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길 비가 온 뒤 상큼한 풍경

요즘 매일 걸어서 출퇴근을 하고 있는데요.

퇴근시간이 되어 하늘이 비가 올까 말까 고민하는 듯한 애매한 날씨가 되었습니다.

한쪽에는 파란 하늘, 다른 한쪽에는 먹구름.

한참 고민을 합니다.

걷다가 비가 올까? 아니면 그냥 그대로 맑아질까?

그래도 오늘은 하늘보다, 비가올지 않을 거라는 필자의 육감을 믿어 봅니다.

 

그런데 왠 걸요.

회사 밖을 벗어나 15분 쯤 지났을까요?

한 두방울 떨어지는가 싶더니, 빗방울이 점점 굵어집니다.

그래서 '지나가는 비겠거니` 하고 주위를 둘러보니 비를 피할 곳이 없는 대로변이었습니다.

버스 정류장이라도 있으면 좋은데 그것도 없고. ㅠ

한참을 비를 맞으며 그냥 걷습니다.

 

버스 정류장에서 본 대로

다행히 빠른 걸음으로 10분쯤 걸었더니 비를 피할 수 있는 버스 정류장이 나왔습니다.

비는 더욱 세차게 내리고,

이곳에서 조금 기다렸다가 비가 그치면 다시 걸어가고, 비가 그치지 않고 버스가 오면 버스를 타고 갈 생각이었습니다.

다행히 다시 15분쯤 그냥 내리는 비와 지나가는 차를 보고 서 있었더니 비는 그치기 시작합니다.

 

비가 올 때는 "아고 참! 하늘도 무심하시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자동차를 타거나 자전거를 탈 때 보지 못했던 신선한 풍경을 보게 되었습니다.

비가 온 뒤 깨끗한 풍경과 가을 신선한 공기와 함께 느낄 수 있는 상큼한 풍경을.

 

마을 텃밭 김장배추

민가 텃밭에는 보기만 해도 먹음직한 김장배추가 속이 꽉 차게 자라고 있고요.

 

배추밭 옆에는 싸리 잎에는 은구술이 떨어질 듯 말 듯 정말 보기 좋게 맺혀 있네요.

어릴 적에 시골집에서 학교까지 매일 걸어서 보던 익숙한 풍경이었는데, 이래저래 빠른 교통수단 때문에 이런 것도 수십 년 간 보지 못하고 살았네요.

이런 걸 보고 동요를 짓는 작가님들도 시인 못지않은 감수성을 지니신 것 같습니다.

평범한 물방울을 '은구슬 옥구슬'이라고 하다니....ㅎ

 

매일 지나면서 보던 벤치도 비가 온 뒤에는 더 운치 있어 보입니다.

 

보는 풀잎 나뭇잎마다 옥구슬이.

 

호랑거미

나무 사이에는 커다란 호랑거미가 거미줄을 치고 가을 마지막 먹이가 될 희생자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풀잎 콩잎도 예쁘지만 옥에 티가 하나 있네요. 

 

가을 벚꽃나무

봄에 제일 일찍 꽃을 피웠던 벚꽃나무도 비 온 뒤 더욱 선명한 잎으로 눈을 멈추게 합니다.

 

공원

비온 뒤 공원 풍경과 몇 그루의 소나무, 멀리 보이는 뭉게구름도 몽환적인 느낌을 들게 합니다.

 

가을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국화도 집에 가는 발걸음을 멈추고 시간을 지체하게 만듭니다.

 

엊그제 금방 벤 것 같은 논도 진한 벼 풀냄새로 콧 속 깊숙이 향긋하게 전해져 옵니다.

그냥 한 참을 이 신선한 냄새 맡으면서 서 있었습니다.

 

길가 갈댓잎도 그냥 지나칠 수 없게 만드네요.

 

매일 지나다니는 길인데도 비 온 뒤에는 정말 다른 세상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하게 만듭니다.

햇빛의 역광이 이렇게 신기한 풍경을 만들어 내네요.

 

사진을 전문으로 촬영하는 작가님들이 괜히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게 아닌가 봅니다.

잠시 비를 맞으며 하늘을 원망하기도 했지만,

수십 년을 잊고 지내왔던 풍경을 걸으면서 다시 보게 된 하루였습니다.

 

인생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습니다.

매일 같은 생활이라도 잊고 있었던 것, 보지 못했던 것, 알지 못했던 것을 발견하는 즐거움은 새로운 것을 찾아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만큼이나 크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는 하루였습니다.

 

세상이 좋아져 편하고 빠르게 이동해서 휴식을 하고, 또 다른 무언가를 찾아 바쁘게 시간을 보내다가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는 하루가 되었습니다. 이런 즐거움을 찾아내는 것도 일상의 큰 행복이 아닌가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행복하고 즐거운 가을날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