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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책 <코스모스> 핵심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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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모든 사람들은 자기 존재에 관한 물음을 하곤 합니다. "나는 누구이고 어디서 왔는가?"라는 의문을 한 번쯤 갖고는 하지요.
이 책 코스모스는 평생 우주를 연구한 한 천문학자의 700쪽 가량의 방대한 내용이지만, 이 물음에 천문학적 시점과 개인의 시점에서 우리 인류는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충실한 공감을 갖게 해 줍니다. '천체물리학이 한 개인의 존재감과 어떤 관계가 있나?'라는 의문을 가질 수도 있지만, 어마어마한 우주의 나이와 공간적 이해를 한다면 왜 지금의 우리의 삶이 중요한지와 후대에 어떠한 세상을 물려줘야 하는지에 대한 책임감을 갖게 하는 책입니다.

저자 소개
책을 이해하기 전에 저자에 관한 이해를 하면 책이 어떤 내용을 담고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조금은 이해를 할 수 있습니다. 칼 세이건(1934~1996)은 천체 물리학 박사이기도 하지만, 인문학 박사, 물리학 석사, 천문학 등의 학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만큼 이 책에 담긴 내용이 천문학에 관학 내용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천체 물리학뿐만 아니라 지구과학, 인문, 역사, 인류학, 진화생물학에 관한 전반적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책 한 권으로 칼 세이건 교수의 깊고 넓은 통찰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책 내용 살펴보기


우주의 나이, 지구의 나이, 인간의 탄생과 진화

-빅뱅, 150억 년 전~200억 년 전: 대폭발을 시작으로 우주 팽창과 은하, 별들의 탄생.
-약 40억 년 전: '지구'라는 에덴동산. 분자들만 존재.
-약 30억 년 전: 단세포 생물이 세포 분열 후 두 개의 독립된 세포로 되지 못하고 그대로 붙어있는 것들이 생기기 시작. 돌연변이→다세포 생물 태어남.
-10억 년 전: 식물들이 협동 작업을 통해 지구 환경은 엄청나게 변화됨. 원시 바다의 단순한 녹색식물→산소 분자 생산→산소가 지구 대기의 가장 흔한 구성 물질(원시시대 지구는 수소로 가득)
-6억 년 전: 청록색 조류의 독과점 체제에 금이 가고 새로운 형태의 생물들이 폭발적으로 지구에 나타남(캄브리아기 대폭발).
-5억 년 전: 캄브리아기 대폭발이 시작되자마자 다양한 형태의 생물들이 바다에서 탄생. 삼엽충(2억 년 전에 멸종), 곤충, 육서 동물→양서류→나무→파충류→공룡, 포유류→새, 꽃→공룡 멸종 후 고래류→원숭이 유인원, 인간의 조상인 영장류 탄생.
-1000만 년 전: 인간과 아주 비슷한 생물이 처음으로 나타나고, 그들이 진화함에 따라 뇌의 크기도 현저하게 커짐. 그 후, 지금으로부터 겨우 수백만 년 전에 최초의 인간이 나타남.
-인간의 수명 겨우 80~100살.
-우주의 시간으로 볼 때 현재는 24시간 중 23시 59분 59초에 해당.

코스모스

-기원전 6세기경 이오니아에서 새로운 사조가 태동. 인류 사상사에서 가장 위대한 생각 중의 하나. 고대 이오니아인들은 우주에 내재적 질서가 있으므로 우주도 이해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기 시작. 자연 현상에서 볼 수 있는 모종의 규칙성을 통해 자연의 비밀을 밝혀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함. 자연은 완전히 예측 불가능한 것이 아니며, 자연에게도 반드시 따라야 할 규칙이 있다는 것. 그들은 우주의 이렇게 훌륭하게 정돈된 질서를 "코스모스"라고 불렀음.

코스모스를 보는 두 가지 관점

-지구 중심설과 태양 중심설의 대결: 지구 중심설과 태양 중심설의 대결이 절정에 이른 것은 16세기 말과 17세기 초 사이에 살았던 한 과학자(요하네스 케플러)를 통해서였다. 그는 프톨레마이오스처럼(2세기경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대도서관의 대학자) 점성술사이자 천문학자였다. 그가 살아야 했던 시대는 과학 기술 덕분에 고대인들이 몰랐던 새로운 지식들이 많이 발견됐어도, 교회가 발표한 1,000~2.000년 전의 과학 결과를 더 신뢰해야 했던 그러한 시대. 신학적 문제가 아무리 난해한 것일지라도 그 시대를 풍미하던 교회 교리의 틀을 벗어나는 사람은 그가 구교도이든 신교도이든 구별 없이 굴욕, 세금, 추방, 고문, 죽음으로 처벌받아야 했던 시대. 모든 자연 현상의 바탕에 물리 법칙이 있다는 생각은 그 시대 과학계에 존재하지도 않음. 그러므로 아무리 과학적 자료를 토대로 자신의 학설을 주장했다면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었음.
-그러나 한 사람의 용감하고 고독한 분투 덕분에 현대 과학에 혁명의 불이 일기 시작함. 요하네스 케플러를 시작으로 아이작 뉴턴,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으로 이어짐.

위대한 깨달음의 시작 그리고 쇠퇴

-수천 년 동안 인류를 억눌려 온 생각은 이 우주가 눈에 보이지 않고 이해할 수도 없는 신 또는 실을 당겨 조종하는 꼭두각시 연극이라는 생각이었음(점성술, 미신, 교회 등의 종교). 그러다가 2,500년 전 이오니아에서 새로운 깨달음의 기운이 일기 시작. 이 깨달음의 진원지는 사모스 섬. 그리고 동부 에게 해 주변의 섬과 해안가에서 번성하기 시작한 그리스령의 식민지가 이 깨달음의 진앙. 배들의 왕래가 활발한 무역의 중심지에서 모든 것이 다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 질병은 악마나 신이 만든 것이 아니라는 깨달음도 고개를 듬. 지구는 단지 태양 주위를 도는 행성이라고 믿는 사람들도 생겨남. 그들은 별이 매우 멀리 떨어져 있다는 사실도 깨달음.
-기원전 6세기 이오니아에서 새로운 사조가 태동. 그것은 인류 사상사에서 가장 위대한 생각들 중 하나. 코스모스의 토대가 됨. 알렉산드리아 대도서관은 기원전 3세기에 건립되어 파괴되기까지 7세기에 걸친 긴 세월 동안 고대사회의 심장이요 두뇌였다. 당시 알렉산드리아는 출판에 관한 한 지구 전체의 수도 역할을 했음. 당시 인쇄기가 발명되기 전이었으므로 책이란 책은 모조리 손으로 한 권씩 베껴서 만들어야 했음. 이 도서관은 세상에서 가장 정확한 복사본을 만들어 보관하던 장소였음.
-고대 과학의 쇠퇴 이유: 중상주의적 전통은 기원전 600년 경 이오니아의 위대한 깨달음을 이룩하는데 크게 기여했지만, 노예 제도를 통하여 200년 후에는 과학적 사고의 몰락을 가져오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인류사의 모순 중의 모순을 바로 여기에서 볼 수 있음.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융성하던 전 시기를 통하여 과학자들이 정치적, 경제적, 종교적 주장이나 가정에 도전했다는 기록이 단 한 건도 없다는 사실. 그들은 별의 영구 불변성은 의심했지만, 노예 제도의 정당성에 대해서 단 한 번도 질문을 던지지 않았음. 그러므로 과학의 발견과 과학 지식은 일부 기득권층만의 소유물로 남이 있었음. 그 위대한 도서관 안에서 벌어진 새로운 발견은 일반 대중에게는 알려지지 않았고 아무도 발견의 내용과 의미를 대중에게 설명해 주지 않음. 그러므로 연구 결과가 대중에게는 아무런 이득이 되지 못함. 기계와 증기 공학의 발견들은 오로지 무기와 성능을 향상하는 데에 쓰였을 뿐. 과학자들은 기계가 언젠가는 사람을 노예상태에서 해방시킬 수 있다느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함. 고대에 이루어진 위대한 업적들의 거의 대부분이 실제로 응용되지 못하고 잊힘. 이렇게 됨으로써 과학은 대중의 상상력을 사로잡지 못함. 지적 발견의 정체, 비관주의의 확산, 신비주의에의 비참한 굴복 등에 길항(拮抗)할 수 있었던 그 어떤 기제도 없었던 것. 결국 폭도들이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불을 지르고 소장품과 장서를 약탈해 갔지만 그것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영화를 한창 누리던 시절에 이 도서관에 소장됐던 작품들로서 현재가지 두루마리 형태로 남아 있는 고문서는 단 한 점도 없으며, 이 도서관의 진가를 알고 있거나 인정하는 사람을 오늘날 알렉산드리아에서 찾아보기는 거의 '하늘의 별따기'수준.
-중국 천문학의 발전과 쇠퇴: 중국 천문학은 1280년 경에 절정에 이르렀으며 이미 1,500년 장구한 세월에 걸쳐 축적된 관련 자료들을 기반으로 하여 각종 천문 관련 물리량들을 정확하게 측정. 천문 관측기기와 천문 계산에 필요한 수학적 기법들을 크게 향상. 중국 천문학의 쇠퇴는 엘리트 계층의 경직된 사고. 그로 인해 지식인들의 호기심 반감. 사대부 계급으로 하여금 과학이 자기네들이 추구해야 할 분야가 못된다는 생각을 하게 됨. 천문학의 발전의 책임을 전적으로 '궁정의 짐'으로 여겨 실무는 외국인 기술자들에게 맡겨짐(외국인 기술자=예수회 신부와 수도사를 의미).
-과학이 인도, 마야, 아스텍, 문화권에서 빛을 보지 못했던 것도 이오니아에서 과학이 쇠퇴한 이유와 마찬가지로 노예 경제의 병폐 때문.
-서양의 고대 과학이 쇠퇴한 또 다른 이유: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노예 사회에서 편히 살던 인물. 그들은 노예제도의 부당성에 괴로워하기보다 오히려 억압을 정당화하는 논지를 폈으며, 전제 독재 군주를 섬겼고 육체와 정신의 분리를 가르쳤음. 또 사상과 물질을 별개의 것이라고 가르침. 그뿐 아니라 그들은 하늘에서 지구를 분리시킴. 이것이 서양의 세계를 2,000년 이상 지배해 온 분리의 사상. "만물이 신이 깃들여 있다."라고 믿었던 플라톤은 자신의 정치관을 우주에 연결하기 위한 논지에서 사실 노예의 비유를 십분 활용. 그는 데모크리토스의 책을 모조리 불태워 버리라고 했음. 인간의 지식 전체를 73권의 책에 집대성했다는 데모크리토스의 저작물 중에서 그 어느 것 하나 온전히 전해오는 것이 없음. 그래서 데모크리토스의 가르침이라고 알고 있는 것들은 모두 단편적, 지엽적인 내용의 것들 뿐. 다른 고대 이오니아 과학자들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음.

시간과 공간을 가르는 여행

-광속 초속 30만 킬로미터. 별들 사이이의 평균 거리 3~4광년. 1광년의 거리 10조 킬로미터. 지구의 지름 겨우 1만 3000 킬로미터.
-광속에 가까운 속력으로 여행을 하면 당신은 나이를 거의 먹지 않지만, 당신의 친구나 친척들은 여전히 늙어간다. 당신이 상대론적인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친구들은 몇십 년씩 늙어 있겠지만 당신은 전혀 늙지 않는다. 광속으로 은하수 은하에는 28년이면 도착한다. 그렇지만 지구에 남아있는 사람들에게는 우주여행객의 21년이 무려 3만 년에 해당하는 세월. 광속으로 우주를 한 바퀴 도는 시간 56년이지만, 56년은 우주선의 시간이므로 지구인의 시간으로는 수백억 년이 됨. 그러므로 우주여행은 공간뿐 아니라 시간과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음. 따지고 보면 우주여행은 시간과 공간을 가르는 여행이 됨.
-이오니아의 과학 정신이 그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더라면 우리(현재의 우리와는 전혀 다른 또 다른 세계의 '우리')는 지금쯤 이미 성간 여행의 장도에 올라 있을지 모른다.

미래로 띄운 편지


-고등한 지적 생물이 살고 있다고 생각되는 세상이 은하수 은하에만 100만 개. 이렇게 많은 수의 세상들 중에서 지구는 표면이 온통 물로 덮여 있는 아주 진귀한 존재. 아직도 외계 행성의 생명체를 찾고 있으나 지구 같은 생명의 행성은 발견되지 않고 있음.
-하나의 종으로서 우리 인류는 외계의 지적 생물과의 교신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와 같이 지구에 살고 있는 다른 지적 생물과의 교신부터 먼저 진지하게 시도하는 것이 더 바람직한 일이 아닐까? 문화와 언어와 전통이 다른 민족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조화롭게 사는 것만이 중요한 게 아니다. 침팬지, 돌고래, 그리고 저 깊은 바다의 지적 지배자인 위대한 고래들과의 교신 또한 외계와의 교신에 우선돼야 할 인류의 과제인 것이다.
-우리는 지구라는 특정 지역에서 일어난 물질 진화의 산물이다. 150억 년의 긴 세월을 거쳐 결국 물질은 의식을 갖추게 됐다. 그러나 의식의 산물인 지능은 인간에게 무서운 능력을 부여했다. 인간이 자기 파멸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는 지혜를 갖춘 현명한 존재라고 아직은 확신할 수 없지만, 많은 이들이 이러한 파국을 피하려고 열심히 노력하는 중이다. 우주적 시간의 척도에서 볼 때 지극히 짧은 시간이겠지만 우리는 어서 지구를 모든 생명을 존중할 줄 아는 하나의 공동체로 바꿔야 한다. 그리하여 지구 상에서 평화를 유지하는 한편 외계 문화권과의 교신을 이룩하으로써 지구 문명도 은한 무명권의 어엿하나 구성원이 돼야 할 것이다.


칼 세이건이 이 책을 통해 전하는 메시지


- 지구는 아직 생명이 존재하는 단 하나뿐인 행성: 그러므로 우리 인간과 지구에 존재하는 생명 하나하나가 귀중한 존재. 누군가가 나와 다른 생각을 주장한다고 해서 그를 죽인다거나 미워해서는 절대로 안됨. 왜냐하면 수천억 개나 되는 수많은 은하들 중에서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은 찾을 수 없기 때문. 우리의 생각을 싫어하는 자들이 통치하는 나라도 지구 상에는 많음. 그들은 자신의 권력과 기득권을 잃을까 두려워하기 때문에 우리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음. 그들이 우리를 배반자, 충성심 없는 비애국자라고 비난하더라도 우리는 그런 이야기에 흔들려서는 안 된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인류가 우주를 얻느냐 아니면 공멸의 나락으로 빠지느냐가 결정됨.
-우리의 에너지를 죽음과 파괴가 아니라 삶(생존)을 위해서 이용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지구와 지구인을 이해하는 동시에 외계 생명을 찾는데 써야 한다. 그것이 유인 탐사든 무인탐사든 간에 우리의 우주 탐험이 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바로 그 기술과 바로 그 조직력 덕분에 가능하다는 점을 우리 가슴에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우주 탐험도 전쟁에서 요구되는 바와 똑같은 수준의 전 국민적 각오와 용기를 각자에게 요구한다. 전 지구 규모의 핵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진정한 의미의 군축 시대가 온다면 그때 비로소 인류의 우주탐험 노력이 강대국들의 방대한 군수 산업을 흠결 없는 평화의 산업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전쟁 준비과정에서 얻은 것들을 코스모스 탐사 준비에서도 비교적 수월하게 얻을 수 있기 때문.

-코스모스에게 겸손해야 하는 이유. 인류는 우주 한 구석에 박힌 미물이었으나 이제 스스로 인식할 줄 아는 존재로 이만큼 성장했다. 그리고 이제 자신의 기원을 더듬을 줄도 알게 됐다. 별에서 만들어진 물질이 별에 대해 숙고할 줄 알게 됐다. 10억의 10억 배의 또 10억 배의 그리고 또 거기에 10배나 되는 수의 원자들이 결합한 하나의 유기체가 원자 자체의 진화를 꿰뚫어 생각할 줄 알게 됐다. 우주 한 구석에서 의식의 탄생이 있기까지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갈 줄도 알게 됐다. 우리는 종으로서의 인류를 사랑해야 하며, 지구에 충성해야 한다. 아니면 그 누가 우리의 지구를 대변해 줄 수 있겠는가? 오늘을 사는 우리는 인류를 여기에 있게 한 코스모스에 감사해야 한다.


마무리

책의 분량이 700쪽이나 되다 보니 요약했는데도 길어졌습니다.
수십억 년의 시간을 가진 우주의 존재에 비하면 인간의 역사란 짧디 짧기만 합니다. 그 속에서 저자가 전하고자 하는 말은 인류가 너무너무 중요하지만 평범한 것들을 우리는 잊고 살아가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우주에서 인간이 숨 쉴 수 있는 단 하나의 해성 지구. 그 안에서 산소를 공급해주는 식물들과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동물들과 우리 주변의 모든 만물이 소중하게 생각됩니다. 생각해보면 산소가 우리 생명을 유지하는데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존재인데도 우리는 그 중요함이나 소중함을 잊고 살아갑니다. 저자는 우리가 지구를 함부로 대하고, 오염시키고 파괴를 일삼는다면 태양계나 은하의 생명이 살수 없는 수소나 헬륨, 암모니아 같은 가스만 존재하는 행성으로 변할지 모른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국의 코로나 봉쇄, 코로나로 인한 인플레이션, 산업화로 인한 기후변화, 질병. 현재 상황만 열거해도 만만하지 않습니다.
안타깝게도 현재의 인류는 마치 지구나 지구의 모든 생명체들이 인간을 위한 것인 것 마냥 다루고 있고, 더하여 정치, 경제, 종교적 기득권 싸움으로 서로를 죽이고 우리의 터전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도 말했듯이 지식이나 기득권은 어느 한 단체나 개인에게 주어지는 특권이 아님을 모두가 공감하고 겸손했으면 하는 마음을 가져 봅니다.
이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지구 반대편에서는 정치적 이해관계로 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파괴는 정당화될 수 없음을 정치지도자들이 공감하기를 바라면 글을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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