 그리고 경솔한 판단을 하지 않고, 훌륭한 인간관계를 유지할 수 있으며, 나아가 하늘의 의지에 순종할 수 있게 된다.(16p)


이성을 잃지 않도록 주의하며 자신의 신성을 언제라도 반환할 수 있도록 항상 순수한 삶을 살면서 무슨 일이든 열정적으로 하라. 무엇을 기대하거나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자연의 본성에 따라 순응하여 임무를 수행하고, 모든 언행에 진실을 추구해 나가면 그대의 인생은 행복해질 것이다. 이 세상의 어느 누가 그런 그대를 방해하겠는가.(18p)

 

그대의 자신을 더 이상 그릇된 길로 인도하지 말라. 지나간 로마인이나 희랍인의 전설적 기록도 그렇고, 노년에 접어들면 읽으려고 간직해 둔 훌륭한 저작들도 더 이상 읽지 못할 것이다.

이제 종말을 준비하라. 무익하고 나태한 희망을 버려라. 그래도 자아를 아끼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아직 그 능력이 남아 있을 때 건강이나 돌보면서 눈앞의 일들을 서둘러 마무리 짓도록 하라.(20p)

 

우리는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인간의 몸을 이루는 살은 지구를 구성하는 흙으로부터 주어진 것이며 인체의 수분은 지구의 또 다른 원소로부터 온 것이고, 호흡역시 또 다른 요소로부터 주어진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정시의 원천 또한 어딘가에 존재할 것임에 틀림없다. ‘억울함을 당했다는 마음을 버려라. 그러면 억울함도 사라질 것이다. 피해의식을 버려라. 그러면 그 자체가 사라질 것이다. ‘상처 받았다는 피해의 식을 버리면 그 상처도 곧 아물게 될 것이다.(23p)

 

그대에게 수명이 1만년 정도는 남아 있는 것처럼 행동하지 말라. 죽음은 그대의 머리 위를 맴돌고 있다. 생명이 있고 능력이 되는 동안 모든 노력을 다하라.

주위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고 무슨 행동을 하는지 관심을 두지 말라. 다만 자신의 행동이 올바르고 순수한가에 대해서만 고민하라. 그리하면 수많은 걱정에서 벗어날 수 있다.

저 아가톤(Afathon)의 말처럼 남들의 퇴폐한 행위에 눈을 돌리지 말고 탈선 없이 곧장 앞으로 달려가라.(25p)


아름다운 것은 그 자체가 나름의 미를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아름답다. 아름다움은 그 이상을 요구하지 않는다. 인간이 감탄하여 찬사한다고 하더라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 어떤 찬사를 덧붙인다고 해서 더 좋아지거나 나빠지지 않는다.(26p)

 

그대가 배워서 터득한 기술이 아무리 졸렬하고 보잘 것 없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사랑하고 그것에 만족하라. 그대 자신을 타인의 폭군이나 노예로 만들지 말고, 모든 것을 신에게 맡긴 사람처럼 남은 인생을 살아라.

기억하는 자든 기억되는 자든 모두 하루살이에 불과할 뿐이다.(28p)


아침에 눈을 떳는데도 자리에서 일어나고 싶지 않을 때에는 이렇게 생각하라. '나는 한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일어나야 한다.'. 이 세상에 태어나 나에게는 수행해야 할 임무가 있고 그것 때문에 존재하는데 불만을 가져서야 되겠는가? 이렇게 누워만 있어서야 되겠는가?

그래도 역시 잠자리에 누워 있는 것이 더 좋다고? 그렇다면 그대가 태어난 것은 쾌락을 위해서였다는 말이 아닌가?

보잘것없는 식물이나 새와 거미, 꿀벌들을 보라. 그들도 이 우주 속에서 각자가 맡은 부분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정신없이 바쁘다. 그런데 인간인 그대는 거부하겠다는 말인가.(36p)

 

세상 사람들이 그대의 총명한 재주를 알아주지 않는가? 개의치 말라. 그대에게는 '그러한 것에는 소질이 없습니다.'라고 단정할 수 없는 수많은 자질이 있을 것이다. 그러한 자질을 개발하라.(38p)

 

쾌락이든 고통이든 육체의 감각에 영혼이 혼란스러워지는 일이 없도록 하라. 영혼을 육체의 감각과 결부시키지 말고 확실하게 구분할 것이며, 감각은 감각에 국한시키도록 하라.

그렇다고 그러한 감각이 마음을 지배하려 들때 뿌리치려 애쓸 필요는 없다. 단지 이러한 감각들을 선이나 악으로 추측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46p)

 

나는 한때 행운을 잡았던 사람이었으나, 그것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것이 어떤 것이었는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나는 행복하다. '행복하다'는 것은 내가 나 자신에게 스스로 부여한 것이다. 나는 이제까지 행운의 총아였다. 행운이란 영혼의 선한 성향이며 선량한 감정, 선량한 행위이다.(59p)

 

만일 주위 환경 때문에 평정을 유지하기 힘들면 그 즉시 자기 본성으로 돌아가라. 어떤 상황에서도 강압적인 분위기에 동요되지 말라. 끊임없이 이성을 회복하는 노력을 한다면 마음을 지배하는 능력을 기를 수 있다.(51p)

 

인생이라는 경기장에서도 상대방의 실수에 대해 관용을 베풀자. 약간의 파울을 범했다고 해서 의심이나 악의를 품지는 말자.

이것은 누구나 저지를 수 있는 일이 아닌가?(54p)

 

죽음이란 감각으로부터 얻는 인상과 인식의 정지이며, 욕망을 움직이는 끈이 끊기는 것이며, 사유의 방황, 육체에 대한 봉사 행위가 정지되는 것이다.

맑은 정신으로 그대의 참된 자아를 찾아라.

잠에서 깨어나라 그리하여 그대를 괴롭혔던 모든 것이 꿈에 불과했었다는 것을 깨닫고, 잠든 눈이 아니라 깨어 있는 눈으로 참모습을 보라.(59p)

 

그대는 현재 그대의 몸무게가 120킬로그램에 못미친다고 해서 한탄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더 오래 살 수가 없다고 그대에게 주어진 수명밖에 살지 못한다고 한탄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그대에게 할당된 육체의 무게 이상을 바라지 않는 것처럼 그대에게 할당된 시간의 길이를 만족하라.(69p)

 

그대는 그대 자신의 삶을 새롭게 할 힘을 지니고 있다. 지금까지 봐왔던 사물을 다시 보라. 그대의 삶을 새롭게 하는 힘은 바로 거기에 있다.(73p)

 

미래의 일을 두려워 말라. 그대가 필연적으로 그 일을 당하게 된다 하더라도 그대가 현재 당면한 일에 사용하고 있는 이성이라는 무기로써 맞설 수 있다.(75p)

 

 

괴로움에 찌든 얼굴을 하지 마라. 그런 표정을 자주 지으면 온화함이 사라지고 결국엔 아름다움이나 다정함도 사라져 버릴 것이다. 그것은 곧 괴로움이나 다정함에도 사라져 버릴 것이다. 그것은 곧 괴로움이나 분노는 자연이 준 이성에 어긋난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줄도 모른다면, 더 이상 존재해야 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80p)

 

그대가 소유하지 않은 것을 가지려고 애쓰기보다는 소중한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라. 만일 가장 좋은 것이 없다면 그대가 그것을 얻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노력했는지를 생각하며 감사히 여겨라.

동시에 그 사물에 지나치게 집착한 나머지 그것을 잃어버렸을 때 괴로워지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라.(82p)

 

그대는 오늘 죽은 몸이며,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하라. 그런데도 약간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그것은 덤으로 생각하라. 그 시간을 자연의 순리에 따라 살아라.(87p)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 행복은 본성이 요구하는 대로 행동하면 그 속에서 찾을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한다는 말인가? 그것은 자신의 욕구와 행동의 원천이 되는 원리를 따르면 된다. 그렇다면 그 원리는 무엇인가? 그것은 선과 악에 관련된 것이다. 인간을 정의와 절제, 자유로 이끄는 것이 선이며, 인간을 그 반대로 만드는 것을 모두 악한 것이라는 원리이다.(91p)

목욕이라는 말을 들을 때 당신은 무엇을 떠올리는가?

기름, , 먼지, 더러운 물, 온갖 역겨운 것들..... 삶의 모든 것 역시 그러한 것이다.(104p)

 

오늘 최선을 다하라. 죽은 뒤의 명성을 추구하는 자들은 후세 사람들 역시 그들이 지금 혐오하고 있는 사람들과 똑같은 사람들이며, 후세 사람들 역시 죽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생각하지 못하는 자들이다. 후세 사람들이 그대에 대하여 어떤 말을 하고 어떻게 생각하건 그것이 무슨 위미가 있단 말인가?(111p)

 

거짓이나 위선, 그리고 어떤 오만이나 사치도 경험하지 않은 채 이 세상을 떠날 수 있다면 그야말로 최고의 행복을 누린 삶이 될 것이다. 그대는 진정 악덕의 틈바구니 속에서 살아가기로 결심했는가? 이제껏 경험했으니 이제는 그만 악역으로부터 도피하고 싶지 않은가? 정신이 더럽혀 지는 것은 어떤 오염이나 부패보다도 훨씬 더 유해한 것이다.(119p)

 

온갖 번뇌로부터 벗어나라. 아니 온갖 번뇌를 밖으로 내쫓아 버리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번뇌는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대의 내부 즉 그대의 생각속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122p)

 

건강한 눈이라면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단지 푸른빛만 보고자 한다면 그것은 이미 병든 눈일 것이다. 또한 건강한 청각과 후각은 소리나고 냄새나는 모든 것을 인지할 수 있어야 한다. 또 건강한 위장은 맷돌이 모든 것을 받아 갈아 내듯이 모든 음식물을 소화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와 마찬가지로 건강한 정신 역시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하고, '내 아이만 지켜 수소서' 라든가 '내가 하는 모든 일을 다른 사람이 칭찬하게 하소서' 라고 말해서는 안된다.

그러한 말을 하는 사람의 정신은 푸른빛만 찾는 눈이나 씹기 편한 음식물만 찾는 이와 다를바 없다.(141p)

 

잘리는 나뭇가지는 필연적으로 그 나무 전체로부터 이탈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사람도 다른 사람으로부터 떨어져 나가면 사회 전체로부터 격리되는 것이다. 나뭇가지는 외부의 힘에 의해 잘리는 것이지만 인간은 자기 자신의 증오나 혐오감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로부터 소외를 자초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사회전체로부터 떨어져 나간다는 사실도 알지 못한다.

그러나 인간은 다시 이웃과 하나되어 전체를 완전한 것으로 만들 수 있다. 그것은 신이 인간에게 준 선물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이 자주 일어나면 다시 결합했을 때 전의 상태로 회복하기 힘들어진다. 처음부터 나무와 함께 성장하고 살아온 나뭇가지 역시 접붙인 가지와는 다르다.(146p)

 

예술이란 사물의 본질을 모방하는 것이기 때문에 예술보다 열등한 자연이란 아무것도 없다. 모든 본성을 포괄하는 완벽한 자연은 어떤 예술가의 기술이나 재주에 비교될 수 없다.

여러 가지 기술로 조악한 작품을 만들어 내는 것은 보다 우월한 작품을 만들어 내기 위한 과정이다. 이 과정은 자연도 마찬가지로 거친다. 여기에 정의의 근원이 있으며 이 정의를 토대로 미덕이 존재하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가치도 없는 대상에 골몰하여, 편견에 사로잡힌 어리석은 상태로 만족한다면 결코 참된 정의를 실현할 수 없다.(147p)

 

인간들은 서로를 경멸하면서도 서로에게 아부한다. 서로 남들 위에 군림하기를 원하면서도 상대가 나타나면 굽실거리며 무릎을 꿇는다(15p)

 

소크라테스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묻곤 했다.

"그대는 무엇을 원하는가? 이성적 인간의 영혼인가. 아니면 비이성적 인간의 영혼인가?"

"이성적 인간의 영혼입니다."

"이성적 인간 중에 어떤 이성적 인간을 말하는가? 건전한 인간인가 아니면 불건전한 인간인가?"

"물론 건전한 인간입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그대는 그러한 인간이 되려 하지 않는가?"

"우리는 이미 그러한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그대는 싸우고 말다툼을 하는가?"(156p)

 

신은 인간의 물질적인 외형이나 표피, 불필요한 요소들에 둘러싸여 있는 그 내면의 이성을 바라본다. 왜냐하면 신과 접촉할 수 있는 것은 신으로부터 유출되어 인간의 육체로 흘러 들어간 이성밖에 없기 때문이다.

만일 그대도 신처럼 이성적으로만 생각한다면 많은 걱정거리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대를 감싸고 있는 육신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면 옷이나 집, 명예 따위의 겉치레에는 신경쓰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157p)

 


  책을 읽고 나서도 많은 여운이 남았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한 번 읽고 책장에 두고 묵히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능하다면 책을 생활공간 가까이 두고 언제든 읽는 것도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일과 시작 전에 한 두 문장만 읽어도 하루의 시작이 자기 수양으로부터 시작되는 것 일 테니까요.

 

  그래서 이 책이 이토록 특별했던 이유에 대해서도 궁금해 졌습니다. 앞서 저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철학자이기도 하고 황제라는 것인데요. 철학자가 국가 통치자라니요. 생각만 해도 대단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1500년간의 긴 시간동안 한 국가가 유지 될 수 있는 토대가 되었겠지요. 또한 고대 로마의 시대적 배경과 정치체제에 대해서도 궁금해졌는데요. 그것을 알면 이토록 2000년이 다되는 시간이 지난 지금에도 우리에게 수양서가 될 수 있었던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고대 로마는 1500년 동안의 긴 시간을 유지한 고대 국가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토록 긴 시간동안 한 국가가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스토아철학이라는 사상적 이념을 기본으로 하는 단단한 정신적인 토대가 정치로 이어지고 수많은 정치 지도자들도 많은 대중의 공감을 얻는 중요한 지도 체제가 유지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치 지도자들을 끊임없이 인간 정신과 세상의 이치에 대한 고민 그리고 사색과 회합을 통해 인간의 정신적 고통을 치유하려 애썼습니다. 이러한 정치 지도자들의 끊임없는 내적 고민과 다양한 철학자들의 자유로운 생각의 공유가 긴 역사를 이어올 수 있는 배경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글에서 스토아철학을 설명하자면 글 내용과 거리가 멀어지기 때문에 더 언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한 가지 작가 아우렐리우스에게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수많은 전쟁 속에서 상대 국가를 정복하고 지배를 하더라도 그 국가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문화까지 존중했다는 사실을 주목하고 싶습니다. 자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았든 벌어진 전쟁 속에서 정복한 국가들이지만 다른 민족을 말살하려거나 종속시키려는 시도는 없었다는 것입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일반인들도 정치적으로나 개인적으로 많은 이해관계가 얽혀 서로 다투고 애써 자기 주장을 하기위해 시위까지하는데요. 어느 사회에서도 이런 충돌은 있기 때문에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하고 대화로 풀어나갔으면 하는 생각이듭니다.


국가 지도자나 조직사회에서 리더들의 참고서를 떠나 개인적으로도 매우 좋은 책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가 이 책 <명상록>을 통해 배워야 할 것은 자기 수양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우렐리우스의 개인적인 능력과 노력도 있었지만, 황제로서 전쟁에 나가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보아야 했고, 전란과 패스트와 같은 병원균과의 싸움을 통해 한층 더 깊은 인간의 삶에 대한 고찰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아우렐리우스의 엄청난 철학적 공부와 성찰을 통한 수양이지만, 그가 많은 시간 공부하고 고민한 내용을 우리는 이 책 한권으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내가 아닌 남한테 나의 생각이나 사상을 이야기하기 전에 내가 먼저 타인에게 이해가 되고 올바른 언행을 했는지를 성찰해 볼 수 있도록 이 책의 짧은 한 줄의 글이라도 읽어 보기를 권해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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