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하는 한라산 산신령님을 뵈러 다녀왔습니다. 아쉽게도 한라산 산신령님은 출타중이었지만, 산신령님의 은덕과 삼대가 덕을 쌓은 덕이 있는지 맑은 백록담까지 보고 왔습니다.
등반일: 2022. 5. 26.
날씨: 흐리다가 맑아짐.
코스: 성판악~백록담~관음사, 하산은 관음사탐방로.
등반 준비는 어제 발행한 포스팅을 참고해 주세요.
2022.05.28 - [날마다 주저리 주저리/여행] - 한라산 등반예약, 준비와 준비물
지도로 보면 길지 않을 것 같고, 산 아래에서 보면 완만한 경사라서 어렵지 않을 것 같은 한라산이었습니다. 그런데 누가 그러던가요? 자연은 쉽게 인간에게 정복되지 않는다고요. 등반을 끝내고 나서 성취감과 함께 평소 보지 못한 풍경을 만끽하는 즐거움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절대 쉬운 산은 아니었습니다.
등반 당일 아침
눈을 뜨자 마자 한라산 쪽을 바라봤습니다. 일기예보대로 그리 좋은 날씨는 아닌 듯 한라산은 구름에 가려있었습니다. 앞에 보이는 호텔 옆 도로가 제주시 맛집 도남오거리에서 내려오는 길입니다. 이렇게 좋은 맛집들을 놔두고 헛다리를 짚는 바람에 당일 아침에도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하고 급하게 영업을 시작한 국숫집을 찾게 되었습니다.
급한 마음에 허겁지겁 찾은 터미널 안에 있는 고기국수를 먹었습니다. 등산을 시작하는데 밥을 먹지 못하는 살짝 아쉬운 느낌은 들었지만 5,500원의 저렴한 국수 치고는 맛도 괜찮았고 배를 든든하게 채워 주었습니다.
조금은 낡은 느낌의 제주시 터미널에서 성판악으로 향하는 버스가 바로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아침 6시 반에 출발해 성판악탐방로 입구에 도착한 시간은 7시가 조금 넘은 시간.
역시 부지런한 대한민국 사람들. 자동차로 아침 일찍 성판악에 도착한 등반객들이 벌써 주차를 해두고 산을 오르고 있었나 봅니다. 주차장이 빈자리가 없습니다. 하절기 한라산 등반시간이 5시부터니까 저희 일행보다 두 시간이 빠른 시간에 등반을 시작했겠네요.
성판악탐방안내소 출발
성판악탐방로 등반 입구에는 지하철 개찰구처럼 생긴 입장로가 있습니다. 이 입장로를 통과하면 본격적인 한라산 숲이 시작됩니다. 살짝 여유 있게 출발했지만, 하절기인 계절이기 때문에 출발지부터 푸른 숲의 녹음을 보면서 산림욕을 즐길 수 있습니다.
출발하는 등반 초입길은 다소 완만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여왕님과 함께 등반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 생각은 한라산을 너무 몰라도 몰라서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한라산에서만 볼 수 있을 것 같은 쭉쭉 뻗은 나무와 숲을 즐기면서~. 등반로 아랫부분은 대부분 이런 것 같습니다.
가다보니 등반 초보인 일행이 있어서 걸음이 빠른 두 사람과 느린 사람에게 맞추는 두 사람으로 갈라졌습니다. 사실 오늘 등반 일정에 두 사람은 평소 등산을 매주 하는 사람이어서 산행 걸음 속도도 빠른 편이었고 체력도 좋았습니다. 필자는 앞에 일행에 서서 따라 올랐습니다. 등산을 하던 산꾼 한 사람이 이런 상황에 대비해 미리 생각해 둔 2:2 산행이 시작된 것입니다.
성판악에서 오르다보면 제일 먼저 만나는 대피소에서 잠시 목을 축이면서 5분가량 휴식을 하고요.
올라가면서 등반로 초입과는 달리 살살 경사가 급해지기 시작합니다.
등반로 중간중간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안내표지판이 현 위치를 알려줍니다. 성판악에서 백록담까지 거리가 9.6km이고, 등반 소요시간이 4시간 30분가량으로 되어 있는데, 걸음이 느린 기준으로 잡은 것 같습니다. 필자가 속한 일행은 3시간 조금 안 되는 시간이 걸린 듯합니다. 처음에 조금 오버페이스를 하긴 했습니다.
사라오름
사라오름, 오름 이름이 참 예쁘지요? 정상으로 향하는 길에 데크길로 빠지면 사라오름으로 향하는 데크길이 나옵니다. 앞으로 언제 올지 모르기 때문에 힘들어도 들러보기로 했습니다.
최근 비가 오지 않은 관계로 사라오름 호수에는 물이 메말라 있었습니다. 물이 있었으면 굉장히 멋진 호수일 듯하네요.
옆에 있던 다른 일행과 사진을 주고받고요.
사라오름을 지나 다시 정상으로 향하는 길.
길이 점점 가팔라집니다. 나무계단, 검은 돌계단, 울퉁불퉁한 돌길이 연속됩니다. 경사는 가팔라지고 걸음속도는 빨랐기 때문에 필자의 얼굴에서 땀이 비 오듯 쏟아집니다. 누가 보면 정말 물속에 들어갔다 나온듯합니다. 때문에 배낭의 멜빵도 땀으로 흠뻑 젓었습니다.
진달래 대피소
빠른 걸음을 쫓아가다 보니 진달래 대피소에 도착할 때쯤에는 다리가 후들거리기 시작합니다.
진달래 대피소는 등반 코스 중 3분의 2 지점쯤 되는 것 같습니다. 여기까지도 쉽지 않았는데, 이제부터가 정말 힘든 경사구간이 시작됩니다. 그래서 많은 등반객들이 준비해온 음료나 과일로 체력을 보충하고, 화장실까지 해결합니다. 이후 코스부터는 화장실이 없기 때문에 이곳에서 용변을 해결하는 게 좋습니다.
저희 일행도 준비해온 비상식량으로 체력을 보충합니다.
진달래대피소 화장실에서 찍은 사진인데, 한라산 능선과 정상이 살짝 보이기 시작합니다. 아이고 3분의 2 지점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멀어 보이네요.
안내문에 식수가 귀하다는 메시지가 있는데요. 우리 일행은 일인당 작은 물 3병씩이면 충분할 줄 알았는데, 올라가면서 먹고, 정상에서 먹었더니 모두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내려오는 길에 극심한 갈증에 시달렸습니다.
진달래 대피소에서 하산 시간을 확인하고요.
다시 출발.
진달래 대피소를 지나면서 고산지대에서 볼 수 있는 고사목도 보이고요. 필자는 눈앞에서 고사목을 처음 보기 때문에 너무 예뻤습니다.
나무가 크리스마스트리에 써도 좋을 만큼 멋지긴 한데, 힘이 들어서 검색할 생각은 하지 않고 사진만 찍고 올라갑니다.
진달래 대소를 지난 다음 정상이 가까워지면서는 거의 이런 데크길이 이어집니다. 다리가 후들거려서 앞서가는 동료한테 자꾸 쉬자고 하지는 못하고 주변 풍경이 좋으니 사진을 찍자는 핑계로 중간중간 쉬어 갑니다.
등산로 주변 고사목과 멋진 나무를 보면서 오르면서 고개를 들어보니 어느새 정상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오르다가 뒤를 보니 구름도 점점 걷히고, 제주도 서쪽 풍경이 눈을 즐겁게 합니다. 멀리 성산일출봉과 우도도 조그맣게 보이네요. 너무 맑은 날씨도 좋지만 중턱에 걸린 구름도 한라산의 운치를 더해줍니다.
진달래인지 철쭉인지 모르겠는데, 정상에 오르니 산아래에서는 벌써 지고 없는 꽃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뒤 일행 중 한 사람이 3월에도 한라산 정상에 올랐는데, 지금은 이 봄꽃을 보기 위해 다시 왔다고 합니다.
정상이 보이긴 하는데 아직 까마득해 보입니다.
경사가 많이 심하지요? 따라 올라오는 젊은 사람들도 20대로 보이는데 힘이 겨운지 올라가다 쉬고를 반복합니다.
천국을 향하는 계단인데, 그 과정은 악마의 계단과 지옥의 계단같습니다.
사라오름 옆에 구름이 너무 멋지게 보입니다.
한라산 정상도착
도착시간은 10시 반 가량이 된 것 같습니다. 평균 소요시간이 4시간 반인데, 이 정도면 거의 뛰어 올라온 수준이네요.
아이고야. 정상에 다다르니 긴 줄이 서 있습니다. 150~200미터는 되는 것 같습니다. 이래서 일찍 등반을 시작하나요? 이렇게 줄을 서는 이유는 인증사진을 남기기 위해서입니다. 이 인증사진이 있어야 하산해서 제주도에서 주는 '한라산등반인증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대기시간만 한 시간 반 가량 걸린 것 같습니다. 기온이 낮고 땀이 식으면서 추워졌기 때문에 줄을 서있는 동안 준비해온 솜자켓도 입습니다.
바람이 심하다 보니 정상에 있는 통제소도 돔 형태로 되어있네요.
멀리 서귀포 시내도 보입니다.
한 시간 반가량이 지나면 뒤따르는 일행과 만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늦어집니다.
어느새 백록담 표시석 앞에 순서가 다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뒤 일행이 도착하지 못해 뒤에 서있는 분들을 먼저 찍게 하고, 일행 중 한 사람은 30분 넘게 등반객들 인증사진을 찍어주는 카메라맨이 되었습니다. ㅎ
너무 시간이 지체되는 바람에 뒤 일행한테 먼저 인증사진을 찍고 내려가라는 전화가 옵니다. 계속해서 시간을 끌 수 없어서 먼저 인증사진을 남기고요. 이렇게 인증 사진을 남기고도 뒤 일행을 2시간을 기다린 것 같습니다. 같이 왔는데 그냥 내려가기 아쉬워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기다리는 동안 남은 비상식량으로 점심을 해결했습니다.
사실 군대 전투식량 같은 것을 준비하긴 했었는데, 비행기를 타면서 발열 식품 소지는 안된다고 해서 모두 압수를 당했습니다. 제주에 와서도 미리 김밥을 준비했어야 하는데, 너무 늦게 도착한 데다가 지난 밤 많은 음주로 김밥까지 챙기지 못했습니다.
오른편에 줄이 보이시나요? 이 줄이 인증사진을 찍는 줄이고요. 인증사진을 찍고 나면 주변에 앉아 점심을 먹거나 왼쪽에 있는 백록담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습니다. 하루 등반 인원이 제한되어 있는데도 많은 분들이 한라산이 오르시네요.
사진 멀리 보이는 쪽 데크로 내려가면 관음사 탐방로로 향하는 길입니다.
필자도 백록담을 사진으로 남겨봅니다. 평생 살면서 언제 올지도 모르는 우리나라 최고봉. 멀리 제주시도 보입니다.
일행 중 산꾼인 동료가 삼 대가 덕을 쌓아야 한라산 백록담에서 맑은 주변 풍경을 볼 수 있다는데, 필자는 첫 번째 올라와서 이런 풍경을 볼 수 있었습니다. 삼대가 아니라 대대로 조상님 한라산 산신령님 덕을 본 듯합니다.
일행을 기다리는 동안 서귀포 방면에서 하얀 구름이 이동하면서 서쪽 성산포 방면을 가리고 있습니다.
두 시간가량 지난 뒤, 일행이 도착해 늦은 단체샷을 남기고요.
관음사 방면으로 하산을 시작합니다.
관음사 방면으로 하산
떠나는 아쉬움에 백록담 북벽을 다시 한번 바라보고요.
하산길에 날씨가 더욱 맑아지면서 제주시가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관음사 탐방로로 내려오는 높은 지대가 성판악에서 올라오는 풍경보다 더욱 멋지게 보입니다.
산 아래 보이는 건물이 비교적 높은 위치에 있는 삼각봉 대피소입니다.
사진으로 보는 것보다 실제 풍광이 더 멋졌던 것 같습니다.
한라산의 멋진 풍경을 보여주기에는 사진으로는 한계가 있는 듯합니다.
필자는 이상하게 하산길에 걸어 내려오니 허리가 아픕니다. 그래서 살살 뛰어봤더니 통증이 없어져서 이곳부터 혼자서 뛰어 내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아랫녁에서는 벌써 졌을 철쭉도 한창이고요.
보이는 게 백록담 북벽인가요? 내려가면서 더욱 짙어지는 녹음입니다.
나무에 핀 꽃들은 지나가는 나그네의 코를 향기롭게 간지럽힙니다.
용진교를 건너니 내리막에 없을 것 같았던 오르막도 나옵니다.
삼각봉이 보이고요.
드디어 삼각봉 대피소. 이곳에 성판악에서 오를 때 진달래 대피소하고 비슷한 고도에 있나 봅니다.
산이 가파르다보니 내리막도 쉽지가 않습니다. 많은 등산객들이 쉬고 계시네요.
산을 내려오다보니 절벽에도 꽃이 피어 있네요.
내려올수록 그늘진 숲길이 시작되고.
계곡을 지나.
정신없이 달리다보니 관음사가 가까워졌습니다. 이 안내문을 보니 정상등반을 할 때 성판악보다 확실히 힘들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려오면서 계곡에 동굴 같은 것도 있네요.
관음사가 가까워지면서 탐방로 주변에 이런 안내문이 많아지네요. 아마도 관음사탐방로 주변이 생태학습장으로도 이용되나봅니다.
드디어 관음사 탐방로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오후 2시가량 출발해서 4시 30분쯤 도착했으니 이것도 빠른 시간이네요.
덕분에 2시간을 쉬면서 일행을 기다렸습니다.
마지막으로 '한라산등정인증서'를 발급받고 산행을 마쳤습니다.
일행이 모두 도착하니 6시 30분이 되었습니다. 산행이 쉽지 않았는지 저녁이 꽤 괜찮은 음식점이었는데도 어제 저녁처럼 많이 먹지를 못합니다.
필자는 20년 만의 산행이라서 쉽지는 않았습니다. 산행을 끝내고 3일이 지났는데도 다리근육 피로가 풀리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오랜만에 버킷리스트 하나를 끝낸 느낌입니다. 산행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일상에서 볼 수 없는 자연의 풍경과 산에서만 맛볼 수 있는 조그만 성취감에 산을 자주 찾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회사 동료들과도 식상했던 같은 일상에 큰 활력소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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