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날마다 주저리 주저리

2022년 벌초

728x90
728x90

살아가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찾는다는 게 여러가지가 있지만, 유교적 영향이 많은 우리나라같은 경우는 기본적으로 조상님한테 존재감을 찾는 전통이 아직은 남아 있습니다. 세상이 변해서 예전처럼 고향을 그리워하면서 사는 사람은 없지만, 명절 즈음에 벌초도 자신과 가족들의 존재감을 확인하는 자리가 아니가 싶습니다.

사실 필자는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당연히 시골에 계시는 아버지가 하는 것으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10여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시고는 시골 아버지한테만 맡겨서는 안되겠다싶어 시간이 맞는 동생들과 같이 매년 벌초를 하고 있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생전에 더 잘해드리지 못했던 기억때문에 어머니 묘만큼은 내 손으로 정리를 하고 싶기도 했고요.

고향이라고 해도 예전처럼 자주 가지 않고 명절이나 되면 겨우 찾아가는 정도인데요. 그나마 이런 명절이 조상님을 모시고 풍성한 수확을 기념하다는 이유도 있지만, 이제는 뿔뿔히 흩어져서 쉽게 모이기 힘든 가족들이 모이는 자리가 된 것 같습니다.

지난 일요일 모처럼 삼형제가 벌초를 하기 위해 모두 모였습니다. 모두 두 시간 가량 떨어져 있는 고향집이지만, 길이 좋아지고 각자 자동차로 이동하기 때문에 아침 7시에서 8시 사이에 모두 도착한 것 같습니다.

 

무성한 잡초들 때문에 어디가 묘이고 풀밭인지 구분이 가지 않습니다. 시골에 사람이 없는 이유도 있지만, 생각해보면 석유나 가스가 들어오기 전에는 추수가 끝나면 월동준비를 하기 위해 산에서 낙엽이란 낙엽은 모두 긁어 모았기 때문에 잔 나무나 잡초들이 자라지를 못했습니다. 80년대와 90년대가 지나면서 석유, 가스보일러가 보급되면서 겨울이 오기 전 월동준비도 필요없게 되었고요. 그래서 요즘 시골 조그만 야산만 가도 이렇게 밀림이 되어 있습니다.

 

베어진 풀을 모으는 동생

 

시골 아버지는 연로하셔서 집에서 쉬시라고 해도 같이 따라와 예초기까지 돌리십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예초기가 한 대 뿐이었는데, 이웃에서 빌려온 것 까지 세 대나 되었습니다. 두 셋이서 예초기를 돌리고, 한 사람은 베어진 풀을 묘소 가장 자리에 정리를 하니 생각보다 빠르고 쉽게 벌초가 진행이 됩니다. 이렇게 모두 넷 이서 여섯 군데를 돌았습니다. 

 

사마귀

벌초하면서 말벌을 조심해야 되는데 말벌은 보이지 않고, 풀 숲에 사마귀 가족이 있었나 봅니다. 한 곳에서 엄청나게 많은 사마귀들이 보금자리를 잃고 헤메고 있습니다. 괜시리 미안해졌습니다. 갑자기 사마귀 가족의 파괴자가 되다니....

 

이제 조금 깔끔해졌습니다.

묘소가 뿔뿔이 흩어져 있어서 벌초를 끝내고 나니 점심이 가까워진 시간이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들이 와서 벌초를 하고, 깨끗히 정리가 되니 기분이 좋으신지 만면에 웃음이 가득해지시네요.

 

씁쓸한 것은

아버지 형제들이 모두 8남매 인데 그 많은 형제들이 명절에 벌초를 하러 오는 분들이 한 분도 없네요. 고향을 찾든 찾지 않든 각자 사정이 있겠지요. 하지만 한 촌 수 아래 세대인 필자가 보기에는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아버지는 필자가 어릴때부터 장손이 아닌데도 시골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산소의 벌초를 다른 형제들을 대신해서 해왔습니다. 처음에는 필자도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성장하면서 그 분들한테는 너무 당연하게 아버지가 맡아 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게 좋아보이지만은 않았습니다. 그 분들도 당연하게 이 세상에 숨을 쉬고 한 생을 살아가는 것은 멀리 윗대 조상님이 아니더라도 기억에 남은 어머니 아버지가 계실텐데.....ㅠ 명절에 묘소라도 찾아오려나 모르겠습니다.

벌초를 끝내고 집으로 가는 길 고속도로는 수많은 차량들이 수도권을 향해서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여행을 가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명절을 앞두고 고향에 가서 벌초를 끝내고 올라가는 차량들이 대부분일거라는 생각에, 집안 어른들이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어찌됐든 올 한 해도 조그만 행사 하나를 끝냈습니다.

이웃님들 명절 준비는 잘 되어가시나요?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