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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김영하 <읽다> 전체 감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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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님은 작가이기 전에 엄청난 독서가이십니다. 비록 김영하님의 책을 다독하지는 않았지만, 최근에 본 몇 권의 산문만으로도 그분이 책을 대하는 태도와 책을 통해 생각하는 가치관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단순히 읽는 것을 넘어 책을 통해 세상을 보는 관점과 일반 독자들이 보지 못한 차원이 다른 수준 높은 독서의 태도에 대해서도 깊게 배울 수 있는 좋은 책입니다.

글이 길기 때문에 바쁘신 분들은 굵은 글만 읽어 보세요.

  김영하님의 산문 <보다>에 이어 작가님이 글을 쓰는 작가이기에 앞서 엄청난 독서가임을 알 수 있는 책입니다. 한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한 가지 일에 흥미를 느끼며 살아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운동에 재능이 있으면 운동선수의 길로 갈 수도 있고 특별한 영역에서 공부를 잘한다면 학자의 길로 갈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학교 공부가 끝나고 나면 특별히 독서라는 것을 가깝게 하지도 않을뿐더러 삶의 영역에서 멀리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떤 독서 전문가는 독서를 하는 사람들을 특별한 취미를 가진 별종이라고까지 하는 분도 봤는데요.

 

  작가님은 작가가 되기 전에 살아있는 경험이 아닌 앞서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게 더 특별한 경험으로 다가왔다고 합니다. 그게 나중에 작가가 된 이유이기도 하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작가에게는 경험이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내게 있어 그 경험은 거의 전적으로 독서 경험이다. 나는 철이 들고 나서는 살아 있는 그 어떤 사람으로부터도 별로 강렬한 인상을 받아본 적이 없다. 그러나 일급의 소설들로부터는 수도 없이 압도당했고, 그런 충격들이 나로 하여금 그 소설들을 다시 쓰게'’ 만들었다.(214p. 작가의 말)

 

 

 

책 내용 살펴보기

 

  이 책의 전체적인 내용은 고전문학 그중에서도 작가님이 읽고 공감이 갔던 고전소설을 중심으로 작가님이 느끼고 생각한 내용을 정리했습니다.

 

첫째날, 읽다.

 

  고전이란 우리가 처음 읽을 때조차 이전에 읽은 것 같은 다시 읽는느낌을 주는 책이다.“ 그러니까 고전이란 처음 읽으면서도 ‘다시’읽는다고 ‘변명을 하게 되는 책이지만 어쩐지 ‘다시’읽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책이라는 것입니다.(11p)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전이라 함은 낡고 고전적이고 진부하다는 느낌 또는 어렵다는 선입관을 가진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이 글을 쓰는 필자도 독서를 하지 않고 고전문학을 모를 때는 같은 생각이었는데요. 고전 소설을 몇 편을 읽다가 보면 나도 모르게 소설 속으로 빠져드는 경험을 하면서 관계에 대한 이해와 소설이 주는 메시지에 감동을 하면서 더 깊숙이 탐독하게 되었던 경험을 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소설의 이야기도 시간과 공간은 다르지만 우리 인간은 아무리 기술과 과학의 발전이 되더라도 많은 관계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과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건이 벌어지면 우리는 알게 되는 것입니다. 주변은 커녕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존재가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요. 이런 발견의 순간에 리어왕은 통탄합니다.

  “내가 누구라고 말할 수 있는 자 누구나?”(30p)

  현대 사회를 살아가면서 많은 인간 관계를 맺다 보면 여러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내가 그 속에 살다보면 내 이해관계에 따라 주관적인 판단을 하게 되는데요. 중요한 것은 나도 그 사람들한테 어떠한 성향을 가진 사람이라고 인식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난 이 세상에서 어떤 존재를 가진 사람인가?“에 대한 자기 성찰은 생각해보면 많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책을 보고 ’자기 자신의 객관화를 간접적으로나마 할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세상을 다 가진 왕조차 내가 나를 모르는데 타인이 내가 누구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더더욱 이해가 되지 않았겠지요. 그래서 지식을 알면 알수록 그 깊이를 알기 힘들다고 한 말이 생각납니다. 그래서 독서를 하면서 자신이 ’무지의 지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도 알게 되고요.

 

 

둘째 날, 읽다.

 

  직접 경험하거나 모든 것을 사실적으로 기술한 이론서나 설명서를 읽고 이해하는 세상은 정말 작은 부분입니다. 지와 무지의 관점에서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우리는 라만차라는 시골 동네의 돈키호테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른 그가 읽은 책의 세계관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있었고 그 원칙에 따라 행동하고자 했습니다. 당연한 결과로 그는 여러 차례 수난을 겪게 됩니다. 때로는 현실부정 때로는 정신승리의 변증법을 통해 그는 방랑을 떠나기 전과 다른 사람으로 성장해 갑니다.(63P)

  소설 속의 이야기 세계가 계속되기를 바라고, 그 안에 머물기를 바라는 우리가 거기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이물들에 매료되고 자기도 모르게 책장을 넘기며 그들의 뒤를 따라갑니다.. 그러는 사이 그들이 우리의 의식에 침투해 우리의 일부를 돈키호테와 소설 속의 주인공으로 바꾸어 놓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읽은 소설은 우리가 읽음으로써 비로소 우리의 일부가 됩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그 작가와 주인공의 세계관을 공유한다고 생각됩니다. 나만이 알고 있는 세상이 아닌 또 다른 세상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작가님은 소설을 읽는다는 것에 대한 정의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소설을 읽는다는 것, 그것은 인간이라는 어떤 우월한 존재가 책이라는 대량 생산품을 소비하는 과정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라는 이야기가 책이라는 작은 틈을 통해 아주 잠깐 자신을 둘러싼 거대한 세계와 영겁의 시간에 접속하는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바로 이야기이고, 이야기는 바로 우주입니다. 이야기의 세계는 끝이 없이 무한하니까요.(69p)

 

 

셋째 날, 읽다.

 

  책을 읽는 매 순간, 우리는 결정을 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조금 더 읽겠다고,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조그만 더, 그렇게 해서 한 권의 책을 끝내게 됩니다. 완독이라는 것은 실로 대단한 일입니다. 그만 읽고 싶다는 유혹을 수없이 이겨내야만 하니까요.(73p)

  생각해보면 세상 어느 일이라고 만만한 일이 없을까요. 누구나 같은 일상을 반복하고 세상을 살아가지만 정작 세웠던 목표를 이루고 성취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한 권의 책을 읽는 것처럼 같은 일상을 반복하더라도 초지일관하면서 일의 끝맺음이 쉽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일상의 자유가 우리에게는 소중한 자산이라면 이 자산을 유용하고 성공적으로 관리하려면 그만큼의 의지도 중요하겠지요. 또한 여러 가지 책은 그만큼의 지식과 경험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지만 그 지식과 경험을 활용하기 위해 책을 읽는 사람들은 극히 드물기도 하고요.

  작가님은 수 많은 책 속의 경험이 우리에게 조용히 침투하여 우리 안에서 빛날 때, 우리는 인간을 데이터로 환원하는 세계 즉 신기술로 무장한 빅데이터 기업과 맞설 존엄성과 힘을 가질 수 있다고 합니다. 4차 산업의 빠른 기술적 발전의 두려움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공감하는 이야기겠지만, 책에 관심이 없거나 변화에 둔감한 사람들은 자기 몸이 뜨겁게 달궈져서 목숨이 촉각을 다투기 전에는 절대 알 수 없는 사실이지요. 앞으로의 기술적 변화의 시대는 단순히 관심과 변화를 넘어서 '생존'의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넷째 날, 읽다.

 

  한갓 독자에 불과한 제가 작가의 무의식을 파헤치려고 노력하고 소설을 작가가 읽기를 원한 대로 읽지 않으려 애를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소설을 읽는 행위가 끝없는 투쟁이기 때문입니다. (중략) 소설을 일종의 자연입니다. 독자는 그것의 일점일획도 바꿀 수 없습니다. 그 자연을 탐험하면서 독자는 고통과 즐거움을 모두 느낍니다.(136p)

  글과 매우 익숙한 분인데 투쟁이라고 표현한 부분이 흥미로웠습니다. 왜 투쟁일까 궁금했는데 궁금함은 금방 풀렸습니다. 일단은 소설을 허구를 바탕으로 했지만,, 그 이야기 속에는 폭력, 외설, 비윤리적인 이야기도 많이 섞여 있습니다. 그리고는 내가 가진 나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포함한 자아가 소설 속 이야기를 통해 다시 재정립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독서는 자아를 분열시킨다. 독자는 고통과 즐거움을 모두 느낍니다. 독서와 함께 산산이 흩어진다. 이는 결코 슬퍼할 일이 아니다.’ 그렇습니다. 독서를 통해 우리가 어렵사리 지켜오던 자아의 일부가 분열됩니다.. 그리고 재구축됩니다. 소설이라는 자연을 탐험하고 이를 극복하는 과정은 마냥 재미나고 즐거운 일만은 아닙니다. 위대한 작품들은 자아의 일부를 대가로 지불할 것을 우리에게 요구합니다.(138p)

  정말 멋진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가 가지 않아도 산이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어떤 소설은 우리가 읽든 말든 저 어딘가에 엄연히 존재합니다. 우리는 소설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접근하고 그것으로부터 강력한 영향을 받고 그것을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입니다. 독자는 소설을 읽음으로써 그 어떤 분명한 유익도 얻지 못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 소설을 읽은 사람으로 변할 뿐입니다.

 

  그래서 작가님은 오르한 파묵의 말을 인용합니다.

  ‘소설은 두 번째 삶입니다.’ 그렇습니다. 그게 전부일지도 모릅니다.

 

 

다섯째 날, 읽다.

 

  소설을 읽는 행위 역시 타인에 대한 경계심으로 시작해서 자기 내면의 동물성과 괴물 다움을 성찰하는 쪽으로 나아갔던 것입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믿는 바와 같이 인간의 성격은 오직 시련을 통해 드러나는데, 우리는 아직 충분한 시련을 겪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언제나 잘 모르고 있습니다. 소설이 우리 자신의 비밀에 대해 알려주는 유일한 가능성은 아닐 겁니다. 그러나 그 중 하나인 것만은 분명합니다.(176p)

  인간도 어쩌면 자연계의 한 종의 동물로 생각한다면 다른 동물과 다를 게 없겠지요. 하지만 동물과 인간의 가장 분명하게 차이를 나타내는 것은 생각할 줄 아는 것일 겁니다. 그 생각을 하지 못하면 다른 자연계의 동물들과 다를 게 없겠지요. 소설 속에서는 많은 비인간적인, 비윤리적인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하지만 그 이야기들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원초적인 폭력성과 동물 다움,, 괴물 다움을 생각하고 성찰해서 이성적인 인간으로 다시 자아가 형성되는 것이겠지요. 또한 세상은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시련과 나를 시험에 들게 하는 일들이 무수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간접경험이지만 우리는 이야기를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알지 못하는 세상에 대해 나를 성장시킵니다.

 

 

여섯째 날, 읽다.

 

  루슈디가 통찰했듯 책은 독립되어 있을지 몰라도 그 속에 들어 있는 이야기는 물이나 바다처럼 유동적입니다. 그것은 흘러다니고 합쳐지고 나눠지고 인간의 내부를 가득 채우곤 합니다. 그러므로 독자가 된다는 것은 이야기의 바다에서 흘러나오는 따뜻한 물을 받아 마실 수 있는 계약자가 되는 것입니다.(182p)

  생각해보면 작가님이 말하는 고전문학의 세계는 여러 가지 학문이 뒤섞여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간단히 봐도 심리학, 철학은 기본이고요. 조금 더 살펴보면 앞으로 우리가 살아가야 할 기술시대의 기초가 되어야 할 인문학도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이렇듯 각각의 작품마다 이야기는 다르지만 우리에게 주는 메세지는 때로는 차갑게 때로는 따뜻하게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전체 감상평

 

  책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다독을 한 작가님이 고전문학과 우리가 어떤 연계를 갖고 있고 그것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하며 실생활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가치관은 무엇이냐를 생각하게 합니다. 또한 작가님의 생각을 정확한 답을 내리거나 정의를 내리는 게 아니고 독자와 함께 생각해 볼 수 있게 하는 게 인상적인 책이었습니다.

  책을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현대사회에서 과거의 지식을 통해 배운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본문에서 작가님이 실생활에서 경험을 하지 않고 과거의 경험을 통해 즐거움을 얻는 다고 한 부분이 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실생활에서는 내가 직접 경험해 봐야지만 내가 실수를 했는지 문안하게 어떤 일을 수행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반면 과거의 경험을 통해 내가 경험을 하는 것은 이미 성공적으로 검증된 사실을 통해 또는 검증된 경험이기 때문에 실생활에서도 크게 실수나 실책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겠지요.

  중요한 것은 독서의 즐거움을 아는 분들이라면 모두가 공감하는 전체적인 책의 내용이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이 스마트폰에 매달려 거대 기술기업들이 만든 콘텐츠에 매몰되어 있습니다. 물론 그것들에게도 내가 지식을 습득하거나 자기개발의 용도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지만 극히 드물어 보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독서는 수많은 시간을 통해 고민하고 결론을 얻어낸 중요한 지식 습득 수단이나 경험이 아닐까 싶습니다.

 

  수많은 독서 예찬론자들이 많지만 작가이면서 다독가이신 작가님을 통해 문학의 세계를 보는 새로운 관점과 읽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 책이었습니다. 일반인이 아닌 작가님의 차원이 다른 문학에 대한 생각을 나누어주신데 대해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글을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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