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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나에게 집이란, 너에게 집이란(책,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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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사베이 이미지

집이란~.

나와 가족 구성원의 기준으로 어떤 것일까요.

하루 종일 일하고 쉬는 휴식공간?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아도 되는 공간?

책을 보고 싶으면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독서를 할 수 있는 공간?

먹고 싶은 게 있으면 언제든 냉장고에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

언제든 등을 대고 누우면 잠을 잘 수 있는 공간?

 

세상이 바뀌어 핵가족화 되어 있지만, 멀지 않은 옛날 대가족들 속에서 자란 필자나 책의 저자는 위에 언급한 나만의 공간이나 휴식공간이 아니었을 수도 있습니다. 내가 가장 편안하게 쉴 때, 내가 원하는 시간을 아무 간섭도 받지 않고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을 때, 누군가는 그 편안함과는 반대로 가사 노동에 시달리는 게 아닌지 생각해보게 하는 글이 있어 공유해 봅니다.


 

나에게 글쓰기에 재능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엄마로부터 받은 문학적 세례 덕분이다. 자기만의 공간과 시간이 있었다면 엄마는 가족 관계에서의 호칭이 아닌 자신의 이름으로 불릴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 내가 가진 자리를 엄마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가 승진과 출세, 성공과 사회적 지위를 생각할 때 다른 누군가는 식사와 설거지, 청소와 빨래를 고민한다. 누군가가 바깥에서 '중요하고 대단한 성취'를 이루는 동안 누군가는 집 안에서 '하찮고 사소한' 일을 감당한다. 

 

전자는 후자에게 빚진다. 후자는 전자에게 기여한다. 그러나 나는 자주 그 사실을 잊어버린다. 가족 각자가 이룬 것은 엄마가 이룬 것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내가 기억해내는 것은, 엄마가 씁쓸한 얼굴로 이렇게 말할 때뿐이었다. "나는 평생 이룬 게 하나도 없구나."

 

 

나는 오랫동안 엄마를 닮기 위해, 동시에 닮지 않기 위해 노력해왔다. 엄마를 수용하고 배반하면서, 대상화하고 동일시하면서, 받아들이고 밀어내면서, 엄마와 같고 엄마와 다른 여성이 되기 위해, 엄마는 종종 나에게 말했다. "네 일을 가지고 독립적으로 살아." 그렇게 말할 때 엄마는 나의 자리와 엄마의 자리가 다르기를 바랐을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가장 소중한 것, 가장 소중한 사람은 우리 가까이 있는데 잊고 살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어리석게도 막상 소중한 것, 소중한 사람이 없을 때 우리는 그때서야 깨닫게 되지요.

그 자리가 집이라는 공간에서 가장 큰 자리였다는 것을 말입니다.

 

쌀쌀해지는 날씨 건강 조심하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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