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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로 가신 외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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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가 막 끝난 그제 가족들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외할아버지가 별세를 했다는 전화였습니다.
향년 99세.
장수를 하셔서 호상이라고는 하지만 먼 기억속의 외할아버지는 필자에게 더 없이 특별하게 다가왔습니다.
외손자지만 건장하게 사회생활을 하면서 이런저런 핑계로 살아생전 자주 찾아가보지 않아 미안하고, 명절날인데도 불구하고 인사도 제대로 못드린 점이 한없이 죄스럽게만 느껴졌습니다.

소식을 접하고 여왕님과 함께 바로 장례식장을 찾아 갔습니다.
장례식장 입구에 외할아버지의 영정사진과 함께 등록되어 있는 익숙한 상주이름이 보이고, 그 아래 필자에게 익숙하지 않은 손주, 손녀, 외손주들까지 모두 등록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때서야 저는 "아, 나도 이 집안의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 중의 한 사람이었구나!"라는 소속감과 함께, 외가집 가족들에게 미안함이 느껴졌습니다.

핑계라면 핑계겠지만, 필자는 본가 쪽의 원만하지 못한 가족관계 때문에 한 동안 가족들과 자주 대면하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 이유때문에 외가집 가족들과 가까지 지내지 못한 게 핑계가 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자 "내가 잘못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욱 안타깝게 생각되었던 것은 과거 필자의 어머니를 포함한 육남매의 이모들의 수다로 떠들썩했던 집안이, 이제는 두 분의 이모와 한 분의 외삼촌만이 상주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모두가 상중임에도 선한 인상은 항시 얼굴에서 떠나지 않았는데요. 이를 보는 필자의 마음은 마음 깊은 곳에서 울컥한 마음이 올라왔습니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일 년에 명절날이라도 찾아 뵈었더라면, 그렇게도 힘들다면 어머니 제사 때문에 시골에 올 때 한번이라도 찾아 뵈었더라면 하는 후회가 밀려왔습니다.

필자가 겪어 본 살아 생전 외할아버지는 어렸을 때부터 연세가 지긋하셨으며 최근까지 어디에도 악의는 없으시고 인자하셨으며 선했습니다. 그래서 그랬을까요. 외할아버지와 가족관계를 맺으신 외할머니, 외삼촌, 어머니를 포함한 다섯 분의 이모들까지 얼굴에는 항상 미소띤 얼굴에 한 순간이라도 화를 내거나 분노를 하는 걸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외가 식구들과 지나간 과거를 생각해보면, 가족들이 모이면 언제나 웃음이 넘치고 화목했고 따뜻했습니다. 그런데 그때는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모들이나 외삼촌도 그 긴 수십년의 인생을 살면서 즐거운 일만 있지 않았을텐데, 얼굴에 악의는 없고 선한 인상만 남아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부처님과 예수, 성모마리아를 섬기는 독실한 종교신자들도 아닙니다. 그래서 더 대단하고 존경스럽게 생각됩니다. 분명 인생에서 그분들도 즐거운 일만 있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지요.


필자가 오랜세월을 살지도 않았습니다. 알량한 내 자신의 인생을 돌아봐도 좋은 사람도 많았지만, 중요한 선택의 순간이거나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 또는 조그만 이해관계 속에서 주위 사람들한테 피해를 주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나보다 인생을 더 살아오신 외할아버지와 이모, 삼촌들은 상을 치르는 동안에도 누구한테나 정중했고, 자신이 피곤하다고 엷은 미소는 흐트러짐이 없었습니다.


세상을 전투적으로 또는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한테는 저의 외가집 가족들이 바보스럽다고 이야기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분들은 사람이 너무 착하고 선하면 수많은 사회적 이해관계 속에서 어려움과 이용만 당한다고 말하는 분들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한 때 필자도 그 말에 공감을 할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말도 그 사람의 인생의 테두리 영역 안에서 생각했고, 그 사회가 더 성숙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극단적인 생각이지만 자신이 전쟁터에 있다면 어쩔 수 없이 내가 살기위해 살인을 해야되고, 자신이 정글이나 망망대해에서 홀로 남겨져 있다면 생존을 위해 다른 동물들을 사냥하고 식량으로 삼아야 합니다. 분명 그 상황이 되면 필자인 저도 그렇게 하겠지요.


그러나 저는 외할아버지와 외가 가족들에게 애덤 스미스가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고자하는 중요한 메세지를 보았습니다.

생각하면 안정적이고 전체적인 생각의 수준이 높은 사회에서 선한 사람의 선한 영향력은 전쟁터나 생존의 현장에서의 극단적이고 자기 주관적인 생각과는 크게 찾이가 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한 사람이 한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서 많은 경험을 해야 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좋은 생각과 행동으로 살아가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애덤 스미스가 <도덕감정론>에서 말해듯이 나 하나의 조그만 선한 영향력이 전체 사회에 전파되어 사회 구성원 전체가 그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사람은 인생을 마치는 임종의 시간에도 그 사람의 얼굴에서 그 사람의 인생이 보인다고 합니다. 전쟁처럼 치열하게 삶을 살아온 사람이 있는 반면, 삶이 어떻게든 매순간 시험에 들게 했을 상황에서도 외할아버지처럼 온화한 미소를 잃지 않는 분이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할아버지와 임종을 함께한 시간이 더욱 안타깝고 죄송스럼게 생각됩니다. 그 죄송한 마음이 장지에서 상중의 상황이 종료되고 집으로 올때까지 무겁게 받아들여지면서, 나 또한 악한 마음보다는 선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남은 생을 더 진중하면서 미소를 잃지 않는 삶을 살아보겠다고 혼자만의 다짐을 해 보았습니다.


외할아버지가 다음 생에는 천사가 되길, 꽃이 되길, 새가 되길, 별이 되길,
하늘에 계신 어머니와 이모들과 다시 만나 다정하게 피어있는 꽃들처럼 함께 피어나길 빌어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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