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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내소사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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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내소사 방문



엇그제 군산에 내려와서 집에 온 손님 때문에 블로그를 살펴볼 시간이 없었습니다.

제 블로그에 방문하신 이웃님들에게 죄송합니다.


평소같으면 사찰에 방문할 일이 거의 없는데 사실 미국에서 온 처남이 사연이 있습니다.

처남은 작년에 미국 생활 중에 물놀이를 갔다가 사고로 아들을 잃은 가슴아픈 사연이 있습니다.

수영장에서 잠시 엄마가 한 눈을 판 사이 사고를 당한 것입니다.

어린 아이들은 잠깐 사이에도 무슨 위험한 상황을 맞을 줄 모르기 때문에 잠시도 눈을 떼어서는 안됩니다.

처남은 아들을 가슴에 묻고 한국에 있는 내소사에 망자의 위패를 놓고 있습니다.

그리고 첫 번째 손주를 많이 아끼고 예뻐했던 장인어른도 함께 했습니다.

아꼈던 만큼 아직도 기억에 많이 남아 있으신가봅니다.


그래서 제가 군산에 온 다음날인 어제 내소사에 다녀왔습니다.

저는 종교를 갖고 있지는 않지만 처가 식구들이 불교를 믿습니다.

지난 봄에도 내소사에도 다녀갔었는데요.

여행 목적으로 방문하시는 분도 많은데 지인이나 조상님들의 위패를 모신 곳이기 때문에 인사 차 방문하시는 분들도 많아보입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가끔 이렇게 아픈 사연이 있는 날이면 '하늘도 그 마음을 헤아린다'는 우스갯소리를 하고는 하는데요.

어제도 오랫만에 망자가 된 아들을 만나는 처남의 마음을 아는지 내소사에 들어갈 때부터 겨울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보이시나요? 멀리 산 밑에 보이는 운무가 끼어 있습니다.

휴일이기는 한데 코로나와 궂은 날씨 때문에 방문객은 그리 많아 보이지 않습니다.


일주문 앞에서 입장료를 내고요. 


일주문에는 입장료를 받고 코로나 때문에 공무원분들이 입장객들 관리를 하고 계시네요.

일주문 앞으 커다란 느티나무도 함께 찍어봤습니다.


부안 내소사(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인용)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인 선운사(禪雲寺)의 말사이다. 633년(무왕 34)혜구(惠丘)가 창건하여 ‘소래사(蘇來寺)’라고 하였다. 그 뒤 1633년(인조 11)에 청민(靑旻)이 대웅보전을 지어 중건하였고, 1604년(인조 18)청영(淸映)이 설선당과 요사를 지었다.

1902년관해(觀海)가 수축한 뒤 1983년 일주문을 세우고 1985년 대웅보전을 중수하였으며, 1986년 천왕문을 짓고 설선당과 요사를 보수하였다. 1987년 봉래루를 해체 복원하였으며 1988년 요사인 진화사(眞華舍)를 건립하였다. 1995년 수각(水閣)과 종각을 짓고 범종을 조성하였다.

소래사가 내소사로 바뀐 것은 중국의 소정방(蘇定方)이 석포리에 상륙한 뒤, 이 절을 찾아와서 군중재(軍中財)를 시주하였기 때문에, 이를 기념하기 위해서 고쳐 불렀다고 전하나 사료적인 근거는 없다.

현존하는 당우 및 중요문화재로는 보물 제291호로 지정된 대웅보전(大雄寶殿)을 비롯하여 보물 제277호인 고려동종(高麗銅鐘), 보물 제278호인 법화경절본사경(法華經折本寫經), 보물 제1268호로 지정된 괘불 등과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25호로 지정된 요사채, 설선당(說禪堂)·보종각(寶鐘閣)·봉래루(蓬萊樓),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24호로 지정된 삼층석탑 등이 있다.

이 가운데 대웅보전은 1623년(인조 1)에 완공되었는데 그 의장(意匠)과 기법이 매우 독창적인 조선 중기의 대표작이다. 못 하나 쓰지 않고 나무를 깎아 서로 교합하여 만들었다고 하며, 법당 내부의 벽면에 그려진 관세음보살상 등의 그림도 일품이다.

전설에 의하면, 이 건물은 호랑이가 화현(化現)한 대호선사(大虎禪師)가 지었다 하고, 벽화는 관세음보살의 화현인 황금빛 날개를 가진 새가 그렸다고 하는데, 그때의 일화가 지금도 전하고 있다. 또한, 고려동종은 1222년(고종 9)변산 청림사(靑林寺)에서 만든 종인데, 1850년 땅속에서 발굴된 뒤 이 절로 옮겨졌다.

그리고 법화경절본사경은 조선 초기에 이씨 부인이 망부(亡夫)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한 글자를 쓰고 한 번 절하면서 지극한 정성으로 필사한 것이다. 정면 6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인 설선당은 인조 때 승려의 수학 장소로 건축되었고, 봉래루는 1414년실상사지(實相寺址)에서 이건하였으며, 현재 산문(山門)으로 사용하고 있다.

부속암자로는 입구의 지장암(地藏庵)과 절 후방 1.5㎞ 지점에 청련암(靑蓮庵)이 있다. 절 일원이 전라북도 기념물 제78호로 지정되어 있다.


내소사에 방문하면 가장 먼저 반기는 것이 전나무 숲길입니다.

하절기에 방문하면 푸른 나무색이 더 짙게 보이는데요.

겨울에는 검푸른 나뭇잎과 가을을 떨어진 전나무 잎의 진한 피톤치드 향기가 머리 속을 신선하게 해줍니다.



내소사가 좋은 또 하나의 이유는 일주문부터 사찰 경내까지 이어진 길이 일자로 쭉 뻗어있고, 언덕길이 없는 평지라서 어린 자녀들이나 노약자분들도 어렵지 않게 걸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보시는 것처럼 가족들과 함께 방문하시는 분들이 많아 보입니다.


전나무길이 끝나면서 피안교라는 조그만 다리가 나옵니다.

옆에 나무가 벚꽃나무인지 단풍나무인지는 모르겠네요.


경내 입구에는 이렇게 사천왕이 무서운 표정으로 지키구 있구요.


본격적으로 사찰 안으로 진입하면 수백년 된 느티나무가 서 있습니다.

이 느티나무도 보호수인데요. 

지금은 나뭇잎이 없이 앙상하게 말라 있지만, 봄이면 파릇파릇한 나뭇잎이 돋아서 멋지게 마당 한가운데를 장식합니다.


내소사에도 여러개의 보물이 있는데요.

오늘은 자세하게 보지 못하고 나와야 했습니다.


느티나무와 느티나무 옆에 방문객들이 달아놓은 소원줄입니다.


이곳이 부처님을 모셔 놓은 대웅보전입니다.

역시 한식 건물은 정교합니다.

그 중에서 역사학자나 미술학자들이 최고로 치는 예술작품이 있습니다.


바로 대웅보전 문에 달린 꽃살문입니다.

정말 정교하게 세공되어 있습니다.

이것도 세월을 비껴갈 수 없는지 훼손된 곳이 보이네요.


이곳이 망자들의 위패가 모셔진 곳입니다.

처남은 한참 아들의 위패를 찾다가 관계자에게 물어보고서 위치가 바뀌었음을 확인하고 찾았습니다.

안타까운 사고로 자식을 잃은 부모의 마음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겠지요.

한참을 홀로 서서 생각에 잠긴 듯 합니다.


대웅보전에서 바라본 경내 안입니다.


오늘은 이렇게 간단히 방문을 마무리했습니다.


사찰을 빠져 나오니까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있네요.

근처 음식점에서 산채비빔밥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군산으로 향합니다.


신기하게도 군산으로 이동하는 중에 비가 모두 그치네요.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 조심하시고 행복한 연말연시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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