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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책 <죽음의 수용소에서> 전체 강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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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쓰여진 책입니다.

단순힌 최악의 상황이나 경험을 쓴 게 아니라 그 경험과 시련을 통해서 우리 인간이 가져야 할 삶의 기본적인 가치를 생각해보게 합니다.

 

프랭클 박사는 사람이 자기 운명과 그에 따르는 시련을 받아들이는 과정, 다시 말해 자기 십자가를 짊어지고 나가는 과정은 그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 삶에 보다 깊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폭넓은 기회를 제공한다고 합니다. 그 삶이 용감하고 품위 있고, 헌신적인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이와는 반대로 자기 보존을 위한 치열한 싸움에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잃고 동물과 같은 존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여기에 힘든 상황이 선물로 주는 도덕적 가치를 획득할 기회를 잡을 것인가 아니면 말 것인가를 결정하는 선택권이 주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이 결정은 그가 자신의 시련을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드느냐 아니냐를 판가름하는 결정이기도 합니다.

  수감자 중에서도 아주 적은 사람만이 충만한 내면의 자유를 지키고, 시련을 견딤으로써 얻을 수 있는 가치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단 한 가지 예만으로도 인간이 지닌 내면의 힘이 외형적인 운명을 초월해 그 자신의 존재를 높인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데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사람은 비단 강제수용소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도처에서 인간은 운명과, 그리고 시련을 통해 무엇인가를 성취할 수 있는 기회와 만나게 됩니다.(본문 중에서)

 

  여러 장르의 책을 읽는다는 것은 독자가 저자의 생각과 철학을 공유하는 것입니다. 책을 쓴다는 것 자체가 많은 지식과 경험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어떤 저자가 되었던 그 사람의 인생을 간접 경험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책을 읽는 독자로서 좋은 책을 만난다는 것은 좋은 스승을 만나는 것과 같고, 저자의 새로운 가치관을 만나 지금까지 살아온 가치관이 다시 재정립되기도 하기도 합니다. <죽음의 수용소> 역시 필자가 만난 많은 책 중에서 그런 책이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여러 훌륭한 책들을 만났지만, 이 책이 그만큼 독자로부터 더욱 공감이 가는 것은 저자인 빅터 프랭글 박사가 이론이 아닌 자신에 직접 벌겨벗겨진 최악의 시련을 겪은 체험과 경험을 토대로 쓰여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책을 읽는 독자라면 수많은 명저들이 있지만 이 책 또한 빼놓지 말고 읽어야 할 명저로 모든이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입니다.

 

 

지은이 소개

 

  빅터 프랭클은 빈 의과대학의 신경정신과 교수이며 미국 인터내셔널 대학에서 로고테라피를 가르쳤습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학과 아들러의 개인심리학에 이은 정신요법 제3학파라 불리는 로고테라피 학파를 창시했습니다.

  빅터 프랭클1905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났고, 빈 대학에서 의학박사와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3년 동안 다카우와 다른 강제수용소가 있는 아우슈비츠에서 보냈습니다. 1924년 국제심리분석학회의 잡지에 글을 발표한 이후, 27권의 저서는 일본과 중국을 포함한 세계 19개 언어로 번역되어 읽히고 있습니다.

  이 책을 쓴 결정적인 이유가 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말기에 부모님과 아내, 동생들과 함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수감되었다가 이를 경험으로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집필하게 됩니다. 저자는 누이를 제외한 모든 가족들을 잃고 1945년 종전과 함께 수용소에서 해방되었습니다. 그는 정신과 의사답게 매우 담담하고 사실적으로 수용소 생활에서의 고통과 그 고통을 이겨내는 과정들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책 내용 살펴보기

 

  책을 처음 접하는 분들이라면 죽음수용소라는 말이 주는 무거운 느낌에 읽기를 주저할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단순히 수용소에서 비극과 처절함이 아닌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왜 우리가 살아가야 할 충분한 의미가 있는지를 깨닫게 하는 책입니다. 그것은 빅터 프랭클이 매일 죽음의 수용소에서 무엇이 과연 수감자들로 하여금 삶에 대한 의지를 놓지 않게 만들었지에 대한 현실적인 답을 제시해 주기 때문입니다.

 

 

  이 책이 단순히 강제수용소에서의 경험만 집필했다면 단순히 제2차 세계대전속에서의 지옥같은 경험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책이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받고 영향을 끼칠 수 있었던데에는 제2부가 추가되었기 때문입니다. 1부가 강제수용소에서의 처절한 경험과 체험을 썼다면, 2부 로고테라피의 기본 개념은 제1부 강제수용소에서의 체험과 경험을 바탕으로 도출해낼 수 있는 교훈과 깨달음을 요약해 놓은 것입니다.

  단순히 유태인 수용소에서의 처절했던 경험을 전하는 책이 아니라, 하루하루 죽음과 맞닥뜨리는 수용소 생활속에서 무엇이 과연 수용자들로 하여금 생존과 삶에 대한 의지를 놓지 않게 만들었는지에 대한 답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다시말해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삶과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책입니다. 따라서 이 책은 수용소를 경험한 사람들이 아니더라도 현재의 삶이 절망적인 삶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나 삶의 체념상태인 분, 삶에 대한 희망을 잃어버린 분들이 읽어보면 좋은 책이라고 생각됩니다. 바로 이에 대한 답과 삶의 의지를 빅터 프랭클 박사는 로고테라피라고 정의했으며 이를 제2부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도살장 아우슈비츠에 수용되다

  유태인들을 싣고 밤낮 없이 달려 온 아우슈비츠행 기차에는 프랭클 박사와 같은 지식인도 있었고, 부유한 기업인, 명망높은 정치인 등 남녀노소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도착하자마자 열차에 탔던 90%의 사람들은 곧바로 가스실로 끌려가 죽음을 맞게 됩니다. 그나마 노동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건강한 사람들 나머지 10%의 사람들은 짐승처럼 온몸이 발가벗겨진 채 털이 깍이고 이름이 아닌 수감 번호로 불리며 나치 감사자들의 무자비한 폭력과 욕설에 시달리게 됩니다. 그리고 발 하나 뻗기도 힘든 수용소에서 가축처럼 구겨 넣어져 추위, 굶주림, 노동에 시달려야 했고 하루에 한 번 배급되는 빵과 묽은 수프가 수용자들이 먹는 음식의 전부였습니다. 그들에게는 수용소에 오기전 자신들이 갖고 있었던 명성, 재산, 명예 따위는 아무런 의미가 없고 그저 벌겨벗겨저서 학대당하는 몸뚱이 하나만이 그들이 가진 전부가 됩니다.

 

 

-집행유예 망상

  정신의학에 보면 소위 집행유예망상이라는 것이 있다. 사형선고를 받은 죄수가 처형 직전에 집행유예를 받을지도 모른다는 망상을 갖는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실낱같은 희망에 매달려 마지막 순간이 그렇게 나쁘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36p)

  하지만 그들은 곧 자신들이 폭력과 죽음이 난무하는 끝을 알 수 없는 처참한 상황에 놓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수용소에서 첫 번째 심리 단계인 충격에 휩싸이게 됩니다. 수감자들이 수용소에 들어오기 전 가지고 있었던 직업, 권위, 명예는 고사하고 지금까지의 인생 전부를 박탈당했던 것입니다.

 

 

-무감각

  수용소에 처음 들어온 사람들은 화장실을 청소하고 땅이 울퉁불퉁한 들판에 오물을 버리러 가는 동안 똥물이 얼굴에 튀기도 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싫은 기색을 보인다거나 얼굴에 묻은 똥물을 닦아내려고 하면 카포가 가차없이 주먹질을 해댔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사람들 사이에서는 어떤 일에 대해 정상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는 현상이 가속화되었다.(53p)

  그리고 사람들은 이제 어떤 참담한 모습을 보아도 동정이나 공포심을 느끼지 않는 무감각 현상을 경험하게 됩니다. 사람들이 괴롭힘을 당하거나 죽어나가는 것이 너무나 일상적이라 더 이상 마음에 동요를 일으키지 않는 상태가 된 것입니다. 프랭클 박사도 불과 두시간 전에 자신과 얘기를 나누던 동료 수감자의 끔찍한 시체를 보고도 바로 수프를 먹을 수 있게 되었고 맨발로 눈길을 걸어야 하는 동료 수감자가 어린애처럼 엉엉 우는데도 아껴둔 빵을 게걸스럽게 먹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동료 수감자들보다 건강하게 보여서 가스실로 끌려가지 않기 위해 매일 깨진 유리로 면도를 하기도 합니다. 수감자들은 윤리적이거나 도덕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고 자신을 기다리는 가족을 위해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존 문제에만 집중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프랭클 박사는 인간은 어떤 열악한 환경에서도 적응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수감자들은 인간이 도저히 살 수 없을 듯한 가축 우리같은 수용소에서도 코를 골며 자게 되고, 밥그릇과 변기를 혼용해서 쓰기도 하고, 극심한 영양실조에 시달리면서도 하루 종일 노역을 해야 하는 생활에 곧 적응하게 됩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인간을 어떤 환경에서도 적응할 수 있는 존재로 묘사한 도스토예프스키의 말이 사실이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물론입니다. 인간은 어떤 환경에서도 적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방법에 대해서는 묻지 말아 주십시오.”(47p)

 

 

-인간에 대한 구원은 사랑 안에서, 그리고 사랑을 통해 실현된다.

  우리는 어둠 속에서 큰 돌멩이를 넘고 커다란 웅덩이에 빠지면서 수용소 밖으로 난 길을 따라 비틀거리며 걸었다. 호송하던 감시병들은 계속 고함을 지르면서 총의 개머리판으로 우리를 위협했다. 다리가 아픈 사람은 옆 사람의 팔에 의지해서 걸었다. 한마디도 말을 하기가 힘들었다. 얼음같이 차가운 바람 때문에 누구든 입을 열 엄두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높이 세운 옷깃으로 입을 감싸고 있던 옆의 남자가 갑자기 이렇게 속삭였다.

  “만약 마누라들이 우리가 지금 이러고 있는 꼴을 본다면 어떨까요? 제발이지 마누라들이 수용소에서 잘 있으면서 지금 우리가 당하고 있는 일을 몰랐으면 좋겠소.”

  그 말을 듣자 아내가 생각났다. 빙판에 미끄러져 넘어지고, 수없이 서로를 부축하고, 한 사람이 또 한 사람을 일으켜 세우면서 몇 마일을 비틀거리며 걷는 동안 우리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었다. 모두가 지금 아내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76~77p)

  이렇게 고통에 무감각한 상태가 된 수감자들은 평화로웠던 일상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올리며 과거로 도피해 갑니다. 프랭클 박사도 매일같이 상상속에서 집에 가는 버스를 타고, 아파트 문을 열고, 걸려오는 전화를 받는 상상을 합니다. 그리고 집에서 자신을 기다려주던 아내에 대한 추억에도 잠기고 매일 상상 속에서 아내와 대화를 나눕니다. 그러면서 프랭클은 지옥같은 순간에도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며 여전히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고통 속에서는 과거의 일상과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추억만이 구원이자 피난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밤마다 시낭송과 노래로 수감 생활의 고통을 잊는 사람도 나타나고, 기도를 하며 종교 모임을 하는 무리들도 나타납니다. 이렇게 인간은 활발한 정신 활동을 통해 고통을 잊을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시련의 의미

  창조와 즐거움만이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 시련은 운명과 죽음처럼 우리 삶의 빼놓을 수 없는 한 부분이다. 시련과 죽음 없이 인간의 삶은 완성될 수 없다.(122p)

  프랭클 박사는 사람이 자기 운명과 그에 따르는 시련을 받아들이는 과정, 다시 말해 자기 십자가를 짊어지고 나가는 과정은 그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 삶에 보다 깊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폭넓은 기회를 제공한다고 합니다. 그 삶이 용감하고 품위 있고, 헌신적인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이와는 반대로 자기 보존을 위한 치열한 싸움에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잃고 동물과 같은 존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여기에 힘든 상황이 선물로 주는 도덕적 가치를 획득할 기회를 잡을 것인가 아니면 말 것인가를 결정하는 선택권이 주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이 결정은 그가 자신의 시련을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드느냐 아니냐를 판가름하는 결정이기도 합니다.

  수감자 중에서도 아주 적은 사람만이 충만한 내면의 자유를 지키고, 시련을 견딤으로써 얻을 수 있는 가치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단 한 가지 예만으로도 인간이 지닌 내면의 힘이 외형적인 운명을 초월해 그 자신의 존재를 높인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데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사람은 비단 강제수용소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도처에서 인간은 운명과, 그리고 시련을 통해 무엇인가를 성취할 수 있는 기회와 만나게 됩니다.

 

 

  프랭클 박사는 인간 이하의 생활을 해야 하는 수용소에서도 사람들을 사람답게 죽게 하는 요인이 뭔지 관찰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두 가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첫째로 그는 인간은 고통을 가져다주는 외부 상황을 변화시킬 수는 없지만 그 고통에 맞서는 자신의 태도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갖고 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수용소 안에는 자신의 생존만을 위해 이기적으로 굴고 같은 유태인이면서도 나치의 끄나풀이 되어 다른 수감자를 가스실로 보내는 사악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반대로 자신이 배급받은 빵을 나눠주면서까지 자신보다 더 고통에 처한 동료를 돕는 고귀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똑같은 인간 이하의 환경을 겪으면서도 인간답기를 포기하지 않기로 스스로 선택한 사람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박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살아있는 인간 실험실이었던 강제수용소에서 어떤 사람들이 성자처럼 행동할 때, 또 다른 사람들은 돼지처럼 행동하는 것을 보았다. 사람은 내면에 두 개의 잠재력을 모두 가지고 있는데, 그 중 어떤 것을 취하는냐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그 사람의 의지에 달려 있다.”(215p)

  그리고 프랭클 박사는 모든 시련 속에는 삶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 숨어 있다고 말합니다.

 이 시련을 너는 어떻게 헤쳐나갈 거니?’, ‘이 시련을 통해 너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니?’ 이런 질문들 말입니다. 우리는 항상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지만 박사는 그런 질문들은 전혀 의미도 없고 물어서도 안된다고 얘기합니다. 오히려 삶이 매 순간 우리에게 던지는 이 질문들에 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 앞에 과제처럼 놓여진 시련에대한 책임을 떠안는 것이 바로 삶이라고 얘기합니다.

  수용소 안에서의 프랭클 박사에게는 삶이란 뭔가 거창하고 원대한 것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저 하루하루 생존을 위해 필요한 것들을 확보하고 시련을 주는 외부환경에 맞서 인간답게 살고 죽을 자유를 찾아가는 구체적이고 확실한 투쟁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삶이란 막연한 것이 아니라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것이며 삶이 우리에게 던져준 과제를 통해 남들과는 다른 자신만의 운명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얘기합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시련을 겪는 것이 자기 운명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그는 그 시련을 자신의 과제, 다른 것과 구별되는 자신만의 유일한 과제로 받아들여야 한다. 시련을 당하는 중에도 자신이 이 세상에서 유일한 단 한 사람이라는 사실에 감사해야 한다. 어느 누구도 그를 시련으로부터 구해낼 수 없고, 대신 고통을 짊어질 수도 없다. 그가 자신의 짐을 짊어지는 방식을 결정하는 것은 그에게만 주어진 독자적인 기회이다.(139p)

 

  이와 동시에 자신이 살아갈 이유와 목표를 찾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프랭클 박사는 말합니다. 박사는 수용소에서 항상 다음날 먹을 빵, 끊어진 신발끈 등 눈앞에 닥친 과제들에만 몰두해 있었는데, 어느날 이런 상황이 너무 역겹게 느껴져서 먼 미래를 꿈꿔봅니다. 자신이 쾌적한 대학 강단에서 강제 수용소에서의 심리 상태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는 모습을 말입니다. 그러자 갑자기 박사를 짓누르던 모든 고통을 이겨낼 힘이 생깁니다.

  니체는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상황도 견딜 수 있다라고 말했는데요.

  프랭클 박사는 수감자들에게 중요했던 것은 삶의 희망과 목표를 찾는 것이었다고 강조합니다.

  일례로 프랭클 박사가 수용소에서 만난 한 동료는 330일에 전쟁이 끝날 거라고 누군가가 말해주는 꿈을 꿉니다. 하지만 330일이 가까워져도 종전 기미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그 동료는 329일부터 고열에 시달리며 앓아 눕기 시작하고 결국 330일 다음날에 죽음을 맞습니다. 환자는 ‘330일 종전이라는 목표와 희망을 잃어버린 후 더는 살아갈 의지를 잃어버렸던 것입니다. 프랭클 박사는 이렇게 "목표와 희망을 잃는 것은 죽음과도 같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결국 19454월에 종전이 되면서 프랭클 박사는 수용소에서 석방이 됩니다. 책을 마무리하며 박사는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인간은 아우슈비츠의 가스실을 만든 존재이기도 하고 의연하게 가스실에 들어가며 주기도문을 외울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215p)

  우리는 이와 같이 어떤 모습으로 삶의 시련에 반응할 수 있을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존재이고 그 선택을 통해 자신만의 운명을 만들어 가야 하는 과제를 짊어지고 있습니다. 삶이 우리에게 무엇을 줄지를 기대하지 말고 우리가 삶의 과제들을 어떻게 책임져 나갈지 고민해야 한다는 메시지는 빅터 프랭클이 인류 최대의 비극을 통해 발견한 주옥같은 가르침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마지막으로 이 글에서 소개하지 못한 주옥같은 저자 빅터 프랭클이 전하는 깨달음과 가르침을 모두 담지 못했습니다. 삶이 절망적이거나, 체념상태라고 생각될 때나 무기력하다고 생각되시는 분들이 필히 읽어보면 좋은 책이라고 생각되고, 아직 이 책을 읽지 않은 분들이라면 더 많은 삶에 대한 동기부여를 받기위해 반드시 읽어보기를 추천드립니다.

  또한 지금 이렇게 평범하게 글을 쓸 수 있는 여유있는 삶, 하루 일과가 나를 힘들게 하더라도 가정에 돌아가 사랑하는 가족들과 서로의 하루일과를 이야기하며 저녁식사를 할 수 있는 자유,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면서 오늘을 사는 이유, 나이가 있는 분들이라면 더욱 알차고 충만한 노후를 준비할 수 있는 자유를 느끼는 지금이 최고의 행복이고 삶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서 지금의 행복과 뒤에 올지 모르는 '최악의 상황'이 오더라도 내가 지금 살아야 하는 이유가 한 가지만 있다면 최선을 다해 단 하루가 되었든, 한 시간, 한 순간이 되었든 열심히 살아야하고 살아가야할 의무가 생긴다고 생각됩니다.

  이 글을 보신 여러분들은 어떠신가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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