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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책 <아픔이 길이 되려면> 전체 감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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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점의 문제입니다. 근본적으로 인간의 몸과 건강을 어떻게 바라보고, 개개인의 삶에 대한 공동체 책임은 어디까지라고 생각하는지에 대한 고민이지요. 질병의 사회적 원인은 모든 인간에게 동일하게 분포되어 있지 않습니다. 더 약한 사람들이 더 위험한 환경에서 살아가고 그래서 더 자주 아픕니다.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소득 없는 노인이, 차별에 노출된 결혼이주 여성과 성소수자가 더 일찍 죽습니다.(본문 중)

우리나라는 양적으로나 외적으로는 선진국으로 불릴만큼 성장했지만, 사회적 이해 관계가 극단적으로 양극화되면서 가치관의 관점도 서로 다르고 그 속에서 여러가지 사고를 통해 고통을 겪고 있는 이웃들도 적지 않습니다. 이 책은 사회 역학자로서 저자가 사회적 차별과 아픔은 공동체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같이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담겨있는 따뜻한 메시지가 있는 책입니다. 좋은 사회는 양극화가 적어지고 모두가 함께 살 수 있는 환경과 공감대가 만들어질 때일 것입니다. 다양한 이해관계로 분열되기보다는 최소한의 인간적 양심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저자의 마음이 더욱 따뜻하게 다가옵니다.

저자 소개

저자 김승섭님은 사회역학자로서, 차별경험과 고용불안 같은 사회적 요인이 비정규 노동자나 성소수자와 같은 사회적 약자의 건강을 어떻게 해치는지를 주로 연구하고 있습니다. 2014년 ‘인턴, 레지던트 근무환경 연구’, 2015년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건강 연구‘, 국가인권위원회의 ’소방공무원의 인권상황 실태조사‘, 2016년 ’한국 성인 동성애자, 양성애자 건강 연구‘, 세월호 특조위의 ’단원고 학생 생존자 및 가족 대상 실태조사 연구‘, 2017년 ’한국 트렌스젠더 건강 연구‘, ’2018년 천안함 생존자 건강 연구‘, ’백화점, 면세점 화장품 판매직 노동자 근무환경 및 건강 연구‘, ’2021년 ’소방공무원의 COVID19 관련 근무환경과 건강‘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현재 한국 성소수자의 건강을 연구하는 ’레인보우커넥션 프로젝트‘의 책임연구원으로 연구를 진행 중입니다.
저자 소개에서 알 수 있듯이 의과대학 전공자로서 직접적인 치료나 진료를 하지 않고 사회적 약자들이 사회에서 어떻게 아파하는지를 주로 연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환자를 치료하는 것만큼 사람들이 아프지 않도록 예방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이 자기 삶에 긍지를 갖지 못한다면 그것은 사회적 책임이라고 생각하는 학자입니다.


책 내용 살펴보기

책의 본문에 들어가기에 앞서 저자는 자신이 사회역학을 연구하는 학자로서 사회적 약자의 아픔은 우리 공동체 모두의 책임일 수 있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 사회적 약자가 알게 모르게 희생될 수도 있고, 사회적 소외계층 또는 국가적 폭력의 한 가운데서 피해자가 다시 상처를 입는 것을 세심하게 살피고 있습니다.


관점의 문제입니다. 근본적으로 인간의 몸과 건강을 어떻게 바라보고, 개개인의 삶에 대한 공동체 책임은 어디까지라고 생각하는지에 대한 고민이지요. 질병의 사회적 원인은 모든 인간에게 동일하게 분포되어 있지 않습니다. 더 약한 사람들이 더 위험한 환경에서 살아가고 그래서 더 자주 아픕니다.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소득 없는 노인이, 차별에 노출된 결혼이주 여성과 성소수자가 더 일찍 죽습니다.(들어가며 7p)

우리의 근현대사의 역사를 살펴보면 전후 세계적으로 보기 드물고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그 속에서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 세대들은 보릿고개를 넘기면서 하루 벌어 하루를 먹고 사는 삶의 연속이었지요. 이 책의 주제처럼 그 속에서 희생되는 개인의 인권과 건강권은 있을 수 없었고, 거의 모두가 사회적 약자였기 때문에 자신을 돌아볼 여유조차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회가 발전하고 세계적인 선진국에 진입한 지금, 우리는 빠르게 성장하였고 세계가 부러워하는 문화강국, 산업강국, IT강국이 되었습니다. 어쩌면 삶은 나아졌지만 그 속에서도 소외되고 사회적 편견 때문에 힘들어하는 계층도 우리의 이웃임을 잊지 말아야 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면에서 김승섭님이 가고자 하는 사회역학의 길은 우리 모두를 공감하게 합니다.


이 책은 크게 4개의 챕터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1. 말하지 못한 상처, 기억하는 몸
2. 질병 권하는 일터, 함께 수선하려면
3. 끝과 시작, 슬픔이 길이 되려면
4. 우리는 연결될수록 건강한 존재들

이 책의 많은 내용들이 우리가 뉴스나 매스컴에서 한 번쯤 들어본 사회적 이슈들이 많습니다. 더하여 우리가 평소에 접하지 못한 소외계층과 차별받는 계층을 다루고 있습니다. 각각의 챕터의 인상적인 내용을 글로 옮겨 봤습니다.


1. 말하지 못한 상처, 기억하는 몸

솔직히 차별을 당하거나 어느 단체, 학교 등에서 폭력을 당했을 때 지인들에게 전달해서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첫 장부터 노동자들의 남녀차별, 직장에서의 보이지 않는 차별, 학교에서의 폭력과 왕따같은 문제들은 우리 모두는 알고 있지만 정작 당사자는 자신이 알고 있는 지인들에게는 알리지 못하고 혼자서 화를 삭이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사회 역학자로서의 연구를 하면서도 차별에 대한 경험을 이야기하고 응답을 하면서도 다른 의미로 조사가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사회적 폭력에 노출된 약자들은 자신의 경험을 표현할 적절한 언어를 가지지 못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차별을 경험해도, 과연 자신의 경험이 차별이었는지 판단하는 일도 쉽지 않습니다. 특히 차별 대우에 만성적으로 익숙해진 사람일수록 그런 판단을 하기가 더욱 어렵습니다.(14p)
이러한 결과는 누구에게도 자신의 차별과 폭력을 알리지 못하기 때문에 우울증 유병률이 높게 나타납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혼자서 감당하는 사람들이 가장 힘들어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노동현장이나 학교에서 차별을 겪고도 자신은 해당사항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차별을 경험했다고 스스로 말할 수 있는 사람들보다 더 아팠다는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요즘 많아지는 다문화가정 학생들일수록 학교폭력을 경험하고 그 경험을 말할 수 있었던 학생들을 포함해, 다른 누구보다 더 많이 아팠습니다.

사회적 폭력으로 인해 상처를 받은 사람들은 종종 자신의 경험을 말하지 못합니다. 그 상처를 이해하는 일은 아프면서 동시에 혼란스럽습니다. 그러나 우리 몸은 스스로 말하지 못하는 때로는 인지하지 못하는 그 상처까지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몸은 정직하기 때문입니다. 물고기 비늘에 바다가 스미는 것처럼 인간의 몸에는 자신이 살아가는 사회의 시간이 새겨집니다.(22p)



-불평등한 여름, 국가의 역할을 묻다

요즘 전 세계적으로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더욱 더워지는 여름을 보내고 있습니다. 해가 거듭되면서 듣는 뉴스가 폭염으로 사망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매년 전해지고 있습니다. 폭염으로 인한 열사병으로 숨지거나 심장병과 호흡기 질환이 악화되어 사망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거의 모두 사회적 취약계층인 분들이 많습니다. 한 여름에도 비닐하우스에서 쉬지 않고 일하는 노인들, 에어컨은 꿈도 꾸지 못하는 쪽방촌 사람들이지요. 이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미국의 경우도 다르지 않았다고 합니다. 1995년 시카고 폭염을 예로 들고 있습니다.
다만 다른 연구에서는 공동체의 와해도 한 가지 원인이 되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같은 지역인데도 시카고 론테일 북부와 론테일 남부지역은 같은 경우, 지리적으로 가깝고 인종, 연령을 비롯해 빈곤율이나 독거 가정 비율과 같이 일반적인 조건은 비슷합니다. 하지만 북부는 10만 명당 사망률 40명, 남부는 10만 명당 사망률 4명으로 10배 이상 차이가 났습니다. 담당 연구자는 그 원인으로 북부은 폐허로 남은 공간에서 골목마다 마약을 파는 사람들과 높은 범죄율 때문이라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사람들은 불안한 치안으로 외출을 꺼렸고, 다른 주민을 믿지 못하다 보니 집 밖에서 발생한 위급한 상항에도 개입하지 않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폭염으로 인해 건강이 악화된 북부 사람들이 타인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없었고 또 좀 더 시원한 곳을 찾아 거리로 나갈 수도 없었던 이유입니다.
1995년 시카고 폭염이 지나고 4년 뒤 비슷한 폭염이 시카고에 다시 찾아옵니다. 지난 폭염에 사람들이 폭염에 사망한 원인을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이제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도 준비 되어있었습니다.

1999년 폭염이 찾아오자, 시카고 시장은 비상 기후대응 전략을 작동시키고, 곧바로 폭염중앙통제센터를 열었습니다. 시카고에서 폭염을 피할 수 있도록 에어컨이 작동하는 쿨링센터 34곳을 열고, 누구든지 그 센터까지 갈 수 있도록 무료로 버스를 제공했습니다. 쿨링센터의 수가 부족하다고 판단되자, 하루 만에 학교 31곳을 새로운 쿨링센터로 지정하기도 합니다.(29p)

더불어 폭염으로 인해 사망할 위험이 높은 독거노인들, 낙후된 견물에 사는 거주민들의 상태를 경찰과 공무원이 일일이 확인했습니다. 특히 거리의 치안이 불안해서 쿨링센터에 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을 감안해, 7월 중 폭염이 가장 심했던 4일 동안 사람들이 집을 일일이 방문해 건강 상태를 확인했습니다. 그 숫자가 총 3만 명에 달했다고 합니다.
그 결과, 비슷한 수준의 폭염이었는데도 시카고에서 폭염으로 인해 사망한 사람의 수는 1995년 700명보다 훨씬 적은 1999년 110명에 그치게 됩니다. 폭염으로 인한 사망을 자연재래로, 우연히 발생한 사로로,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지 않고 사회적인 원인을 찾고 그에 기반을 두고 대응 전략을 마련했던 행정기관과 그에 적극적으로 협조한 시민들이 거둔 성과였습니다.
어떤 사회든 그 구성원이 우리의 이웃이라고 생각하고 사회 공동체는 회피하지 않았고, 국가나 사회 공동체의 존재이유를 분명하게 알 수 있게 해줍니다.




-건강은 공동의 책임이다

인간은 사회 속에서 살아갑니다. 우리 몸에서 나타나는 병리적인 변화는 항상 유전적인 요소와 환경적 요소가 함께 상호작용하며 나타나고 진행됩니다. 공동체와 완전히 분리되어 독자적으로 살아가는 개인은 존재할 수 없기에, 사회적 환경과 완전히 단절되어 진행되는 병이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인간을 개개인으로만 바라볼 때 그런 사실은 쉽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지난 100년간 거대한 혁신을 이뤄낸 현대 의학으로도 알기 어려운 내용입니다. 병원에 찾아오는 개개인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병원의 임상진료 과정에서는 환자 개개인의 몸에 새겨진 사회구조적 원인을, 현상 너머에서 작동하는 정치, 경제적 구조와 역사를 이해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한 걸음 뒤에서 바라보면 이들을 아프게 했던 ‘원인의 원인’이 보입니다. 그 원인은 개인의 것이 아닙니다.

공동체는 그 구성원들이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책임을 지니고 있습니다. 건강은 우리가 원하는 것을 추구하기 위한 기본 요건이기 때문이지요. 건강은 인권을 지켜내기 위한, 정치, 경제적인 기회를 보장받기 위한 조건입니다. 건강해야 공부할 수 있고 투표할 수 있고 일할 수 있고 사랑할 수 있으니까요.(72p)


이런 점을 볼 때 과거 정부에서 “정부는 콘트롤 타워가 아니다”라는 말이 얼마나 자신들의 무능함을 증명하고 무책임했던가를 되새기게 됩니다.


2. 질병 권하는 일터, 함께 수선하려면

이 장에서는 해고 노동자, 위험한 일터에 일하는 가난한 노동자, 아파도 일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과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하는 의사들에 대한 주제를 가지고 생각합니다. 대표적으로 예를 든 사건은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입니다. 사실 언론을 통해 많은 소식을 접하고 있었지만, 자료를 통해 그들의 상처를 확인하니까 더욱 안타깝게만 느껴집니다. 많은 분들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고 있었고(105명 50.5%), 29명이 뇌출혈, 심장마비, 당뇨 합병증으로 사망했습니다. 더하여 가장 흔한 사망원인은 ‘자살’로 나타났습니다.

악몽과 불면증에 시달리고 두려움에 사람을 피하며 고립에 시달리던 이들이 스스로의 손으로 삶을 마감했습니다. 그렇게 세상을 떠난 이들 중에는 해고된 ‘죽은 자’와 그의 아내가 있었고, 해고되지 않고 공장에서 일하던 ‘산 자’도 있었습니다. 2009년 4월 발표된 쌍용자동차 노동자 2,646명의 정리해고는 ‘산 자’와 ‘죽은 자’를 나눴지만 결국 그들 모두를 병들게 했던 것입니다.(89p)

굳이 원인을 따지자면 경영부실이지만 그들에게 온 것은 일방적인 정리해고였습니다. 또 그들이 싸웠다는 이유로 ‘블랙리스트’에 올라 재취업조차 허용되지 않는 상황을 그들은 감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지는 못할망정 사지에 내 몬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입니다.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에게 국가란 무엇이었는가

저자가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에게 처음 관심을 가졌던 것은 계속해서 발생하는 자살 때문이었습니다. ‘무엇이 그토록 해고노동자와 그 가족을 삶과 죽음의 경계에 놓이게 했을까.’라는 것이었는데요.

그러나 연구를 진행하면서 질문은 달라졌습니다.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어떤 경로로 실업이 자살의 원인이 되는 것일까’, 아니 좀 더 구체적으로 ‘한국은 해고된 노동자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에 대해 답하고 싶었습니다.(91p)

이 질문은 연구자인 저자뿐만 아니라 우리의 공동체 모두가 고민해봐야 할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우리도 이 공동체의 소속이고 언제든 실업의 위기에 당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더하여 해고되더라고 사회안전망은 있는지, 우리는 나의 직접적인 일이 아니라고 너무 방관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반성하게 됩니다.

해고된 이후 구직 과정에서 누구의 도움을 받았는지를 물었을 때, 응답자 중 가장 많은 37명(42%)이 ‘친구 및 지인’이라고 답했고, ‘동료해고자’ 17명(19.3%), ‘가족 및 친인척’ 16명(18,2%)에 불과 했습니다. 해고노동자들이 직장을 구하는 데 있어 정부의 고용센터 프로그램은 실제로 도움이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쌍용차 해고노동자의 삶은 해고로 직장을 잃었을 때 기댈 사회적 안전망이 부재한 한국사회에서 그 점을 해고자와 그 가족이 온전히 떠안게 된다는 점을 극명하게 보여주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익숙한 구호처럼 ‘해고는 살인’일 수밖에 없을까요?(93p)

당시의 국가의 권력을 잡은 권력이 역량이 모자랐을 수도 도덕적 가치가 국민의 기대에 못미쳤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들도 우리의 이웃이고 국가구성원인 만큼 그들의 목소리도 충분히 들어주고, 다른 대안을 제시했다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저자는 쌍용차와 같은 경우인데도 자살이 줄어든 스웨덴의 예를 들고 있습니다. 실업률이 증가하면 그 사회의 자살률이 증가한다는 것은 학계에서 널리 인정받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실업률과 자살률의 관계를 연구한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볼 수 있습니다.

유럽 26개국에서 실업률의 증가가 어떻게 자살률에 영향을 주는지를 검토한 것입니다. 그중 특히 주목할 점은 스웨덴을 비롯한 몇몇 북유럽 국가에서는 나머지 국가들과 달리 실업률과 자살률이 아무런 관련성이 없었던 점입니다. 예를 들어 1991년 경제위기를 겪으며 노동자의 10퍼센트가 직장을 잃은 상황에서도 스웨던의 자살률은 오히려 꾸준히 감소했습니다.(93p)

연구팀은 그 주된 이유로 ‘적극적 노동시장 프로그램’에 대한 국가의 투자에 주목했습니다. 스웨덴에서는 노동자가 직장을 잃으면, 그로부터 30일 이내에 정부 고용지원센터에서 실업자를 위한 ‘개인별 활동 계획’을 작성하고, 6주에 한 번씩 직업 트레이너가 구직활동 방향을 상담합니다. 실업자가 구직활동을 꾸준히 하는 동안, 지원센터 프로그램의 매니저는 기업과 협력하며 최근에 해고된 이들을 위한 일자리 창출 기회를 찾아냅니다. 직장을 잃은 이들이 좌절하지 않고 사회로부터 버림받았다고 느끼지 않도록, 그래서 그들이 건강하게 일터로 복귀하도록 적극적로 지원하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나라도 고용지원센터를 운용하기는 하지만 문제는 양질의 일자리 문제인 것 같기도 합니다. 쌍용차와 같은 안정적인 일자리보다도 비정규직 같은 열악한 환경의 일자리들만 기다리고 있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입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사회의 공동체 구성원들의 철학의 문제와 관점의 문제일 수도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 점을 저자도 잘 지적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돈으로 해고노동자의 삶이 온전히 나아지기는 힘들겠지요. 더군다나 교육, 의료, 주거와 같은 삶에서 필수적인 재화가 보장되는 사회와 그렇지 않은 사회에서 100달러의 추가적인 투자는 노동자의 삶에 매우 다른 의미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투자는 한 사회가 해고노동자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에 대한 철학과 자세가 드러나는 지점이기도 합니다.(95p)





-아파도 일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

이 책 본문에도 언급이 되었지만 1997년 IMF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급격하게 고용형태가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IMF이전에는 거의 대부분의 고용이 직접고용이었던 반면에, 이후에는 대부분의 회사들이 아웃소싱이란 이름으로 하청이나 파견직으로 일하는 비정규직 형태로 고용했습니다. 이 책에서는 고용형태와 어떤 형태로 건강에 악영향을 주는지에 대한 연구입니다.

지난 1년간 몸이 아픈데도 참고 일한 경험이 있는 경우를 측정했을 때,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원청 정규직 노동자들에 비해 그 빈도가 2배 이상 높게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지난 1년간 몸이 아파서 직장 일을 하루 이상 쉬었던 경험이 있는지 물었을 때는, 원청 정규직에 비해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의 ‘그렇다’라는 응답률이 오히려 30퍼센트 이상 낮았습니다. 언제 해고될지 모르고 또 계약을 갱신해야 하는, 또 쉬는 만큼 그대로 월급이 깎이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연차나 병가를 쓰지 못한 채 몸이 아파도 참고 일하고 있었던 겁니다. 회사에 밉보이면 언제 해고될지 모르니, 그들은 더 많이 아파도 덜 쉬고, 그래서 더 많이 참고 일했습니다.(123p)

아픈 것을 참고 일하는 노동자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요. 더구나 상대적으로 낮은 급여 때문에 회사의 일과가 끝나고서도 알바나 다른 일도 다른 일을 병행하면서 수입을 늘리고자 하는 노동자들도 있지만, 결국에 돌아오는 것은 피로누적으로 인한 과로로 아픈 몸을 더욱 상하게 만들기까지 합니다. 어느 순간 그 노동자는 버티지 못하고 쓰러질 것 입니다. 노동자들의 건강을 연구한 연구 자료에도 고통을 참고 일하는 노동자들을 방치하면, 그들의 건강 상태가 심각하게 나빠져 장기적으로 업무 효율에 지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한국의 기업들은 그런 우려를 하지 않습니다. 대기업들은 그 부담을 하청업체에 넘기고, 하청업체는 노동자 개인에게 그 부담을 넘기면 되니까요. 기업은 버티지 못한 병든 노동자를 해고하고 새로운 비정규직 노동자를 채용합니다. 한국사회 노동시장에서 가장 약한 사람에게 부담을 떠넘기는 잔인한 논리로 운영되고 있는 것입니다.
예전에 필자가 뉴스 대담 프로그램을 보면서 어떤 경영자가 나와서 앵커의 아웃소싱에 대한 물음이 생각납니다. 경영자는 “아웃소싱 경영은 경영의 예술이다”라는 짧은 대답을 했는데요. 회사 경영에는 예술일지는 모르지만, 같이 살아가야하는 공동체의 시선으로는 매우 독단적이고 기업논리에만 편중한 발언이 아닌가싶습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의 대기업이나 기업인들은 대부분 이런 경영방침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웃소싱 경영의 문제점은 노동자의 건강 문제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사회 문제를 야기하고 있습니다. 소득불평등으로 인한 양극화가 심화되고, 기업들은 모든 법적인 불리한 문제들을 하청에 전가하고 개인에게 책임을 돌리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도 언급이 되어 있지만 대표적으로 나타난 게 세월호 사건이라고 생각됩니다. 컨트롤 타워가 아니라는 정부,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정부 관료들, 사건 현장에서 한 시간 급한 구조를 해야 할 시간에 사진을 찍고 있은 한심한 국회의원들이 있었지요. 책임을 고위 관료가 지지 않다보니 누가 처벌을 받았는지는 국민 모두가 아는 사실입니다. 당시 현장에 출동해서 구조활동을 하던 해경 말단 대원만 처벌을 받았을 뿐, 그 큰 아픔과 고통의 책임은 세월호 사고 가족들과 국민의 몫이 되었습니다. 더 안타까운 것은 아직도 사고 원인 파악이 되지 않고 유족들의 가슴에 맺힌 아픔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3. 끝과 시작, 슬픔이 길이 되려면

참사를 연구하고 기록해야 하는 이유

뒤돌아보면 지난시간 한국사회에서는 많은 참사가 있었습니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1999년 씨랜드 화제 참사, 2003년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 2014년 세월호 참사까지요. 일부에서는 참사를 잊자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글을 쓰는 필자 입장에서는 직접적인 당사자나 유족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그 참사로 인해 혹여나 불이익이 되는 사람들이 여론 조성을 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됩니다. 역사를 잊은 자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말이 있듯이 참사도 마찬가라라고 생각됩니다. 저자도 아픔이 기록되어야 하는 이유를 정확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아픔이 기록되지 않았으니 대책이 있을 리도 없었겠지요. 그 참사의 원인을 제공했던 국가는 그 아픔을 개개인에게 넘긴 체, 계속 정권이 바뀌며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세월호 참사마저 그렇게 보내고 나면, 우리에게 공동체라고 부르는 무엇인가가 영영 사라져버리지는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기록되지 않은 역사는 기억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기억되지 않은 참사는 반복되기 마련입니다. 세월호 참사까지 기록 없이 이렇게 지나간 사건으로 남겨둘 수는 없습니다. 세월호 참사가 이 참사의 연쇄 고리를 끊었던 사건으로 기억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166p)


분명한 것은 기록되지 않고 쉽게 잊혀지는 참사는 지금 내가 당하지 않았다고 해서 나에게 또는 우리 가족들에게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참사들이 남의 일이 아닌 이유이기도 합니다.


사회적 고통을 사회적으로 치유하려면

저자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역사와 치료는 무엇이 사회적 의미에 대해서도 언급했습니다. 시작은 제1차 세계대전을 시작으로 이후에 계속된 2차 세계대전, 베트남전을 겪은 젊은 군인들의 우울증 불안증세, 트라우마로 시작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고 우리 모두의 책임으로 봐야한다는 것입니다. 세월호나 국가적 참사를 겪은 분들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분들은 아직도 사고가 끝맺음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고, 그 자체가 전쟁이기 때문이지요. 우리에게 근현대사를 생각해보면 많은 국가 폭력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이 사건은 당사자들뿐만 아니라 모두가 공감해야 되고 같이 치유해 나가야할 문제라는 것이지요.

고통은 근본적으로 개인적인 것입니다. 타인의 고통을 나눈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고통이 사회구조적 폭력에서 기인했을 때, 공동체는 그 고통의 원인을 해부하고 사회적 고통을 사회적으로 치유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트라우마에 대한 사회적 인식 공유를 통해, 명예회복-보상-처벌을 거쳐 사회관계 회복개선’으로 나가는 사회적 치유작업이 함께 되어야 합니다.(176p)



4. 우리는 연결될수록 건강한 존재들

우리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 존재합니다. 가족은 물론이고 친구, 이웃, 직장 동료까지 수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교류하며 함께 살아갑니다. 이러한 사회적 관계망으로 인해 우리의 삶은 타인의 삶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고 상호 간에 영향을 주고받습니다.
이 장에서는 미국의 총기규제와 총기소유의 합법화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문제가 되었던 가습기 살균제 피해가 무엇이 문제가 되었는지를 살펴봅니다. 특히 가습기 살균제는 정권에 따라 달라지는 기업규제에 따라 일반인들이 어떤 피해를 줄 수 있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생각됩니다.

-‘살균 99.9%’ 광고하던 제품이 사람을 죽였다

이미 가습기 살균제 사용으로 인한 사망자 수는 150명이 넘습니다. 그러나 짐작할 수 있듯이, 이것은 공개적으로 드러난 최소한의 숫자일 뿐입니다. 1994년부터 판매된 가습기 살균제의 사용자는 80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역학조사로 그 유해성이 밝혀지기 전 ‘원인 미상 폐질환’이라는 이름으로 사망한 사람들의 수가 얼마였을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리고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사망에 이르지 않았지만 망가진 폐로 인해 아파하고 고생했을 것입니다.(280p)
사실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도 이 책을 보기전까지만 해도 피해자가 이 정도까지일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더 화가 나는 것은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피해 사건들이 조명되면서, 유족들은 이런 위험한 제품을 제조한 회사와 이를 제대로 규제하지 못한 정부기관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지만, 돌아온 것은 연이은 패소였다고 합니다. 판결의 이유가 되었던 것들이 책에 나열되어 있지만 글을 읽으면서도 재판부가 피해자의 의견은 많은 부분을 묵살하고 기업이나 정부의 입장에서 대변했다는 뉘앙스가 강하게 느껴집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는데, 피해자만 있고 가해자는 없다니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수많은 유해물질이 방출되는 제품들에 대한 안전문제와 미리 인지 하지 못했던 위험성에 대한 책임은 누구에게 지워져야 할까요.




모두의 안전을 위해 포기해서는 안 될 ‘최소한의 규제’

다행히 뒤늦게나마 국가가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고 피해자들을 지원한다는 점은 다행입니다. 그렇다고 인정하는 것만으로 끝나서는 안되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가습기 살균제와 같은 사건이 왜 일어났는지에 대한 정확한 원인 파악도 중요하고, 더 중요한 것은 비슷한 사고가 다시 나타나서는 안된다는 것이지요.

간혹 신문기사를 통해 ‘경제 활성화’를 명분으로 앞서 언급한 화학물질 규제를 느슨하게 만들기 위해 여러 단체가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이야기를 접하곤 합니다. 현장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반영하지 못한 법이 적절히 수정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지만, 그런 논의를 볼 때마다 한국사회에서 만병통치약처럼 통용되는 ‘경제 활성화’를 이유로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규제를 포기하는 것은 아닐지 두렵습니다.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진행되는 경제 활성화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원인 미상 간질성 폐질환’이라는 낯설고 무력했던 진단명으로 사라져간 수많은 갓난아이와 임산부들의 죽음으로부터도 우리가 배우지 못한다면, 한국사회에서 이 참사는 또 다른 형태로 반복될 것입니다.(285p)





전체 감상평

사회역학자로서 저자가 이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이 따뜻하게 느껴지는 책입니다. 현재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많은 것들이 양극화되면서 각자가 처한 생각들 또한 극명한 차이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지난 대선과 지방선거에서도 볼 수 있듯이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지지성향도 달라지고, 정치적 기득권 세력들은 자신들의 지지세력들을 이용하고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최대한 취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자도 자칫 기득권의 울타리에 서서 사회적 보호망 밖에 서있는 사람들에게 냉정한 시선을 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을 한 필자가 창피하게 느껴졌습니다. 마지막 페이지를 보면서도 김승섭님의 철학은 매우 따뜻한 분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모든 것들이 책의 들어가면서의 관점의 문제라고 지적한 글이 이 책의 모든 것을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공동체 구성원을 대상으로 사회역학적인 건강을 주제로 쓴 책이지만,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도 함께 볼 수 있었던 같습니다.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우리나라는 선진국의 반열에 올랐지만, 그 과정에서 보이고 싶지 않은 혐오와 차별, 고용불안, 재난과 참사 들이 있었고요.
상처라는 것이 눈에 보이는 육체적인 상처가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책을 읽으면서 정신적으로 깊이 각인된 상처도 육체적인 상처못지 않게 심각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정신적인 상처는 보이는 상처와는 다르게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 무섭습니다. 그 상처는 자기도 모르게 성장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것도 있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도 만들어지고, 참사나 재난으로도 만들어집니다. 무서운 것은 피해 당사자나 유족들이 그 상처를 치료하지 못하고 개인의 상처로만 남을 때입니다. 우리 사회가 발전하고 있지만, 눈에 보이는 발전과는 다르게 그 속에서 소외되고 고립되어 가는 계층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가 자살률이 높아지는 이유가 한 가지 이유이기도 하고요.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의 등장인물 중에 ‘장 타루’라는 인물이 나옵니다. 소설의 도시 오랑시의 한 호텔에서 묵으면서 방랑생활을 하고 페스트가 창궐하자 의사 리외를 돕는 인물로 나오는데요. 장 타루가 방랑생활을 하게 된 집안 배경이 흥미롭습니다.
아버지의 직업은 검사로서 집안에서는 어린 장 타루와 같이 놀아주고 여행계획도 같이 세우는 다정한 아버지입니다. 하루는 아버지가 자신의 자랑스러운 직업을 보여주기 위해 법정에 아들인 장 타루를 입장시킵니다. 재판장에는 검사인 아버지가 죄를 물을 죄인이 잔뜩 겁을 먹은 채 불안한 눈빛으로 선고를 기다리고 있고 장 타루는 죄수의 흔들리는 눈과 마주칩니다. 재판은 시작되고 결국 죄수는 검사인 아버지에 의해 사형판결을 받습니다. 충격을 받은 장 타루는 가출을 하면서 방랑생활을 하게 됩니다.
검사인 아버지는 자신의 직업을 사회적으로 명망 높다고 생각하고 아들에게 자랑스럽게 보여 주려고 했지만, 법정에서 본 아버지는 장 타루에게 또 다른 이름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살인자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장 타루는 가출을 하게 되고 방랑생활을 하면서 사형 제도를 폐지하기 위한 노력을 합니다.

어찌 보면 우리 사회도 같은 울타리 안에 있지만, 같은 사건과 사고를 보고서도 장 타루와 장 타루의 아버지와 같은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입니다. 그 입장이 고용주와 피고용주, 국가를 관리하는 정부관리와 국민, 기득권 세력과 비 기득권, 양극화 된 사회의 시선들이 이 책에서 우리의 건강과 안녕을 위협하는 관점의 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가 거대한 나라도 아니고, 나의 주변의 이웃사람들이 있어야 나의 부, 권력, 기득권도 빛이 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한 배를 탄 공동운명체임을 절대 잊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웃의 행복이 나의 행복이고 이웃의 불행이 절대 나의 행복이 될 수도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저자가 전하는 따뜻한 메세지로 글을 마무리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프로이트를 인용하면서 인간이 하는 모든 행동은 결국 자신의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해 이기심을 채우는 일에 불과한 것이라고 말하기도 해요. 하지만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우리 결국에는 이기심을 뛰어넘는 삶을 살아보도록해요. 저도 열심히 노력할께요.(305p)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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