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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주저리 주저리

딸한테 받는 메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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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한테 메세지를 받고 주저리주저리 써봤습니다.

픽사베이 이미지

이른 아침 천근 만근 무거운 눈은 블라인드 밀어 올리듯 창밖으로 밀려오는 여명에 눈이 떠집니다. 자연스럽게 밤새 들어온 메세지 확인을 위해 스마트폰을 확인하는데 큰딸한테 메세지가 와 있었습니다. 아마도 밤새 공부하면서 생각난 책의 일부분을 보낸 것 같습니다. 

언젠가 어느 작가의 책을 읽는데 '집안에서 유일하게 책과 소통할 수 있었던 분은 엄마였다. 그러나 엄마는 집안에서 다른 가족 구성원들이 생각하는 안식처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다른 가족들이 일터에서 학교에서 일과를 마치고 편안하게 자신만의 시간을 보낼 때 엄마는 모든 집안일을 잠자리에 들때까지 했다. 그런 엄마도 낮에는 일터에서 하루를 보냈다.' 과거 힘들었던 어머니들의 모습이 아닐까싶습니다.

 

소통 상대

필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책을 쓴 작가에게 엄마는 성장기에 유일하게 책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가족 구성원 중에 하나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지난밤 받은 딸의 메세지가 엄마와 소통할 수 있는 상대한 작가가 생각난 이유였습니다.

과거 언제쯤인가 직장 후배가 또 다른 후배한테 고민 상담을 받은 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 후배는 한 참이나 나이가 어린 여자애를 사귀고 있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두 사람을 마주하고 상담도 해주었고요. 문제는 한 지붕 밑에 가족이라고 해서 상대의 마음속을 훤히 알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가출한 것으로 보이는 그 여성은 그 나이의 고민, 혼란, 불안 등에 대해 가족 누구에게도 상담을 받기는커녕 이야기할 상대도 없었다고 합니다. 결정적으로 자신에 대한 관심이 조금이라도 있고 대화를 할 수 있는 상대가 있었다면 일탈을 할 이유가 없었다는 이야기지요. 후배는 앞으로 살아갈 날이 창창하고 꿈만 가지면 뭐든 할 수 있는 나이니까 방황하지 말고 어서 집으로 돌아가라고 타일러 돌려보냈다고 합니다. 

 

딸과의 소통

대부분의 80년대 성장기를 거친 분들이 마찬가지겠지만, 가부장적이고 유교적 가치관이 강한 집안에서 자랐다면 자식은 고민을 해결해 줄 수 있는 대화 상대라기보다는 통제대상으로 생각한 부모님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렇게 자란 저 역시도 마찬가지였고요. 그래서일까요. 자식한테만은 통제대상보다 친구같은 아빠로 생각하게 하고 싶었습니다. 그야말로 친한 친구에게 비밀이 없듯 대화할 수 있는 상대~.

필자 책을 읽지 않고 그렇게 성장기를 키웠고 딸들이 대학을 진학하고부터는 몸도 멀어지고 정신적으로도 생각의 차이가 나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그럴 수밖에 없지요. 집을 떠난 딸들은 자연스럽게 자라온 환경과 다른 것들을 접하고 부모와 다른 계층의 사람들 만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 차이를 느끼는 저하고, 딸들의 어린 시절만을  보낸 아내하고의 차이도 있는 것 같습니다.

딸들이 좋은 환경에서 교육을 시켰다는 생각하지 않지만 어릴 적부터 책을 읽는 습관을 길러주어서 대학생이 된 후에도 시험이나 전공서적을 보고 나서, 조금만 틈만 나면 여러 장르의 책을 읽나 봅니다. 그래선지 딸이 이야기하는 내용과 필자가 생각하는 것들이 대부분 일치하기 때문에 아내처럼 크게 다툴 일도 없습니다. 큰딸이 굉장히 논리 정연하기도 하고요. 이런 데서 아내와 필자가 딸들하고 소통하는데 차이가 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지금은 어떻게 두 관계를 정리를 해야 원만해질 수 있나 고민하기도 하는데 두 상대의 가치관의 차이가 커서 쉽지는 않아 보입니다.

 

딸이 보낸 책의 내용(정지수 작가의 글)

삶은 때때로 이벤트가 일어나는 영역과 고요하고 진득하게 이어지는 영역으로 나뉘는 것 같다. 이를테면, 고래는 바다 아래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며 자기만의 여정을 이어나간다. 그러다 이따금 숨을 쉬기 위해 수면으로 올라와 물을 뿜어내는데, 그때 무지개가 펼쳐지기도 한다. 고래가 자신이 만들어낸 무지개를 볼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고래에게 꼭 필요한 일일 뿐만 아니라, 기분 전환도 되는 즐거운 일일 것이다. 인간의 삶이 꼭 그러한 듯하다.



여행을 떠났다 오거나, 신나는 일을 하거나, 운 좋게 어떤 성취를 거두는 일 같은 것들이 삶에는 이벤트로 일어난다. 그러나 이벤트가 곧 삶이 되지는 않는다. 여행은 갔다가 돌아와야 하고, 신나는 일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야 한다. 운 좋은 성취들, 근사한 기분을 주는 ‘도파민의 순간’ 같은 게 있어도, 그 순간들이 매일 터지지는 않는다. 그보다 많은 시간에 이어지는 삶을 사랑하는 법을 알아야만 한다.



종종 나는 먼 미래를 상상하는 습관이 있다. 그래서 20년이건 30년이건 뒤를 생각해보면, 과연 내게 남아 있는 게 무엇일지를 가늠해본다. 내가 바라는 건 그렇게 긴 세월이 흘러도, 내가 사랑하며 할 수 있는 가치 있는 일이다. 혹은 이 삶을 사랑하는 비교적 일관된 방식이다. 나는 기나긴 시간동안 이 삶을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고 준비하며 실천해가야 한다. 


마지막 '나는 기나긴 시간동안 이 삶을 사랑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준비하며 실천해가야 한다.'라는 말이 인상적입니다. 언뜻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살아간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실천을 하는 사람은 주위에 많지 않아 보입니다. 가끔 필자의 지인들도 푸념섞인 말로 "어떻게 살아야 인생을 잘 사는 걸까?"라고 이야기할 때가 있습니다. "그렇게 고민하지 말고 책을 읽어보면 어때?"라고 이야기하면 대부분 침묵으로 대답을 합니다. 인생은 제대로 살고 싶고 삶의 진리는 알고 싶다는 이야기지만 정작 자신은 현실에서 아무것도 실천하지 않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딸과 자주 소통하지는 않지만 이렇게 책의 내용으로 세대를 넘어, 가족의 관계를 뛰어넘어 소통하고 이야기하는 게 딸에게나 필자인 저에게나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제대로 사는 삶을 사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그 가치를 모를 것입니다. 한 지붕에서 육체를 가까이하고 같은 시간이 보내는 것만이 가족이 아닐 것입니다. 어려운 일과 고민이 있으면 서슴없이 대화하고 거리낌 없이 소통할 수 있는 게 진정으로 가족이 될 수 있겠지요.

 

일요일 밤에 앞뒤 없이 긴 글을 썼네요.

모두들 편안한 휴일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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