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독서

당신이 옳다(전체 감상문)

728x90
728x90

당신이 옳다(전체 감상문)


사회가 발전하면서 전체적인 생활 수준이 향상된 만큼 항상 밝은 곳이 있으면 어두운 곳이 있기 마련입니다. 우리 사회는 지난 시간 작게는 가족 안에서, 직장에서 그리고 대한민국 안에서의 크고 작은 사건 사고는 전 국민에게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그것은 내가 직접 겪지 않은 일일지라도 언제든 우리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었습니다. 저자는 자신과 관계가 없을 것 같은 사고 당사자들, 그 가족들과 함께 하면서 진정한 소통과 치유가 어떤 것인가를 직접 체험했습니다. 그 시간을 통해 정신과 의사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 우리 사회에 '공감'이란 정의를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이 감상문을 통해 정혜신이 생각하는 '공감'을 짧게 요약해 정리해 보았습니다.

감상문이 길기 때문에 시간적 여유가 없으신 분들은 굵은 글만 읽고 자신의 생각과 비교해 보세요. 

  책은 전체적으로 '공감'에 대한 내용입니다. 사회가 발전하고 복잡해지면서 그 속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사고들이 일어납니다. 그 과정에서 현대인들이 겪는 상처와 치유를 심리적이고 의학적인 접근이 아닌 '공감'이라는 마음으로 소통하고 상처를 치유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목차는 크게 5개의 파트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1 왜 우리는 아픈가

2 심리적 CPR

3 공감

4 경계 세우기

5 공감의 허들 넘기

6 공감 실전

 

  최근 15년을 1970~80년대의 고문 생존자와 자살이 이어지던 해고 노동자 집단, 세월호 유가족 등 여러 형태의 국가 폭력 피해자들과 함께 있었다. 현장에서 그들의 신음 소리를 생생하게 들었고 회복이 불가능할 것 같은 그들의 신음 소리를 생생하게 들었고 회복이 불가능할 것 같은 그들의 내상을 목격했다. 트라우마 현장에선 심리 치유 관련 전문가 자격증이 무용지물이라는 걸 숱하게 목격했다.(13p)

  실제로 재난 현장에는 심리전문가 뿐만 아니라 시민운동가와 자원 활동가 등 많은 사람들이 모인다고 합니다. 그러나 초기 몇 개월이 지나면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은 현장에서 찾아보기 어렵다고 합니다. 현장에서 상황이 정리되거나 패해자들의 상태가 정신적으로 좋아져서 그런 것도 아닙니다. 그 반대로 혼동의 사태가 더 악화 회고 심리적인 상처가 더 드러나는데도 매번 반복되는 일이라고 합니다.

  대신에 "집에만 앉아 있을 수 없어서 무작정 현장에 왔다"는 자원봉사자들은 시간이 갈수록 늘어납니다. 이들은 전문적인 지식이 없어서 무작정 현장에 왔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며 울면서 무슨 일이든 한다고 합니다. 피자해자들을 위해 음식을 만들고 설거지를 하고 청소를 하고, 한없이 무기력하게 느껴지는 자신의 슬픔과 분노, 무력감을 호소하면서도 유가족들 손을 잡고 함께 울었습니다.

  그런데 실질적으로 전문가들보다는 이러한 자원봉사자들의 활동이 피해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전문가들의 매너리즘에 빠진 치료의 목적보다도 자원봉사자들의 조그만 행동이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라는 결정적인 위로가 된 것입니다. 전문가들의 지식과 이론 보다는 현장 경험이 있는 활동가들의 진정한 활동과 위로가 피해자들에게는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은 수령에서 조그만 힘이 되어 주었던 것입니다.

 

  진료실을 찾는 사람들은 버티고 버티다가 의사에게 기댈 수밖에 없겠다 싶은 심정이 되었을 때 병원에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금 자신에게는 타인의 도움이 필요하며 환자 취급을 받아도 상관없다는 마음, 백기투항 하는 심정으로 온다. 그 말을 다르게 해석하면, 진료실에서 의사-환자 관계는 의사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한 관계, 의사 중심의 관계라는 걸 의미한다.(20p)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정신적인 충격이나 상처를 받은 사람들은 자신의 상처를 외부로 알려지는 것을 꺼려하는 것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세월호나 쌍용차 사태처럼 큰 사건이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관계에서 오는 상처는 가족이나 혈연관계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을 겁니다. 그러므로 특히나 타인에게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기를 꺼려하는데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정신적인 상처를 치유하러 정신과에 가는데요. 여기서 의사와 환자의 확실한 갑을 관계가 형성이 되어 근본적인 치유보다는 일상적인 처방 즉, 약 처방밖에는 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누구나 진료실이 아닌 공간에서 누군가를 만났을 때 사람은 자신의 매력을 보이고 자존심을 지키려 애씁니다. 그런 일상의 공간에서 자기 속마음을 털어놓으려면 특별하고도 충분한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저자는 진료실이 아닌 곳에서 사람들의 속마음을 접하면서 '환자'가 아닌 '사람'을 만나며 자신도 의사가 아닌 '사람'으로서 공감을 이야기합니다.

 

  진료실이 아닌 곳에서 사람들의 속마음을 접하며 나는 알게 됐다. 이곳에선 심리적 진검 승부가 필요하구나. 그들은 자신을 환자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었고 나도 당연히 그들을 환자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동안 진료실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환자로 규정하고 의사라는 우월적 위치에 대한 자각 없이 살았던 것이다. 진료실 밖에서 흰 가운이라는 보호막 없이 그들의 속마음을 들으며 그 사실을 확실히 알았다. '환자'라는 틀로만 바라봐도 괜찮은 사람이란 세상에 없다. 그런 시각은 옳지도 않지만 맞지도 않는 말이었다.(21p)

  세상에 많은 직업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처음 직업을 갖고 취직을 하면 의욕이 넘치면서 매사에 최선을 다하려고 합니다. 무슨 일이든 기술이나 경력을 떠나서 매사에 열심히 한다는 순수한 마음을 갖고 시작을 하는데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일이 익숙해지면서 초지일관하겠다는 마음은 희미해지고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나 업무에 기계처럼 움직이지 않나 생각해 볼 일입니다. 흔히 하는 말로 매너리즘에 빠지게 되는 것이지요.

  저자도 정신과 의사로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의사라는 자격을 갖추었습니다. 그러나 세월호나 쌍용차사태 같은 국가의 폭력으로부터 상처를 입은 피해자를 보면서 단조로울 것 같은 일상적 업무에서 생각을 달리하는 계기가 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제 나는 삶의 고통을 질병으로 간주하는 의학적 관점은 잘못됐다고 말할 수 있다. 고통스러운 사람의 속마음을 보듬고 건강한 성찰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은 질병 전문가인 정신과 의사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는 것이 진정한 전문가적 시선과 태도다. 그런 토대 위에서 우리 모두가 자기 스스로를 돕고 가족이나 이웃도 직접 도울 수 있는 적정한 심리학이 가능하다고 나는 믿는다.(24P)

  이게 진정으로 정신적인 상처를 받는 사람에게 다가서는 진정한 치료자의 마음자세가 아닌가 싶습니다. 생각해보면 의사가 정신적으로 힘든 사람에게 가장 쉬게 처방을 내릴 수 있는 게 치료라는 이름하에 약을 처방하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진정으로 환자의 정신적인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상처에만 집중하지 말고 그 상처의 원인이 무엇인지 환자의 상태는 어떠한지 세심하게 살피는 것이 우선이 되어야겠지요. 그래서 저자는 우리 일상에서 누구나 이웃의 아픔을 이해하고 같이 일상을 나눌 수 있는 치료를 적정 심리학으로 명명하고 이의 기본 토대에는 '공감'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 책의 전반적인 내용이 공감에 맞추어져 있고, 막연한 공감을 넘어 일반인도 누구나 일상에서의 상처를 보듬고 제대로 된 공감을 알게 해줍니다.

 

만성적 '' 기근에 시달리는 사람들

   내 감정은 오로지 ''. 그래서 감정이 소거된 존재는 나가 아니다. 희로애락이 차단된 삶이란 이미 나에게서 많이 멀어진 삶이다. 그렇게 감정을 억제하고 투명인간 취급을 당하며 존재가 거의 희미해진 삶의 종착역은 어디일까. 소리 안나는 총에 맞는 사람처럼 조용히 허물어지는 일이다. 청년 고독사가 그 극단적 결과다.(57P)

  책에서는 연예인의 갑작스런 자살 문제, 노년 고독사, 청년 고독사를 예로 들고 있습니다. 성공한 연예인의 경우나 청년들의 경우 신체는 한 사람이지만, 내 안에 ''의 인격체와 대중이나 사회가 원하는 ''라는 인격체가 공존하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다시말해 연예인의 경우 스타로서의 성공도 매력적이고 온전한 ''의 존재감이 있을 때 진정한 내 삶이지만, 사실은 내면의 욕망과 대중이 원하는 스타로서의 또 다른 ''가 존재함을 깨닫게 됩니다. 또한 스타는 어느 순간 자신이 가진 막대한 자산이 전부 너의 이름으로 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지금은 마음껏 인출해서 쓸 수 있지만, 너의 눈밖에 벗어나는 순간부터 한 푼도 인출할 수 없으며, 그 즉시 천중 벌거숭이로 겨울벌판에 버려지는 신세가 된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한 인격체 안의 너와 내가 겨루다가 서서히 나를 지워 나가며 자기 소멸의 길로 접어들며 병이 듭니다. 하나의 몸에 두 개의 인격이 존재하는 스타들이 공황장애를 많이 앓는 이유이기도합니다.

 

  직장 생활이든 감옥 생활이든 부자든 빈자든 모든 사람은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그럼에도 어디서 누구를 만나든 존재 자체에 대한 주목이나 집중을 받는 경험이 적으니 사람들은 아플 수밖에 없다. 충전기를 한 번도 만나지 못한 배터리처럼 내 존재 자체가 계속 방전만 계속하다 꺼져간다.(69P)

  누구든 가정이 있고 직장에서는 관계를 맺고 세상을 살아갑니다. 하지만 존재에 대한 주목이 삶이 핵심이 되지 못한다면 현실에서는 아무 쓸모없는 방황하는 미아나 다름이 없겠지요. 일반인에게는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보이는 연예인이나 남부러울 것 없을 것 같은 재벌가 사람들이 공황 장애를 겪고 종국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이유도 전혀 무관하지 않아 보입니다. 가만 보면 사회적인 문제 뿐만아니라 가정에서도 다툼이 많은 부모 밑에서 성장하는 아이들이 겪는 가정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공감의 외주화. 남에게 맡겨버린 내 마음.

   이 글에서는 평소 냉전 중에 있는 한 부부의 우울중에 걸린 중2학생이 자살충동까지 느낀다는 상담교사의 말을 전해들은 엄마와의 소통에 관한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상황이 심각함을 느낀 엄마는 아이를 데리고 정신과 병원으로 오고가며 아들과 교감을 합니다. 그러던 중 아이는 점점 상황이 호전됨을 인지합니다.

  아이는 자기 존재의 상태를 주목해주고 알아주는 사람을 찾지 못한 채 기진맥진한 상태로 발견된 것이다. 그런데도 아이 옆의 어른들은 수건돌리기 하듯 아이의 고통을 다음 사람에게 순차적으로 넘기고 있었던 셈이다. 상담 교사는 부모에게, 무모는 정신과 의사에게, 정신과 의사는 약물치료의 다음 만남으로 공을 넘겼다. 이런 행태는 '일상의 외주화'.(76p)

  저자는 아이의 고통을 알게 되는 순간 전문가를 검색하기 전 엄마가 할 일은 아이에게 먼저 묻는 것이라고 합니다. 전문가들만 알 수 있는 특별한 심장질환이나 유전 질환 문제가 아니고 내 아이의 마음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는 질병이 아닌 일상의 영역에선 사람에 대한 자연스럽고 상식적인 반응이 때로 가장 효과적인 치유가 될 것입니다. 그것이 사람의 마음에 더 빠르게 스미고 와 닿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존재에 대한 문제는 가정적인 문제가 원인이 되는 듯 싶습니다. 그 속에서 누군가는 상처가 되고 치유되지 못하고 터지게 되면 불행한 결과로 나타나게 됩니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구성원중에 어느 한 사람도 이런 사태에 대한 인지를 못한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전문가를 찾기보다 갈등을 없애고 서로에게 많은 교감을 할 수 있어야 되고 그 속에서 많은 대화도 있어야 되겠지요.

 

''가 희미해질수록 존재 증명을 위해 몸부림친다.

  영영 주목받지 못할 존재에게 살아보라는 말은 산소 없는 곳에서 숨 쉬고 살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생존이 불가능하다. 실력이나 재능이 뛰어나지 않고 비상한 머리, 출중한 외모가 없어도 그것과 상관없이 존재 자체만으로 자신에게 주목해 주는 사람이 한 명은 있어야 사람은 살 수 있다. 생존의 최소 조건이다. 이해관계 없이도 무조건 나를 사랑하고 지지해주는 가족 같은 관계, 최소한 나를 의식이라도 하는 사람이 세상에 반드시 존재해야하는 이유도 그때문이다.(93p)

  집회에 나오는 태극기 부대의 노인들, 인터넷 상에서 무절제하게 폭력적인 댓글이나 글을 쓰는 일베, 청소년들의 일탈 모두가 공통점이 하나 발견이 됩니다. 이런 상식 밖의 행동을 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가정에서부터 존재감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집밖으로 나와 자기 존재감을 극대화 하는 행동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정상적인 가정생활을 하는 사람들한테는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일수도 있는데요.

  예를 들어 태극기부대에서 폭언과 폭력을 행사하는 노인의 경우 지난 과거를 열심히 살아 자식들 교육시키고 노년이 됐지만, 가정에서 소외받고 자기 존재감이 없어지는 경우라고 합니다. 이도 저도 하지 못하는 반대의 경우는 노년고독사로 사회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자가 현장에서 이분들을 보고 대할 때는 먼저 자기 존재감을 확인시켜주는 일이라고 합니다. 현장에서 폭력이나 폭언하고는 전혀 관계없는 이야기들입니다. "요즘 어떠세요. 고향은 어디세요"같은 최대한 사적인 이야기로 말을 하다보면 내면의 ''와 만나게 되고 문제의 원인이 본인에게만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고 합니다.

 

심리적 CPR을 행해야 하는 정확한 위치는.

  저자는 이런 정신적인 상처를 치유하는 행위를 심리적 CPR이라고 말합니다. 상처가 곪고 터지기 전에 정신적으로 치유를 해야 한다는 말인데요. 상처 자체보다 상처에 대한 느낌과 태도가 더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내 상처의 내용보다 내 상처에 대한 내 태도의 느낌이 내 존재의 이야기다. 내 상처가 ''가 아니라 내 상처에 대한 나의 느낌과 태도가 더 ''라는 말이다내 느낌이나 감정은 내 존재로 들어가는 문이다. 느낌을 통해 사람은 존재에 더 밀착할 수 있다. 느낌을 통해 사람은 자기 존재에 더 밀착할 수 있다. ''가 또렷해져야 그 다음부터 비로소 내 삶을 살아갈 수 있다.(105p)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함께 살아가지만 여러 사람이 같이 있을 때는 조연일지라도 언제나 자기 자신의 관점에서는 주연이라는 생각이 중요해 보입니다. 또한 가족이나 동료가 있다면 이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동지라는 생각으로 서로의 존재감을 수시로 확인해 주는 것도 서로에게 세상을 살아가는 힘이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자신의 고통에 진심으로 주목하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 그것이 결정적요인입니다. 말이 아니라 내 고통을 공감하는 것, 존재가 치유의 핵심이 됩니다. 즉 자신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 알면 사람은 지옥에서 빠져나올 힘을 얻습니다.

 

사람을 살리는 힘

  공감은 힘이 세다. 강한 위력을 지녔다. 쓰러진 소도 일으켜 세운다는 낙지같은 힘을 지녔다. 공감은 돌처럼 꿈쩍 않던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경각에 달린 목숨을 살리는 결정적인 힘도 가졌다. 치유의 알파와 오메가가 공감이라고 나는 믿는다. 삶의 생생한 저자거리에서 상처받은 삶들과 마음을 섞고 감정을 공유한 끝에 얻은 깨달음이다.(115p)

  전문적인 의학지식으로 나오는 생각은 아닌 생생한 현장에서 치유를 경험한 가장 기본적이고 근본적인 치유의 방법을 저자가 얻은 것 같습니다. 흔히 말하는 우울증이나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약물치료로 근본적인 치료를 했다고 할 수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또한 사고 현장에서 피해자나 유가족들과 함께 눈물을 흘리고 시간을 보내는 자원활동가들이 전문가는 아니지만 진정한 치유의 힘이 되어주는 것과 같습니다. 상처에 소금을 뿌려대는 고관대작들이 이런 마음을 알까요? 오직 자신들의 안위와 기득권의 위치에서는 그저 귀찮은 존재들이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너를 공감하다 나를 만난다

  공감은 상대를 공감하는 과정에서 자기의 깊은 감정도 함께 자극되는 일이다. 상대에게 공감하다가 예기치 않게 지난 시절의 내 상처를 마주하는 기회를 만나는 과정이다. 이렇듯 상대에게 공감하는 도중에 내 존재의 한 조각이 자극받으면 상대에게 공감하는 일보다 내 상처에 먼저 집중하고 극복해야 한다.(120p)

  사림은 누구나 살아가는 과정에서 상처를 입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처가 있는 피해자들에게 다가서고 공감할 수 있는 것이겠지요. 상대를 공감하다보면 내 상처가 드러나서 아프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나도 공감 받고 치유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공감하는 사람이 받게 되는 특별한 선물입니다. 다시말해 내 상처도 치유하고 성찰하는 계기도 될 수 있겠네요.

 

공감의 과녁. 억누른 상처를 치유하는 메스이자 연고.

  상처는 속마음에 꼭꼭 숨겨져 있다. 드러내면 더 불리해지고 더 수치스러운 일이 생길 것이라는 피해 경험 때문이다. 상처를 꺼냈다가 차가운 무관심이나 예상치 못한 비난을 경험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깊숙히 묻고 살지 않을 것이다. 상처 드러내기와 관련해서 피해의식이 아니라 피해 경험이 있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눌러둔다.(150p)

  무엇보다 상처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로 했다면 심중한 고민을 했을 것입니다. 언제나 그렇듯 나의 부끄러운 과거나 상처는 누구든 남에게 보여지는 게 쉽지 않습니다. 돕는자가 되기로 했다면 절대 상처가 되는 대화를 해서는 안지겠지요.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의 마음에 대해 ''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돕는 자로서의 ''견해를 말하거나 주장하기보다 ''에게 주목하고 그 마음에 대해 그에게 물어야 합니다. 그의 세세한 속마음은 그 사람만이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저자는 공감함에 있어서 절대로 '충조평판'을 하지 말라고 조언합니다. 충고, 조언, 평가, 판단은 대화가 단절될 뿐만 아니라 상대에게 더 깊은 상처를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 보호를 잘 하는 사람이 타인도 도울 자격이 있다.

  상대방은 힘들고 다급해 보이는데 내가 피곤하고 심란해서 공감하기 어려울 때도 있다. 이때도 우선은 자기 보호다. 자기보호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상대가 힘들어 보인다고 개입하는 것은 수영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물에 빠진 사람을 보고 다급한 마음에 무작정 뛰어드는 것과 같다. 둘다 불행해진다.(191p)

  사람의 상처를 치료하다가 도우미로 나선 당사자가 도리어 피해를 입는 경우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경험이 많은 노련한 상담일 경우는 자기 보호를 하면서 상대에게 치유의 과정을 주도할텐데요. 그렇지 못할 경우 상대의 상처에 자신의 과거의 상처가 덮어져 정신노동이 되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저자도 초보 시절에 겪었던 사실이라고 말합니다.

 

헌신과 기대로 경계를 넘지 마라

  기상천외한 갑질행태가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져 나오는 우리 사회에서도 을의 건강한 경계 설정은 가능하다. 갑질이 넘쳐나는 사회라서 오히려 경계에 대한 개념이 반드시 필요하다. 국경이 무너진 나라에서 평화를 기대할 수 없듯 경계에 대한 개념이 없으면 결국 살아남지 못한다.(199p)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흔히 겪는 문제가 갑질 상사 문제가 아닐까싶습니다. 요즘은 세대가 자기주장을 많이 하는 편이기는 하지만 아직도 직장 내 상하관계에서 상사에게 자기의 의견을 자신있게 제시하기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렇다고 회피나 충성이 답일까요? 계속되는 갑질은 당하는 부하직원 입장에서는 크나큰 스트레스이며 나중에는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그렇다면 상사가 적응할 수 있는 내 존재감을 드러냈는데도 불구하고 전혀 통하지 않는 삶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자기에 완벽히 맞추지 않으면 참지 못하고 어떤 관계도 유지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런 삶이라는 판단이 든다면 그 관계는 내가 먼저 끊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그런 관계를 유지하면 자신이 망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 관계를 끊는 것이 자기를 구하고 지키는 일입니다.

  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은 그 관계가 기쁨과 즐거움이거나 배움과 성숙, 성장의 기회일 때입니다. 그것이 관계의 본질이고 끊임없는 자기확대와 자기혐오를 채워진 관계에서 배움이 성숙은 불가능합니다.

 

'다정한 전사'가 되어

  공감이 필요한 순간에는 온 체중을 싣는 다정한 공감자여야 하지만 공감을 방해하는 사람이나 상황을 마주했을 때는 전사처럼 싸워야 한다. 그래야만 종래 공감에 도달할 수 있다. 그게 온전하고 입체적인 공감자다.(210p)

  공감까지의 길목에는 여러 허들이 있습니다. 가족이나 타인의 몰이해, 무관심, 비난일 때도 있고 거대한 벽 같은 사회 구조적 문제가 허들인 경우도 잇습니다. 상처 입은 당사자 자신이 공감의 허들일 대도 많습니다. 공감을 방해하는 허들이 무엇이든 그것을 만나면 단호하게 맞서 싸워야 합니다. 그렇게 허들을 넘어설 수 있어야 홀가분하게 공감을 경험하고 자유를 얻는다. 그래서 공감자는 '다정한 전사'라야 한다고 합니다.

 

타인을 공감하기보다 어려운 것

  타인을 공감하는 일보다 더 어려운 것은 자신을 공감하는 일이다 자신이 공감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타인에게 공감하는 일은 감정 노동이든 아니든 공감하는 시늉이라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자기를 공감하는 일은 시늉할 수 없다. 남들은 몰라도 자기를 속일 방법은 없다.(272p)

  누구든 타인을 공감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문제가 자극돼 떠오르고 뒤섞이면 혼란에 빠집니다. 그때의 혼란은 자기 치유와 내면이 성숙을 위한 통과 의례 같은 반가운 혼란이 됩니다. 어떤 종류이든 혼란은 힘듭니다. 에너지 소모도 극심합니다. 그럼에도 나에 대한 혼란은 반가운 손님입니다.

  내 상처가 치료되지 않았는데 남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일 것입니다. 내 아들이 자신과 같은 상처나 더 좋은 길을 가게하기 위해 자신의 과거에 비추어 아들이 원하는 길이 아닌 자신의 길을 가는 엄마가 되어서는 안되겠지요. 과거의 자신의 상처를 정확히 판단하고 현실에 맞게 아들과 공감을 하는 것이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더 나은 미래를 향하는 길이 될 것입니다.

 

 

전체 감상문

 

  우리가 상처라고 하면 육체적인 손상이 있는 상처가 있고 정신적으로 크나큰 충격을 받아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운 정신적인 상처가 있을 겁니다. 사람이 살면서 관계 속에서의 갈등으로 상처를 주고받고 살게 되는데요. 책을 읽으면서 생각되는 것은 인간은 혼자일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은 유교적 정서가 강한 나라에서 고부갈등과 가정에서의 갈등, 사회적으로는 겪는 많은 관계가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받는 이유가 될 것입니다.

  필자 같은 경우는 정신과 치료에 대해 크게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환자나 의사들이 겪는 문제들에 대해서는 평소에 생각해보지 못하고 살아왔는데요. 환자들의 정신적인 고통도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정신과의사라는 직업이 단순히 치료가 목적인 존재로 살아가기도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사람의 환자가 아닌 다수의 환자가 서로 다른 문제로 병원을 방문합니다. 그러므로 진정 직업적인 의식이 없다면 그야말로 감정노동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직업으로서의 정신과의사의 업무가 쉽지 않아 보입니다. 본문에서 정신과 의사가 일상의 외주화로 환자에게 일상적인 약물치료를 권하는 것도 이해가 안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 점에서 저자인 정혜신님의 적정 심리학은 의술이 직업적인 한계를 뛰어 넘은 진정한 인술로 평가하고 싶습니다. 육체적인 치료든 정신적인 치료든 의사의 정성을 담은 치료가 상처를 보다 빨리 아물게 할 수 있고 정상적인 일상으로 빨리 돌아갈 수 있는 진정한 치유가 아닌가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정혜신님의 글 중에 체중을 실은 공감이란 문구에 큰 감동이 글로나마 전해져 오며, 정신과의사가 아닌 마음 따뜻한 사람의 정을 느끼고 공감해 봅니다. 또한 일상에서 가볍게 사용하던 공감이 일상적인 공감을 넘어 깊게 다가오기는 처음입니다. 정신적인 고통을 겪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며 많은 시간을 함께하며, 고민하고 그 고통의 상처를 나누며 공감을 같이한 정혜신님에게 경의를 표하며 글을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728x90

'독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위대한 개츠비(전체 감상문)  (10) 2021.01.22
어느 괴팍한 할머니의 시  (10) 2021.01.16
나는 잘 살기 위해 인문학을 공부한다  (15) 2021.01.04
군산 복성루  (16) 2020.12.30
마음의 불을(전체 감상문)  (15) 2020.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