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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심리학, 철학

이제껏 너를 친구라고 생각했는데(전체 감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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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아가면서 가장 가까운 관계의 친구, 동료, 가족들한테 무심코 내뱉는 말들이 있습니다.
“너와 나는 가족이야. 그러니 당연히 해줘야지.”, “우리는 가족이잖아.”, “너는 장남(장녀)니까.”, “너는 앞에 형(언니)이 있으니까.”, “너는 막내니까.”, “너는 딸(아들)이니까.” 또는 "가장 친한 친구니까.". "과거에 큰 은혜를 입은 동료니까."
이 책은 바로 우리가 일상에서 자신도 모르게 다치고, 어떤 면에서는 피해나 손해를 보고 있는데도 정작 자신은 모르고 있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뒤에 자신이 상당한 정신적 상처와 스트레스를 받고 있음을 알았을 때 받는 정신적인 상처에 대한 이야기와 건강한 삶을 살아가기 위한 대처법과 그 속에서 나를 지키기위한 방법을 저자인 정신과 의사 성유미님이 책으로 집필한 내용입니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관계의 영역에서 내가 상대에게 상처를 주지 않았는지 또는 나와 내 주변의 사람들이 이런 피해를 당하고 있는건 아닌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책입니다.

책은 1부와 2부로 크게 나누어져 있고, 1부에는 3장으로 다시 구분되어 있으며, 2부는 2장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책의 모든 내용이 감상문으로 모두 옮기고 간략히 내용을 좁힐 수 없기 때문에 필자가 느낀 가장 마음에 와 닿고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내용만 간추려 보았습니다.


프롤로그

-마르틴 부버가 말하는 관계
마르틴 부버의 핵심 이론은 ‘나와 너와의 관계’와 ‘나와 그것의 관계’로 관계를 분류한 데에 있다. 눈치 챘겠지만 전자는 ‘너(인격)’가 대상인 반면 후자는 ‘그것(사물)’이 대상이 된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나라는 존재의 이중성이다. 무슨 말일까? 부버는 어떤 대상과 만나느냐에 따라 ‘나’가 달라진다고 본다. ‘나와 너에서의 나’는 인격적인 반면 ‘나와 그것에서의 나’는 사물을 이용하려는 주체이다. 똑같은 나인 것처럼 보이지만 ‘인격자와 이용하려는 자’라는 정반대 의미를 담고 있다.
“나는 너를 믿었는데 너는 나를 이용했어.”
현대인의 상처가 바로 이 지점에서 탄생한다. 나는 ‘인격자로서의 나’로 네 앞에 섰는데, 넌 ‘사물을 이용하려는 자’로 내 앞에 섰으니 이 다름이 분노와 상실을 낳는 것이다.
“이용당했어!”
이 말 안에는 ‘자신을 인격적으로 대하지 않은 것에 대한 불쾌감’ 그리고 ‘타인이 수시로 자신을 판단하고 가치를 매기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들어있다.(11p)
이 프롤로그의 내용이 이 책의 관계에서 가장 기초적인 물음이고 이에 대한 대답을 풀어나가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대체로 태어나면서부터 많은 인간관계를 맺으면서 한 평생을 살아갑니다. 가깝게는 가족, 친구, 직장동료, 거래처와의 관계 등 수많은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데요. 안타까운 것은 냉정히 생각하면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조차 ‘이용당했어’라는 자괴감이 상당한 시간이 지난 뒤에야 느끼게 되고 흔히 말하는 ‘배신감’이라는 거북한 느낌까지 들게 합니다. 비단 가족이 아니라 친구관계에 있어서나 직장에서 동료나 상사와의 관계에서 내 자신의 감정을 배제한 채, 상대의 감정이 상할까봐 또는 어느정도 나에 대한 이해관계 때문에 자신의 억누르거나 표출하지 못해 감정쓰레기통으로 전락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이것들이 장기화 된다면 결국에는 어떤 사건이나 행동으로 표출이 되게 되고 정신적인 스트레스로 병이 되는 경우를 말합니다.
이 책의 주된 내용이 어쩌면 ‘관계’라는 주제로 시작하였지만 거북할 수 있는 것이 ‘나와 가장 가까운 관계’에서 오는 불쾌감이나 배신감 같은 게 아닐까 싶습니다. 본문에서 여러 가지 관계에 있어서의 상황을 예시로 하고 있지만, 이 또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어떤 사람에게도 피해갈 수 없는 상황 예시라고 생각됩니다.


-본래 가족이 더 이기적이다(수용할 것과 거부할 것)

가족이 뜻대로 자신이 움직이지 않는다고 해서 괜한 죄책감에 빠지지 마라. 가족이라는 타이틀을 내세워 맹목적인 무엇인가를 요구하는 상황에 대해 되짚어봐야 한다. 또 자신이 받는 요구가 현실적으로 수용 가능한 것인지 고민해보고, 가족 구성원이 왜 내게 압박을 가하는지, 그것도 왜 나에게만 향하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혈연관계에 놓인 이들에게 자신의 인생을 빼앗기고 말 것이다.(111p)

우리는 살아가면서 가장 가까운 관계의 가족들한테 무심코 내뱉는 말들이 있습니다.
“너와 나는 가족이야. 그러니 당연히 해줘야지.”
“우리는 가족이잖아.”
“너는 장남(장녀)니까.”
“너는 앞에 형(언니)이 있으니까.”
“너는 막내니까.”
“너는 딸(아들)이니까.”
지금은 세대가 바뀌어서 많이 줄었다고는 하나 아직도 많은 가정에서는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의무감’이나 ‘양보’를 무심코 또는 무언중에 심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상투적으로 또는 습관적으로 가족 구성원 한 사람한테 하는 말이 결국에는 그 사람에게는 큰 상처가 되고 희생양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말 한마디로 가족간에도 많은 문제가 불거지고 또 덮이기도 합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이 경험한 내담자의 예를 들고 있지만, 필자는 가까운 지인이 겪은 가족에 대한 배신감과 과거 이런 생각을 하기 전 인생을 빼앗겼다는 생각을 하게 된 이유를 필자에게 하소연 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지인 A는 3남 1녀의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성장과정에서부터 주변 마을 사람들로부터 효자로 소문나 있었고, 집안에서 성장과정을 마치고 사회에 나와서도 모범적인 아들이었습니다. 학교 다닐 때 휴일이면 농사일을 당연스럽게 도와야 했고, 가정형편이 어렵다고 어려서부터 입버릇처럼 들어와서 상급학교 진학도 포기하고 곧바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자발적 효자가 된 것은 어쩌면 어려서부터 기대는 크고, 재정적 지원은 어려운 아버지의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재정적 지원은 하지 않으면서 혼자 알아서 ‘네 길 알아서 개척해가라.’는 무언의 가정교육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릴 적부터 입버릇처럼 듣던 얘기 있었다고 합니다.
“너는 장남이니까.”
아버지뿐만 아니라 집안 대소사가 있을 때면 집안 어른들이 모이면, A에게 똑같이 서두에 모든 어른들이 똑같이 붙이는 말이었습니다. 그 결과 A는 자발적으로 편향적인 사고방식에 갇히고 자기가 가질 수 있는 꿈, 진취적이고 도전적인 목표, 세상에 대한 자기영역을 확장할 수 있는 포부가 있음에도 많은 일들을 접어야 할 때가 많았습니다. 한 마디로 정신적인 우물 안에 갇혀 더 넓은 세상에 나갈 수 있는 꿈도 접어야 했고 많은 것을 포기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목표가 있었던 다른 동생들은 자신들의 꿈을 포기할 수 없다는 생각에 자신들이 주장을 밀어붙여서 대학 진학을 하고, 젊은이들이 누릴 수 있는 그 시절 그 시간만의 특권을 누리며 자신들의 꿈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그 때도 A는 뭔가 섭섭하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희생해야 동생들이 잘 될 수 있다’라는 생각에 자신의 찾을 수 있는 권리나 욕심을 굳이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문제가 되기 시작한 것은 건강하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부터였습니다. 모든 것을 아버지가 평소 말씀하던 대로 장남으로서 희생한 대가로 모든 것을 공평하게 처리 할 줄로만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재가를 하면서 자식들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다시 정립을 했다고 합니다. 가장 큰 문제는 어머니가 살아계셨을 때, A에게 했던 모든 일들을 뒤집고 가족관계를 자신의 편의에 맞게 다시 정리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상급학교를 보내려고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은 네가 선택한 결과다.”, “너 때문에 동생들이 원하지 않는 다른 길로 빠졌다.”, “결혼 문제에 있어서도 네가 처리할 수 있었는데.”등으로 과거에 있었던 많은 것들을 A에게 다시 책임전가를 했다는 것입니다. A는 한마디로 지난 인생을 송두리째 도둑 맞은 큰 정신적인 충격을 받았습니다.
또한 예전에 생각지도 못했던 아버지와 자식 간의 손익관계가 형성이 되어서였다고 합니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아버지의 생각에 A는 자신이 살아온 성장과정에서부터 지금까지 인생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아버지가 자신에게 준 사랑과 배려, 부모로서의 도리가 손익계산서처럼 머릿속에 맴돌았습니다. 그러니까 어떠한 금적적인 지출도 A에게는 없었다는 생각도 들고, 차후 결혼비용이나 다른 커다란 자신의 대소사 때에 자신한테 비용을 지출한 게 전혀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생각 뒤로 그 전에 했었던 “장남이니까”라는 말로 자신이 가족 안에서 의무와 책임의 테두리에'갇혀 살아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자신의 권리와 생각은 전혀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나’ 하나의 희생으로 다른 가족들한테 당연하게 챙겨주고, 자신이 받지 못한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었습니다. 결국에 가족 구성원 안에서 자신의 자리는 없었던 것입니다. 무엇보다 충격적이었던 것은 금전적인 충격보다도 자기 자신이 가족 안에서 마치 자신이 수십년동안 순한 양처럼 길들여지고 그 상황이 오기 전에는 한 번도 ‘장남’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날 생각도 안했다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토사구팽’이 되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합니다.

어느 가정에게나 밖으로 말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있겠지만, 대부분의 가정이 이러한 사연이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게 장남이든 차남이든 막내든 예전의 대가족을 이루던 가정에서는 더 심했을 것이고, 핵가족화 된 가정에서도 이러한 문제는 없으리라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이런 문제가 어느 가족 구성원이든 자기 정체성이 일찍 형성되어 다툼이 있더라도 순간순간 자기주장을 내세우고 대화로 해결되면 차라리 좋을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A처럼 사회생활을 하고 결혼까지 한 상태에서 문제가 붉어지면 가족해체까지 갈 수 있는 극단적인 상황에 가지 말라는 법도 없다고 생각됩니다. 가족 간에도 순간순간 다툼이 있더라도 구성원 하나하나 정신적인 영역을 표현하는 게 더 맞다고 생각이 됩니다.

“넌 애가 왜 그렇게 이기적이야? 네가 좀 참으면 되잖아.”
“난 희생하라고 말한 적 없다. 네가 자처한 거지. 싫으면 싫다고 그때 말하지 그랬어.”
희생을 강요하는 가족의 공격어는 보통 이런 식이다. 하지만 이런 말은 함부로 내뱉어서는 안 된다. 특히 희생자 포지션에 있는 사람에게서 단 10원어치라도 수혜를 입은 적이 있다면 말이다.(중략)
가족 간의 희생이란 게 그렇다. 그 어떤 관계보다도 외롭다. 철저하게 고립되어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다. 마치 ‘밑 빠진 독에 물붓기’같다. 왜 이런 아픔을 자처하는가. 그러니 이제는 생각해봐야 한다. 왜 가족이 자신에게만 필요를 얘기하는지, 양보를 강요하는지, 희생을 말하는지를 말이다.(114)



가족이기에 더 필요한 거리

어쩌면 가족의 의미와 존재 그리고 구성원이 더 선명하게 존재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게 필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가족 구성원 누군가의 필요에 의해서 존재하는 게 아니라 가족 안에서도 그 사람의 혼자만의 존재감을 확인 시켜주는 것이 더 중요함을 생각하게 됩니다. 책의 예시와 앞서 예시처럼 무늬만 가족일 뿐, 어느 가족 한 사람의 필요에 의해서, 또는 전체 가족을 위해서 구성원 중 한 사람이 피해를 보는 것은 가족으로서의 진정한 기능은 고장난 상태로 볼 수 있습니다. 몸이 아프면 쉬어야 하는 것처럼 관계도 아프면 쉬어가는 것이 맞다고 합니다.
가족인데 어떻게 안보고 살아요?”가 아니라 오히려 앞으로 잘 보면서 살기 위해 휴식을 취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한데 엉켜 있는 것만이 좋은 관계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길 바란다. 진정한 관계에서는 정확히 ‘너’와 ‘나’ 서로 다른 두 사람이 구분된다. 그냥 ‘가족’이라는 한 묶음으로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진정한 의미의 관계는 두 사람 혹은 다수를 한 덩어리로 뭉개지 않는다. 누구의 감정인지, 누구의 일인지, 누가 누구인지 분간되지 않는 ‘하나 됨’은 가짜이기 때문이다. 가족도 마찬가지, 진짜 관계에서는 서로의 모습이 더 선명하고 더 빛난다.
“별이 겹쳐 있는 거 봤어요? 일정한 간격으로 떨어져 있잖아요. 별 하나하나 마음껏 빛나도록 별빛과 별빛 간에도 거리가 있어요. 가족 간에도 이런 거리 둠, 구분 짓기가 중요해요.”(115p)


가족은 끊어지지 않으니 네 뜻대로 인생을 살아도 된다

어쩌면 가족이라는 관계도 자신의 정신적인 영역에서 희생자에게는 편향적 사고로 갇히게 만들게 된다고 생각됩니다. 예를 들면 가족이기 때문에 내가 이해관계나 손익관계에 있어서 양보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나중에 이런 생각으로 큰 다툼이 발생된다면 더 크게 문제가 될 수 있기도 합니다. 저자는 가족 안에서도 이해관계나 정체성, 자존감 문제에 있어서도 명확하게 구분 짓기를 해야 된다고 주장합니다.
본래 부모와 자식은 서로 선택하거나 끊을 수 있는 관계가 아니다.
“끊을 수 없으니 어쩔 수 없는 관계 아닌가요? 그냥 수용해야 하는 거잖아요”
아니다. 그렇지 않다. 끊을 수 없기 때문에 수용하지 않아도 된다. 거절해도 된다. 아니, 거절이 핵심이다. 이 사실만 분명하게 인지해도 관계의 판도가 달라진다. 역설적으로 끊어질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니까 괜찮다는 뜻이다.
그동안 거절이 힘들었던 건 단절과 버려짐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하지만, 끊어지지도 버려지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이해하면, 부모와 자식 간의 강요는 어쩔 수 없는 그 무엇이 아니라는 결론에 이른다.(116p)
가족 관계에 있어서 두려움과 버려짐은 어느 시점인가가 중요해 보입니다. 만약 어릴 때 가정에서 아이가 충분히 자기주장이나 이해관계를 따질 수 있는 가정적인 환경이나 분위기 조성되었다면 나중에 발생할 책임과 의무에서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정환경이 가부장적이고 폐쇄적인 가정이라면 아이가 가지는 성장환경은 앞서 경우와 완전히 반대가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앞서 지인 A와 같이 모든 것을 아버지가 원하는 대로 따라야 하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버려짐과 단절의 두려움 때문에 자신의 의견과 주장은 입 밖에 내기가 쉽지 않을뿐더러 주눅이 들어서 더욱 의기소침해지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는 주제와 멀어지기는 하나 사회 생활을 할 때에도 큰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저자는 이러한 가족 간의 어려울 수 있는 관계도 희망이 있고, 좌절에도 견딜 수 있는 힘이 요구된다고 합니다.
그 좌절은 관계의 단절이 아니라 부모로부터의 분리이자 독립, 즉 의존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가족과의 지나친 밀착 관계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하고, 그 과정에서 불협화음을 겪는 것이 결국에는 건강한 관계를 회복하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그러니 지금 당신이 거부권을 행사하여 가족에게 실망을 안겼다 해서 좌절하거나 죄책감을 느끼지 말자. 건강한 관계를 만들어가기 위해 꼭 필요한 좌절일 수 있으니까 말이다.(117p)
분명 쉬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이 상황이 성인이 아니고 어린 아이들이라면 더 힘든 일입니다. 세상에서 모든 관계의 시작이 가족이고, 내가 어려서부터 살아온 환경 안에서 가치관이 형성이 되고 가정의 테두리 안에서 보호를 받아 왔기 때문에 더욱 더 힘든 과정이 아닌가 싶습니다. 새가 또 다른 세상을 만나기 위해서 힘겹게 알을 깨고 나오듯이 이 과정 또한 가정이란 테두리 안에서 극복하고, 더 큰 세상으로 나가기 위한 과정이 아닌가 싶습니다. 충분히 가족 안에서도 관계의 혁신이 필요한 듯 보입니다. 그게 어느 시점이 되었든 간에 빠르면 빠를 수록 좋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그 상황을 자신이 빨린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겠지요.


감정 쓰레기통

그들은 만만한 사람에게 쏟아 붓는다.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것 중 하나가 쓰레기통과 화장실이다. 쓰레기와 배설물은 인간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만들어내는 오물이다. 감정도 마찬가지다. 감정의 쓰레기란 도대체 뭘까? 모든 감정은 소중하다. 정말로 쓰레기 같은 감정이란 없다. 사람이 느끼는 감정 중 버려야 할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럼에도 감정 쓰레기란 말이 생겨난 이유는 무엇일까? 버겁고 골치 아픈 감정을 껴안고 있기 버거우니 쉽게 어딘가에 내버리고 싶어 한다. 그래서 감정 쓰레기란 말이 생겨났고, 이 쓰레기를 받아 안을 누군가를 감정 쓰레기통이라고 부른다.(224p)
분명 누가 들어도 듣기 좋은 이야기는 아닌데, 친구, 연인, 가족, 동료나 상사들이 자신한테 자꾸 큰소리로 불편한 이야기를 한다고 가정을 해 봅시다. 듣기 좋은 소리도 여러 번이면 듣기 싫은데, 과연 듣기 불편한 이야기나 감정 풀이로 하는 이야기가 좋을 리 없겠지요. 분명 그 사람들도 딱히 하소연 할 데가 없으니 자기 주변의 가장 만만한 사람한테 쏟아 붓는 것입니다. 또한 듣는 입장에 있어서도 거절을 못하고 공감능력이 좋은 사람일수록 지인의 감정 쓰레기통이 되기 쉽다고 합니다. 최근 전화 상담사나 사람을 상대로 일을 하는 분들이 감정노동자라는 말로 이슈화가 되는데 이 또한 감정노동자이고 이 글에서 말하는 감정쓰레기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감정쓰레기통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사람들의 영역이 정신과의사와 같은 전문가들이라고 합니다.

저자는 이럴 때 잠시 관계를 쉬어 가도록 권유하고 있습니다.
타임아웃은 감정을 쏟아내는 쪽이 화자, 그것을 받는 쪽을 청자라고 정의할 때, 화자가 감정을 쏟아내는 것을 그만둘 때까지 기다리기보다(스스로 그만두는 것으로 마무리되지 않기 때문에) 청자가 스스로 ‘듣기를 멈추는 것’을 의미한다. 항상 가학과 착취의 관계는 착취당하는 것을 멈출 때 비로소 제동이 걸린다. 물론, 아주 드물게 화자 쪽에서 멈추는 경우도 있지만 쓰레기를 비우는 쪽은 늘 비워내는 만족을 느끼고 있기에 여간해서 스스로 멈추지 않는다.(227p)
이 또한 청자 쪽에서 공감능력이 좋고, 평소 마음 씀씀이가 세심히서 상대에게 부담스러운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용기’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일수록 상대가 듣기 거북한 말을 하기 쉽지 않을뿐더러, 그러한 용기를 내기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분명한 것은 자신이 ‘감정 쓰레기통’이라는 것을 먼저 인식하는 게 먼저일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분명 자신이 듣지 않아도 될 소리를 계속해서 들으면서 받지 않아도 될 상처와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고, 용기를 내어 타임아웃을 해야 할지도 모를것이기 때문입니다. 분명한 것은 자신이 감정 쓰레기통이라고 인식했다면 반드시 타임아웃을 통해 관계를 쉬어감이 옳겠지요.



전체 감상평

처음에는 가볍게 읽기 좋은 책 같아서 골라 읽기 시작했습니다. 차츰 책을 읽어가면서 책의 모든 내용이 ‘나’를 기준으로 내가 살아가면서 겪는 많은 관계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피를 나누고 혈연의 인연을 맺었다는 가족, 둘도 없는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관계를 계속하면서 나도 모르게 오는 피로감, 수직적 직장문화에서 오는 관계의 어려움, 생각해보면 우리는 많은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책에서 전하고자하는 것은 앞서 소개한 예시와 같이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고 생각한 관계라고 생각했는데,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으며 정신적 피로감을 호소하는 내방자들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정신적 상처는 육체적인 상처처럼 눈으로 보이지 않아서 환자 자신을 빼고, 다른 지인들이 자신에 대해 무슨 상처를 가지고 있는지 모르는 게 문제인 것 같습니다. 심지어 그 상처가 자신이 아프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곪고 곪아 어찌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정신과를 찾는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관계에서 정신과 병원이라도 찾아 상황을 극복한다면 그나마 나를 보호하고 잠시나마 상황이나 환경을 바꿔보려는 노력을 할 수 있을 텐데요. 만약 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혼자만의 정신적인 감옥에 갇혀, 주변 누구에게도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고 해결하지 못한다면 그야말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관계의 어려운 상황에서도 우선은 ‘자신의 감정’을 먼저 냉철하게 판단하는 게 옳다고 판단됩니다. 일단은 자신이 주위 사람들한테 ‘감정 쓰레기통’이 아닌지를 먼저 판단하는 게 중요합니다. 만약 그런 판단이 된다면 일정한 거리를 두는 게 현명하다고 판단됩니다. 결혼 관계에서 어려움이 있다면 졸혼(결혼 졸업)을 해서 부부간의 거리를 두고 살아보기도 좋고, 졸연(친구나 연인간에 잦은 만남을 뒤로 하고 일정기간 만남을 하지 않는 것)을 하는 것도 상대에 대해 조금 더 냉정하게 판단하고 앞으로의 자신의 인생을 다시 설계하면서 심사숙고 해 보는 것도 좋은 대안이라고 생각합니다.

책에서는 이 글에서 말하지 못한 수많은 관계 속 정신적인 상담을 기본으로 관계에 대한 예시와 실질적인 조언을 하고 있습니다. 가족, 친구, 동료 그리고 자신이 겪는 우울함이나 주변사람들에 대한 시기와 질투 같은 것도 자신과 비교하여 읽다보면 남의 일이 아닌 나의 일이고 내 주변의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직접 겪지 않아도 내 아내가, 내 자식, 내 부모님, 내 친구, 나의 직장 상사와 동료 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또한 어떤 관계에서든 ‘나’가 중심이 되어야 하겠지만, 나 자신이 주위 사람들에 대해서 ‘나를 객관화’하고 나는 그들에게 어떤 사람인가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재정립 됩니다. 또한 내가 어려움을 겪지 않고 있더라도 이 책을 참고 자료로 관계에 대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주위 사람들에게 충분히 조언을 할 수 있는 지침서가 될 수 있다고도 생각됩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쓴 성유미님이 독자들에게 간단히 전하는 이 책의 핵심메세지를 글로 남기며 감상문을 마무리 합니다.
일방적인 이용과 착취는 지양하는 것이 맞다. 어떤 상황에서든 나를 지키는 것은 옳다. 그런 기본 전제 안에서 너와 내가 서로를 인격체로 존중하며 때로 마음을 나누고 때로 필요를 채우는 그런 관계가, 어쩌면 지금 우리가 지향할 수 있는, 내가 독자들에게 권하고 싶은 현실적인 답안이 아닐까 생각한다.(274p)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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