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생각하면 누구나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나, 안식처가 먼저 떠오르겠지만 안타깝게도 터무니없이 높아지는 집값 때문에 지금은 세대갈등이 되고 3포 세대나 저출산이라는 사회문제가 먼저 떠오르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이 책에도 그런 문제로 인해 같은 시공간에 살면서도 '우리'가 되어야 하지만 '그들'이라고 말하며 보이지 않는 사회의 계급적 '담'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문제들을 집을 통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책이지만, 저자가 여성 작가이다 보니 우리가 매일 같은 공간을 생활하면서도 서로 다른 '안식처'가 되는가 하면 어떤 가족 구성원에게는 '대가 없는 가사노동'의 공간이 되어버린 가정 안에서의 또 다른 사회를 보게 합니다.
이 책에서 저자가 가장 하고 싶은 말이 책 서두에 있습니다.
날이 저물면 성이 다른 한 여성에게 무급의 노동이 집중되는 가부장제 만연한 집으로 돌아갔다. 그 모든 질문은 이제 하나의 질문이 된다.
집은 나에게 무엇인가?(28p)
이 간단한 문장의 의미가 저자가 독자에게 이 책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함축되어 있습니다. 지금의 가정은 핵가족화되어 가부장적 대가족에서 볼 수 없는 가정환경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불과 80년대까지 대가족이 한 지붕 아래에서 살던 기억이 있는 분들이라면 옛 기억이 되살아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누군가에게 승진과 출세, 성공과 사회적 지위를 생각할 때 다른 누군가는 식사와 설거지, 청소와 빨래를 고민한다. 누군가가 바깥에서 '중요하고 대단한' 성취를 이루는 동안 다른 누군가는 집 안에서 '하찮고 사소한'일을 감당한다. 전자는 후자에게 빚진다. 후자는 전자에게 기여한다. 그러나 나는, 우리는 자주 그 사실을 잊어버린다.(143p)
생각해 봤습니다. 당연하게 어머니가 삼시 세 끼를 준비할 때, 당연하게 나의 방을 정리할 때, 가족들의 빨래를 할 때 또는 편안하게 방게 들어가 휴식을 취하거나 공부를 할 때까지 잠시도 쉴틈 없이 움직이시던 것을 봤습니다. 명절에는 더 했지요. 특별히 말하지 않아도 몇십 년만 거슬러 생각하면 엄청난 가사노동이었습니다.
이 시절을 겪은 여성분들은 생각하면 화가 나실지도~.
책과 책장이 있는 서재는 아빠의 방이었다. 실제로 그 방에 틀어박혀 있는 사람은 아빠였고 엄마가 책을 읽는 곳은 주방 식탁이나 거실 소파 같은 공동의 공간이었다. 자기만의 공간을 소유한다는 것은 자기만의 시간을 확보한다는 의미다. 반대로 자기만의 공간이 없다는 것은 자기만의 시간을 언제든지 방해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엄마의 독서, 사색, 휴식은 수시로 멈춰졌다. 할머니가 집안일을 시키거나 아빠가 출출하다고 말할 때, 또는 나와 동생이 사소한 것을 요구하는 순간에.(132p)
쓰는 사람은 작가라고 불리는 특정한 누군가가 아니다. 나의 서사를 나의 목소리로 말하는 사람, 나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이는 나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 쓰기는 삶의 특정한 순간을 다시 한번 살아내기이다.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과거를 뭉뚱그리지 않기, 외면하고 싶었던 고통, 분노, 슬픔, 상실, 결핍을 다시 한번 겪어내기. 그것은 나 자신의 이방인이 되는 일이다.(134p)
단순히 쓰기라고 한다면 큰 의미는 없을 것입니다. 현실에서의 '나'와 나의 내면의 '자아'를 생각한다면 어쩌면 내 자신도 두 개의 인격체로 생각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매 삶의 순간에 내면의 내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 성찰하며 다시 살아내는 게 쓰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자서전이나, 일기가 초등학교 과제에 머물지 않고 성인들도 자신의 삶을 충실히 살아가는 방법 중에 하나가 일기와 자서전을 수시로 쓰는 것입니다.
자신만의 사색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집에서 '나만의 공간'은 또 다른 '내면의 나'를 만나는 공간이 될 것입니다.
나는 오랫동안 엄마를 닮기 위해, 동시에 닮지 않기 위해 노력해왔다. 엄마를 수용하고 배반하면서, 대화하고 동일시하면서, 받아들이고 밀어내면서, 엄마와 같고 엄마와 다른 여성이 되기 위해. 엄마는 종종 나에게 말했다. "네 일을 가지고 독립적으로 살아." 그렇게 말할 때 엄마는 나의 자리와 엄마의 자리가 다르기를 바랐을 것이다.(144p)
세상에서 제일 가까운 애증의 관계.
집은 사적인 영역인 동시에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장소다. 집을 권력도, 위계도, 노동도 없는 휴식처로 여기는 것은 전통적 성규범에 다른 시각일 뿐이다. 내가 스스로 정의한 정체성과 외부로부터 요구받는 성 역할은 집 안에서 가장 먼저 충돌했다. '집안일', '내조', '가정주부' 등의 언어에는 성별화 된 이데올로기가 적용되어 있다. '가정적'이라는 말은 남성에게 칭찬인지 몰라도 여성에게는 아니다.(217p)
이 책은 집이 한 여성에게 미친 영향에 대한 이야기, 또는 집을 통해 본 한 여성의 성장기라는 점에서 자전적이지만, 집이라는 '물리적 장소' 안에서 여성의 '상징적 자리'를 가늠해보려는 시도이기도 했다.((218p)
집을 떠나 사회생활을 하기에 앞서 또는 집 밖의 사회생활을 하기에 앞서 집은 또 하나의 사회입니다. 한 사회가 변하고 발전함에 따라 남성들뿐 아니라 여성들의 사회진출도 많아지고, 결혼이라는 인생의 큰 변환점을 두고서도 예전의 대가족 형태의 가정은 많이 사라졌다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집안에서의 성별에 따른 보수적인 '역할'을 따르는 분들도 제 주변을 보면 적지 않아 보입니다.
집안에서의 가족의 역할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여성분들의 사회적 진출과 역할이 많아짐에 따라 '가사'의 영역도 여성들만의 영역은 아니라고 생각되는데요. 집에서의 가사의 영역도 조금씩 분담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책입니다. 집안에서도 내가 편히 쉬면서 즐기는 시간이 있다면 다 같이 그 시간을 즐길 수 있다면 더 좋지 않을까요?
작가가 말한 "집은 나에게 무엇인가?"보다 "집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될 수 있도록 말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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