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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심리학, 철학

<한나 아렌트>전기 전체 감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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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20세기 최고의 여성철학자로 불리우는 한나아렌트의 전기입니다.

  한나 아렌트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이해관계에 따라 어느 한 가지 생각에 치우치지 않고 최대한 객관적으로 상황이나 세상을 바라 보는 것입니다. 한나 아렌트 철학의 근본에는 전체주의가 있습니다. 그러나 사건의 또 다른 이면에는 유대인이 있었습니다. 자신이 유대인이라도 이미 저질러진 유대인의 잘못을 지울 수는 없다는 것이고 같은 유대인이라고 면죄부가 될 수 없으며, 또 그것을 정확히 바라봐야 더 나은 미래를 기대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현재 만끽하고 있는 자유도 어느 정치지도자의 잘못된 판단이나 집단의 오판으로 인해 어느 순간 폭력성을 띠게 될 것이며 한 체제나 한 사람을 위해 다수의 희생자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한나 아렌트가 경고한 대로 현재에도 코로나 속에서 양분된 자유론자와 통제론자들의 대립, 인종차별, 다른 한 곳에서는 미얀마와 같은 불행한 국가적 폭력사태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언제나 극단적인 사고는 불행을 불러올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며 한나 아렌트가 전하는 사유(생각)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봅니다.

 

감상문이 길기 때문에 바쁘신 분들은 굵은 글만 읽고 자신의 생각과 비교해 보세요.

 

지은이: 알로이스 프린츠

김경연: 옮김

장르: <한나 아렌트> 전기

 

  한나 아렌트는 철학책을 읽다보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당대 최고의 여성 철학자입니다. 철학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악의 평범성'에 대한 이야기는 모두가 아는 사실일 것입니다. 필자 역시도 간단한 두 문구가 악과 평범함이 대비되는 것에 대해 처음에 참 독특한 내용일 것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본문에서 언급을 하겠지만, 널리 알려진 악의 평범성의 탄생 배경을 자세히 살펴봤습니다. 아울러 책 본문에서 필자에게 더 관심을 끈 것은 현 시대의 '악의 평범성'에 대한 공감보다 한나 아렌트가 발표당시의 상황이 매우 흥미롭게 다가왔습니다.

  이 책은 한나 아렌트의 전기로서 최고의 그녀가 여성 철학자가 되기까지 성장과정과 그녀가 나치즘과 전체주의를 피해 독일로 프랑스로 그리고 미국까지 망명을 해서 학자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한 쉽지 않은 인생여정에 그녀가 생각하는 '사유'와 철학적 사고방식을 간접적으로 만나볼 수 있는 좋은 책입니다.

 

책 내용 살펴보기

  책의 내용이 많은 부분을 인상적인 부분이 많아 모두 인용하고 싶으나 그녀가 철학적으로 성장할 수밖에 없었던 유년시절과 망명시절을 이야기 이 글로 옮겨 보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한나 아렌트가 세계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전체주의의 기원>에 대한 집필을 하고, 그 중심에서 600만 명의 학살을 중심에 있었던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을 참석하고 <뉴요커>라는 잡지에 보고서를 제출한 뒤의 이야기를 이 글로 옮기며 필자의 생각을 전달하고자 합니다.

 

한나 아렌트의 성장과정과 독일에서의 유대계 사람들

  한나 아렌트는 19061014일 독일 하노버에서 유대계 아버지와 어머니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아버지 파울 아렌트는 결혼 후 지병인 '매독'의 재발로 한나가 어려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한나가 성장과정에서 눈여겨 볼만 한 것은 그녀의 성장환경입니다. 필자는 유대인의 방랑생활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서기 70년경부터 유대인은 국가가 없이 유럽의 각 나라에 정착하며 살았습니다. 한나가 살던 20세기 초 독일의 괴니히스베르크의 인구는 25만 명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유대인은 4,500만 명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어느 한 나라에 정착을 하게 되면 유대인들은 두 가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고 합니다. 유대인들의 고유전통과 종교를 지키느냐, 아니면 독일 환경에 순응 하냐에 따라 유대인사이에서도 큰 차이를 보이게 됩니다. 결국은 성장과정에 있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는 '정체성'의 혼란이 올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유대인들 사이에서도 잘사는 유대인과 그렇지 못한 유대인 사이에서도 생각의 차이가 분명히 드러남을 알 수 있 습니다. 독일 사회에서 유대인들은 천대의 대상이기도 했고, 경멸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퓌르스트처럼 오래 전에 정착한 중류층 독일계 유대인 가정들은 북부 시내 중심지인 '아우프 뎀 트락하임'에 살았다. 아렌트가와 콘가처럼 잘사는 유대인들은 후펜과 아말리엔아우와 같은 근교에 살았다.

  퓌르스트가와 아렌트가는 전혀 다른 계층에 속했지만, 문화와 종교 면에서 자유주의적 태도를 취할 뿐 아니라 가능한 한 비유대계 시민들과 다르게 살고자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비슷했다. 그들은 자신들은 당연히 독일인으로 생각했고, 역 지역에 사는 유대인들과 관련지어지는 것을 오히려 불쾌하게 여겼다. 그들이 보기에 역 지역 유대인들의 생활은 시대에 뒤처졌고, 더 수준 높은 독일 문화로부터 분리되어 있었다. "독일의 질서와 독일의 윤리가 유다의 천한 오두막에 들어섰나이다." 유대인 교구의 한 기도서에는 그렇게 쓰여 있었다. 대체로 자유주의적 유대인들은 사람들이 자신을 유대인이라 부르면 좋아하지 않았다. 그것은 이미 당시 독일에서 욕과 같았다. 사람들이 무슨 종교를 믿느냐고 물으면 차라리, '모세의 율법'을 믿는다고 대답하고 싶어 했다.(26p)

  훗날 나치에 의해 모두 고난의 길을 걸었지만, 그 이전에는 유대인들 사이에서도 생각과 깊은 간극이 드러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독일인이 되고 싶어 했던 유대인들은 완전히 그들의 사상과 관습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재밌는 것은 그들은 일 년에 세 번 있는 유대교 축일에 참석하면서도 크리스마스가 되면 트리를 세우고 노래를 부르고 선물을 주고받으며 성탄절을 축하했습니다. 기독교적 풍습을 의식적으로 받아들이면서도 대부분 양심의 가책을 함께 느꼈습니다. 또한 유대교의 식사 규칙에 맞는 청정한 식사만 하라는 계율을 지키지 않고 돼지고개와 햄도 식탁에 올리기도 합니다.

  이런 이중적인 유대인들의 행동이 문제가 되는 것은 성장과정에 있는 어린이들이었습니다. 한나 역시도 이러한 도덕적 혼란 속에서 자신이 거리에서 유대인임을 알게 됩니다. 그러면서 정체성에 혼란이 오게 되었고, 어려서부터 총명했던 그녀는 음악과 사회주의 사상과 여성운동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어머니 또한 독일 문화를 따르기를 원했지만, 어머니도 한나도 유대인의 혈통을 부정하지는 않았습니다.

  한나는 훗날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만약 내가 유대인임을 부정했더라면 어머니는 내 양쪽 뺨을 때렸을 것입니다." 마르타(한나의 어머니)는 유대인으로서의 태도와 마찬가지로 거기서 파생되는 모든 불이익에 단호하게 저항했다.(28p)

  그렇지만 모든 유대인 아이들이 한나와 같은 가정에서 생활하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한나는 어머니의 "절대적인 보호"를 받는다고 느꼈다. 그렇지만 다른 아이들은 이러한 보호를 경험하지 못하고 "영혼"이 유대인 배척주의에 "중독"되어 있음을 체험했다. 특히 유복한 독일계 유태인 가정들에서는 선조의 유산을 마치 물리치기 어렵지만 떨쳐버리고 싶은 표지처럼 생각했다. 그들은 '씁쓸한' 마음으로 마지못해서 선조의 유산을 고수하는 동시에, 비 유대인 사회에서 인정받고 가능한 한 출세하려는 사회적 야심에 온통 마음이 쏠렸다. 훗날 한나는 이러한 '씁쓸한 속마음''외부를 향한 자부심'이 뒤섞인 상태가 유대인에 대한 증오와 같은 사실들을 못 보게 했다고 여긴다. 또 이 계층의 유복함은 유대인에 대한 증오를 거든다. 한나는 "아름답게 치장된 가정에 떠도는 둔탁하고 유독한, 어린이들을 쇠약케 하는 공기"에 대해 탄식한 프란츠 카프카(체코 태생의 독일작가)의 말에 공감한다.(29p)

  유능했고 많은 재산을 축적한 유대인들이지만 그들에게도 극복하지 못한 인간의 이기심은 어쩔 수 없었나 봅니다. 앞선 한 세대의 강인함과 생존력은 다음 세대에게는 불만과 증오를 가져오며 고정관념이 될 수 있고, 유복함의 표출은 독일인들에게 경계와 경쟁의 대상이 됨은 당연했으리라 짐작됩니다.

  이러한 환경이 한나 아렌트에게는 '정체성의 혼란'으로 이어지면서 '삶에 대한 고민'을 깊게 하게 되는 계기가 된 것으로 보입니다. 교육에 신경을 많이 썼던 어머니 마르타는 한나가 성장하면서 어머니의 보호를 벗어나려는 시도를 합니다. 심지어는 '복종하지 않고 버릇없이' 구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마르타는 한나가 '다루기 어렵고' '속내를 알 수 없는' 자식이 되었다고 한탄합니다.

 

  1차 세계대전의 혼란 속에서도 한나는 어머니의 도움으로 학업을 어갑니다. 학업태도가 불량하여 15세 때 퇴학을 당하기도 하지만 이 또한 어머니의 도움으로 대학까지 졸업하게 됩니다. 그것도 다른 학우들보다 1년 빠르게 졸업을 하게 됩니다.

 

  혼란스러운 성장기를 보내고 대학에서 학업을 이어가며 정신적으로 그녀를 만족시켜주는 스승도 만납니다. 그러면서 정신적으로 많은 성장을 하게 되고 정체성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철학에 대한 깊은 이해는 없었지만, 삶이 단순이 생존으로 끝나는 것에 만족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졸업시험과 함께 인생의 한 단락이 끝났다. 쾨니히스베르크를 떠나야 했지만 그녀의 생활 감정은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 '놀라울 정도로 당연하게' 그녀는 자신의 인생을 '지금 여기와 장차 거기'로 갈라놓는 버릇이 들었다. 그녀가 영위하고 있는 생활, 학창시절, 베를린에서의 체험들, 이 모든 것은 잠정적인 것이었다. 그녀는 어떤 다른, 진정한 삶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으리라고 굳게 믿었다. 한나는 시로써 그것을 기다리는 초조함과 감상적인 기분을 표현했다.(43p)

 

시간이 흘러가고

하루하루가 지난다.

얻은 것이 있으니

단순한 생존

 

  한나는 '단순한 생존'에 만족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더 많은 것을 얻고자 했습니다. 그렇지만 어떤 길로 나아가야 하는가? 그 대답은 분명했습니다. 바로 '이해해야 한다.'는 충동을 계속 좇아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그녀에게 삶과 죽음의 문제와 같았습니다. 그녀는 이 충동을 철학에서 가장 빨리 충족시킬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후 하나는 평생 정신적인 스승인 하이데거와 야스퍼스를 만나 평생 철학을 나누며 살아갑니다. 한나의 스승인 하이데거와 야스퍼스는 친구 사이로써 친분과 철학을 공유하지만, 2차 세계대전 이후 둘의 사이는 멀어져 갑니다. 이유는 하이데거가 나치에 협력하여 많은 유대인박해에 동참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한나도 알고 있었지만, 철학자로서 스승으로 하이데거는 인연을 끊지 못하고 평생 편지를 주고받으면 살아갑니다.

 

 

성장 후 전체주의와 마주치다.

  1933년 히틀러가 수상으로 지명되면서 독일인들의 반유대주의에 대한 핍박은 더해져 갔습니다. 그러나 유대인 중에서도 '파리아(현지 사회에 동화되지 못한 유대인')과 파브뉴(현지 사회에 동화된 유대인. 생각은 천박하고 돈만 밝히는 유대인들)로 나누었습니다. 파리아는 한나와 같이 정치적 지위에 대해 자각하고 정치적 역할을 의식하게 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유대인은 '파브뉴'가 되려고 할 뿐 아니라 시민도 되고자 한다. 유대인은 자력으로 자신이 속하지 않는 사회로 들어가는 길을 발견하고자 한다. 그에 반해 '파리아'는 자신의 곤궁을 덕으로 만들고 유대인으로서 사회에서 국외자로 머물며, 라헬이 말했듯이 '사랑, 나무, 아이들, 음악'이 있는 "참된 현실"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간직하는 사람이다.(77p)

  당시 독일 사회에 동화된 파브뉴들은 자신들이 독일인처럼 처우를 받고 유대인 박해까지도 생각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독일의 반유대주의 정책과 공포정치는 점점 심해져만 갔습니다.

  그러나 한나를 놀라게 한 것은 나치의 공포정치보다는 여러 지식인 친구들과 친지들의 태도였다고 합니다. 바로 이들이 나치 운동을 열광적으로 받아들였던 것이었습니다. 박해받을까 봐 무서워서였다면 한나로서는 그나마 용서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라 그들은 자의적으로, 완전히 확신에 차서 그렇게 행동했습니다. 그녀는 훗날 이렇게 회상합니다.

  나빴던 것은 그들이 정말로 그렇게 믿고 있었다는 점이에요! 그 사람들은 히틀러에 대한 신념들을 날조해냈는데 그건 부분적으로는 굉장히 흥미로운 상황이에요! 정말로 환상적이고 흥미롭고 복잡한 현상이죠! 정상적인 수준을 훨씬 웃도는 상황입니다! 나는 그로테스크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들은 자신들이 고안해낸 생각의 덫에 빠진 거죠."(81p)

  이런 이유로 한나는 독일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느끼고 독일과 결별을 하게 됩니다. "그 사실을 절대 잊지 않을 것이다! 어떤 종류가 됐건 지적인 활동에는 두 번 다시 관연하지 않으리라. 그런 무리하고는 조금도 연을 맺지 않으리라."라는 말을 남기고 독일을 떠나게 됩니다.

  이 후 한나는 파리에서의 수용소 생활과 스페인을 거쳐 리스본에서 미국의 뉴욕으로 유럽을 탈출한데 성공합니다.

 

 

 

유리 상자 속의 허깨비(아돌프 아이히만)

  1960511일 나치에서 유대인 박해와 학살의 전범으로 아르헨티나에서 도피생활 중이던 아돌프 아이히만이 이스라 엘 첩보기관에 의해 체포됩니다. 아이히만 사건은 한나 아렌트의 머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대단히 일직 독일을 떠났던 그녀는 나치의 독재를 멀리서만 들어 알았습니다. 아이히만의 재판은 어쩌면 나치 지배의 전형적인 대표자를 체험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몰랐습니다.

  당시 한나는 유럽 여행에서 뉴욕으로 돌아와 주간지 <뉴요커>의 기자에게 재판 보도기자 자격으로 자신을 재판장인 예루살렘에 보낼줄 수 있냐고 물었습니다. 당신 한나 아렌트의 명성을 알고 있던 주간지 측에서는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모든 여행경비를 지불하기로 했습니다.

 

재판장에서 한나 아렌트가 본 아돌프 아이히만

  한나는 아돌프 아이피만이 '유리 상자 속의 허깨비' 같다고 생각했다. 그는 중키의 날씬한 50대 중반으로 "이마가 뒤로 벗겨지고 치열이 고르지 않았으며 근시였다 그는 재판 내내 여윈 목을 판사석을 향해 뻗치고 앉아 자세를 유지하려고 애썼다." 한나 아렌트가 처음부터 이 유리 칸막이 속의 남자가 '괴물';이라는 인상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바보 얼간이'가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밀려올 정도였다. 그는 자신의 나치 경력 가운데 가장 중요한 사실들을 깨끗이 잊었다. 그에 반해 분위기와 감정들은 대단히 잘 기억해 냈다. 아이히만의 말은 거의 모두 '상투어'로 꽉 찼다. 그는 판에 박힌 말이 아닌 말은 한 문장도 말할 수 없었고, 어떤 일을 자신의 입장이 아닌 다른 입장에서 볼 수 있는 능력이 없었으며, 자꾸만 '의기양양한 감정'을 드러냈다. 그녀는 하인리히에게 이 감상적인 어리석음에 대해 이렇게 써 보냈다. "당신은 그가 기꺼이 '공개'적으로 처형당하고 싶다고 했다는 이야기를 읽었을 거예요. 정말 어이없어 할 말이 없을 정도예요."(219p)

  이 글을 읽고 필자는 전에 알고 있던 아이히만과 한나 아렌트가 직접 목격한 아이히만의 느낌이 조금은 다르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철학서적을 읽을 때 아이히만은 유대인 박해의 중심에 서 있었던 '괴물'이었지만, 정작 재판장에서는 우리가 알고 있는 '평범한 사람'이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한나 아렌트가 본 아이히만은 그보다 더 덜 떨어진 사람으로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이 재판에서의 아이히만을 우스꽝스럽다고까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재판에서 다루어지는 사실들은 상상할 수 없이 잔혹했는데, 그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될 아이히만의 정신 상태는 심리분석가들의 진단에 따르면 '완전히 정상'이었다고 합니다. 한나가 보기에 이러한 기이한 대조야말로 아이히만과 나치즘의 전체주의에 대해 배울 필요가 있는 중요한 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한나는 재판의 진행과정에 실망했습니다. 고소인단은 다시 한 번 유대인 박해의 잔혹성을 보여주기 위해 엄청난 양의 증거와 자료를 제출했습니다. 물론 대부분은 아이히만과 거의 관계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아이히만의 잔혹성을 전부 보여주려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지만 한 문장도 제대로 끝맺지 못하고 우둔한 답변만 하는 산만하기 짝이 없는 사내는 여전히 유리 상자 속에 들어앉아 있었습니다. 증언을 경청하는 과정에서 유대인 말살 작업에 있어 아이히만의 역할이 구체적으로 조명되는 경우에도 내세워진 대로 거물 조직자가 아니라, 그가 거듭 맹세하듯 단지 자신의 의무를 행했던 하급 담당자임이 드러났습니다.

 

"평범한 악이 전 세계를 멸망시킬 수 있다."(228p)

  1963216일 주간지 <뉴요커>에 아이히만 재판에 대한 한나 아렌트의 다섯 편의 보고서 가운데 첫 번째 글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악의 평범성에 대한보고"라는 제목으로 실리게 됩니다. 그리고 316일 마지막 글이 나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당시 이 보고서가 실리고 대부분의 유대인들이 한나의 글에 격분해 항의 전화가 울려댑니다. 상식적으로 한나도 유대인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유대인들이 긍정적으로 생각할 것이라는 필자의 예상과 정반대의 현상이 생긴 것입니다. 당시 유대인 단체들은 한나 아렌트에게 선전포고를 한 셈이었습니다. 반비방 연맹은 그녀의 아이히만 책에 반대하는 투쟁 노선과 자료들을 전달하는 두 개의 비망록을 편찬했습니다. 거기서 그녀는 유대인들이 다른 사람들 못지않게 유대인 대학살에 책임이 있다고 비방했다는 이유로 자신의 유대민족을 배신한 배신자로 낙인찍혔습니다.

  특히 잡지 <아우프바우>는 그녀를 비판하는 사람들을 위한 포럼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냉혹'하고 '감정이 없으며' '차갑고' '참을 수 없이 건방'지고 '독창적'이 되려는 '뒤틀린 욕구'에 사로잡혀 있다고 했습니다. 비평가는 심지어 한나 아렌트가 '인간을 경멸하는 자'라는 극단적인 주장까지 했습니다.

 

  그렇다면 한나의 보고서에는 어떤 내용들이 있었는지 궁금했습니다.

  유대인 평의회는 유대인 공동체의 인정받는 대표자들이었다. 아돌프 아이히만은 예루살렘 재판에서 그가 유대인 말살조직을 운영하면서 이 평의회와 얼마나 긴밀하게 협력했는지를 자세히 진술했다. 한나는 보고서에서 아이히만의 진술을 유대인 공동체의 수장들이 유대인을 대학살하는 데 어떤 역할을 했는지 조명하는 계기로 삼았다. 그것은 '어두운 역사 전체에서 가장 어두운 장'을 건드리는 것이었다. 유대인 평의회의 적극적인 협력이 없었다면 계획적인 유대인 학살이 그토록 광범위하게 일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그녀는 이렇게 덧붙인다. '암스테르담, 바르샤바, 베를린, 부다페스트에서 나치들은 믿고 기댈 곳이 있었다. 바로 유대인들을 체포해 기차에 싣는 데 유대인 요원들이 도와주리라고 믿었던 것이다. 유대인 요원들은 인명과 재산 목록을 작성하고, 추방 비용과 학살 비용을 추방되어야 할 사람들에게서 조달하고, 빈 집을 색출해 경찰의 처분에 맡겼다. 마침내는 조직적인 몰수를 목적으로 유대인 공동체의 재산을 양도하는 쓰라린 결과에 이르게 될 때까지 말이다."(231~232p)

  한나를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그것은 '터무니없는 중상'이며 유대인 대학살의 희생자들을 참을 수 없이 조롱하는 말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유대인 지도자들은 어떤 의혹의 소지도 없는 존재이며, 나치와의 협력은 절망적인 상황에서 그나마 마지막 남은 것을 구하려는 최후의 수단으로 이루어졌다고 보았습니다. 한나 아렌트는 그녀의 보고서에서 이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더 나쁜 일을 막기 위해' 적들과 타협한다는 것은 저항의 형식이 아니라, 자신의 양심을 진정시키고 이미 상대의 게임 규칙을 받아들였음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교활한 전략이었습니다. 그녀는 또한 유대인들이 나치의 말살장치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가능성이 전혀 없었다는 견해도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개인적인 저항은 사실상 '절대적으로 무의미'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개개인에게는 범죄에 얽혀들지 않기 위해 '내적 망명' 속으로 후퇴하는 기회밖에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후퇴는 아무런 성과가 없었습니다. 테러의 촘촘한 그물은 저변이 더 확대된 가운데 조직적으로 저항했을 경우에만 찢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아이히만 보고서에서 한나 아렌트는 자신의 의도를 분명히 하기 위해 여러 유럽 국가들에서 벌어진 유대인 말살을 상세하게 다루었습니다. 루마니아와 같은 나라에서 나치는 지령에 따른 숙청작업을 기꺼이 실행하는 조력자들을 찾을 수 있었던 반면, 덴마크, 스웨덴, 이탈리아와 같은 나라에서는 상당한 어려움에 부딪혔습니다.

  특히 덴마크는 "몇 배나 우월한 폭력수단을 지닌 적에 대해 비폭력 행동과 저항이 얼마나 엄청난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모범적인 예였습니다. 덴마크 정부는 독일의 명령에 복종하기를 고집스럽게 거부했고, 유대인 별 표시를 받아들이라는 욕구에 고집스럽게 거부했고, 유대인 별 표시를 받아들이라는 요구에 대해 덴마크왕은 자신이 그 별을 다는 첫 번째 사람이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독일의 지휘관들은 기이할 정도로 양보를 하며 어쩔 줄 몰라 했고, 베를린에서 오는 지시들을 무시하고 믿지 않게 되었다. 한나 아렌트에 따르면 그들의 "냉혹함""햇볕 속의 버터처럼 녹아버렸다." 이렇게 부드러워지는 것이 바로 한나 아렌트가 이미 전체주의에 대한 책에서 기술한 전체주의 체제의 한 속성을 시사한다.(233p)

  그런식의 체제는 아무리 살인적이고 파괴적이라 하더라도, 어떤 단호하고 연대적인 저항이 나타나면 대단히 쉽게 내부적으로 와해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들의 본질이 기이할 정도로 아무런 실체가 없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러한 무실체성을 한나 아렌트는 아돌프 아이히만에게서도 찾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그를 영혼 없는 괴물로 내세우는 데 반대합니다. 그를 그런 식으로 악마화한다면, 비록 악마적인 위대함이라 할지라도 그에게 적합하지 않은 어떤 위대성을 부여할 위험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악마화는 사람들이 아무런 대항도 못하고 무기력하게 내맡겨져 검은 세력과 관계를 하고 있다는 인상을 일깨웁니다. 이 외견상의 어두운 세력 뒤에는 사람들이 어떤 대항 행동을 할 수 있고, 또 해야 하는 대단히 현실적인 조직이 숨어 있습니다. 사람들이 힘을 합해 공동으로 사태를 이끌어나가는 것은 명령과 복종과 무책임에 근거를 둔 모든 테러 체제보다 언제나 영향력이 크고 또 깊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아이히만을 "어릿광대"라고 불렀고 그가 체현한 악을 "평범"하다고 했던 것입니다.

 

 

한나 아렌트에게 사유(생각)이란?

  한나 아렌트는 인생이 수많은 시간을 정체정과 나치의 전체주의의 절대악과 맞서며 살았습니다. 그 시간들이 자신이 왜 이 세상에서 어떤 사람이어야 하고, 인간이 살아야할 최고의 가치를 생각하게 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 수많은 악을 보면서 한나 아렌트는 그토록 평범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악의 원인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파고듭니다. 그녀는 사람이 '마음이 악하거나' 나쁜 의도가 있어서 악하다고 생가하지 않았습니다. 또 악이 어리석음이나 지성과 관계가 있다거나 단지 도덕적 계율을 위반하는 것으로만 이해될 수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사유(생각) 자체가 사람이 악행을 못하도록 하거나 또는 바로 악행에 맞서는 소질 부여하는 조건 가운데 하나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한나 아렌트는 이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한다. 그녀가 보기에 사유의 조건 가운데 하나는 소크라테스가 발견한 조건, 즉 사유는 다름 아닌 '말 없는 대화'라는 점이다.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은 비록 세계와 인간들로부터 물러나 혼자 있긴 하지만 혼자가 아니다. 그는 사회에서 자기 자신과 더불어 있으면서 자기가 자신을 사유 속에서 전개하는 이른바 '하나 속의 둘'임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과 교제하듯이 사람은 사유 속에서 자기 자신과 교제한다. 여기서도 질문과 대답을 주고받으며, 말하고 대꾸한다. 이처럼 근원적인 '이중성' 속에 쌍방은 서로 떨어져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지붕 아래' 함께 살면서 어떤 식으로든 서로 화목하게 지내야 한다. 달리 말해서 나는 나 나신과 의좋게 지내야 하는 것이다.(277p)

  자기 자신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야 하는 이러한 필연성이 한나 아렌트에게는 사람들이 보통 양심이라 부르는 것의 원천이었습니다. 내적 대화로 이해되는 이러한 양심이 내가 부당한 행위를 하지 않도록 막습니다. 한나 아렌트는 묻습니다. "대체 누가 살인자나 거짓말쟁이와 함께 살고 싶어 하겠는가?"

  한나 아렌트는 훗날 출간된 저서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사유하지 않는 삶은 분명 가능하다. 하지만 그런 삶은 자신의 고유한 본질을 펼치지 못한다. 그런 삶은 무의미할 뿐만 아니라 제대로 살아있는 것이 아니다. 사유하지 않는 삶은 몽유병자와 같다.

  실제로 한나 아렌트는 사유하는 것을 즐겼다고 합니다. 한나의 절친인 메리 매카시는 한나가 일찍이 생각에 잠겨 있는 모습을 본 유일한 사람입니다. 그녀는 머리 뒤로 깍지를 끼고 마치 자기 자신도 잊은 듯이 꼼짝도 않고 소파에 않아 있었다고 합니다. 눈을 감고 있을 때도 있고 눈을 뜨고 있을 때도 있었습니다. 방을 지나는 사람은 누구나 까치발로 살금살금 그녀 곁을 지나가야 했습니다. 한나는 은거할 수 있는 그런 국면이 필요했습니디. 그녀에게는 그다음 다시 대중 속으로 들어가 토론하는 일도 그만큼 중요했습니다.

 

  한나 아렌트는 19765월 심근 경색으로 사망을 하게 됩니다.

 

 

전체 감상평

 

  한나 아렌트는 유대인과 독일 사회에서의 정체성의 혼란을 겪으며 성장기를 보내고, 두 번의 세계대전을 겪으며 온 몸으로 전체주의를 겪으며 평생을 보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녀의 많은 저서에도 볼 수 있듯이 전체주의 상황에서의 비극을 파헤쳐진 책들이 많습니다. 결국 그녀의 많은 생각과 연구 끝에 얻은 결론 역시도 '인류의 평화'라는 메세지를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습니다.

  그녀가 20세기 최고의 여성 철학자로 불리는 것에는 그녀가 연구한 전체주의가 과거 나치즘이나 파시즘, 일본의 군국주의 형태를 띠고 불처럼 나타났다가 결국에는 패망하였지만, 지금 현재에도 언제든지 다른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흔히 스트롱맨이라고 불리는 정치 지도자들이 아직도 자국의 이익이나 이해관계에 따라 현재에도 같은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코로나가 창궐하고 있는 세계는 통제와 자유의 갈림길에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며 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우리 마음 속 한편에 전체주의의 조그만 불씨가 남아있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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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의 간디도 철학 없는 정치는 많은 사람들을 힘들게 하고, 한나 아렌트 역시 생각 없는 사람이 정치나 혁명을 하면 많은 사람들이 불행해진다고 했습니다. 필자는 한나 아렌트의 전기를 읽으면서 한 가지 생각을 가진 극단주의적인 사고방식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알았습니다. 본문에서 언급했듯이 한나 아렌트 역시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를 발표하고서 많은 유대인들로부터 분노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 일을 자세히 살펴보면 아렌트는 전체주의 체제에서 유대인 학살에 나치들만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자신의 상황에 대한 합리화를 하고, 나치에 동조한 유대인들이 있었음을 상기하고 있습니다.

  한나 아렌트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이해관계에 따라 어느 한 가지 생각에 치우치지 않고 최대한 객관적으로 상황이나 세상을 바라 본 것입니다. 자신이 유대인이라도 이미 저질러진 유대인의 잘못을 지울 수는 없다는 것이고 같은 유대인이라고 면죄부가 될 수 없으며, 또 그것을 정확히 바라봐야 더 나은 미래를 기대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현재 만끽하고 있는 자유도 어느 정치지도자의 잘못된 판단이나 집단의 오판으로 인해 어느 순간 폭력성을 띠게 될 것이며 한 체제나 한 사람을 위해 다수의 희생자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현재에도 코로나 속에서 양분된 자유론자와 통제론자들의 대립, 미얀마와 같은 불행한 국가적 사태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언제나 극단적인 사고는 불행을 불러올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며 한나 아렌트가 전하는 사유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봅니다.

 

서문에 나오는 한나 아렌트의 객관적인 생각을 엿볼 수 있는 글을 끝으로 감상문을 마무리합니다.

  그녀는 많은 것에 충실했다. 자신의 뿌리인 독일어와 문화에, 유럽에 있는 엣 친구들과 미국에서 새로 얻은 친구들에게 충실했다. 그녀는 언제나 다시 시작했고 따라서 그녀를 어느 하나로 분류하기는 어렵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그녀는 한 회의에서 이런 질문을 받았다. "보수주의자입니까? 자유주의자입니까? 현재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때 당신은 어느 쪽입니까?" 한나 아렌트는 이렇게 대답했다. "모르겠습니다. 정말 모릅니다. 과거에도 그것을 안 적은 없습니다."(서문 6p)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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